“축구는 나의 행복”… ‘김민재 닮은꼴’ 정동식 심판의 인생 굴곡 [인터뷰]

장한서 2023. 7. 2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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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로축구 K리그1에서 유명세를 달리는 이가 있다. 하지만 선수가 아니다. 바로 ‘괴물 수비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의 ‘닮은꼴’로 주목을 받은 정동식(44) 프로축구 심판이다. 유튜브 채널 ‘슛포러브’에 김민재와 비슷한 외모로 출연한 그는 지난 시즌 김민재가 뛰던 나폴리를 찾아 ‘킴, 킴, 킴!’ 연호를 받고,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여러 에피소드를 쏟아내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지난 6월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인생사를 전하며 대중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흔히 심판이 욕먹는 존재고, 누군가는 심판을 두고 ‘신이 버린 직업’이라고 표현도 하는데 팬들이 생기고 함께 소통하니까 신기해요. 예전에는 ‘악플’이 더 많았는데, 이제는 ‘선플’이 더 많아졌습니다. 개인적인 부담감도 느끼지만 심판의 저변 확대뿐만 아니라 이미지 개선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정동식 프로축구 심판이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 앞에서 김민재의 등 번호 ‘3’번을 표시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장한서 기자
정 심판은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높아진 인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미디어에 나와 김민재와 닮은 외모에서 비롯되는 해프닝으로 즐거움을 주고, 세 아들을 키우며 밤낮없이 일하는 모습으로 뭉클함을 전하며 심판에 대한 이미지도 개선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이다.

11년 차 ‘베테랑’ 축구 심판인 그. 정 심판은 원래 축구선수를 지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며 운동을 했고, 선문대학교에 1999년 입학한 뒤 1학년까지 축구선수를 하다가 그만뒀다. 현실의 높은 벽을 느꼈기 때문. 하지만 ‘축구’를 향한 애정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는 축구 심판 3급 자격증을 취득한 뒤 대학교 2학년부터 축구 심판의 삶을 걷기 시작했다. 약 12년 간 아마추어에서 심판 생활을 한 그는 2013년부터 프로축구 K리그에서 심판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선수 때 못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프로 심판의 꿈을 갖고 달렸다. 어느덧 40대 중반의 나이가 됐지만 젊은 선수들이랑 그라운드에서 함께 뛰고 호흡하는 게 너무 좋고 행복하다. 축구는 내 인생”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심판은 월급제가 아닌 경기당 수당을 받는다. 비시즌에는 수입 자체가 없다. 불안정한 직업 탓에 정 심판은 지난해 환경공무관(환경미화원) 시험에 도전해 합격한 뒤 올해 1월부터 서초구에서 일하고 있다.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오후 3시까지 담당 지역의 미화 환경 개선 업무를 한다. 최근에는 장마로 인해 잠수교가 넘쳐 나뭇가지와 쓰레기를 치우는 정비 작업을 하기도 했다. 퇴근 뒤에는 퀵서비스 일을 한다. 그리고 주말엔 심판으로 그라운드를 누빈다. “세 아들을 둔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심판으로 받는 돈은 부족합니다. 애들 과잣값이나 학원비라도 보태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퀵서비스도 하고 있어요.”

그의 ‘쉬지 않는 삶’은 어린 나이인 20살부터 시작했다. 집안 사정이 좋지 못했던 정 심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집을 나와 독립했다. 그의 호주머니에는 단돈 2000원 뿐이었다. 복지관에서 생활 상담원으로 일을 시작하며 시설을 관리하고, 노숙인들 대상으로 상담을 했다. 그는 사실상 자신도 ‘반 노숙인’이었다고 표현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신문∙우유배달, 노숙인 상담, 일용직, 대리운전 등 수많은 일을 하며 1억원을 모으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상가 분양 사기를 당해 날렸다. 이후에도 악착같이 일하는 삶은 이어졌다.

하지만 심판 일 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주말에 쉬고 싶은 날도 많았지만 축구장에 나가 선수들과 뛰며 호루라기를 불었다. 정 심판은 “하루에 7가지 일을 하며 잠도 안 자고 빚을 갚고 생계를 유지한 시절이 있었다. 그때도 심판 활동은 계속했다”며 “나에겐 그게 희망이었고,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 간절함과 꾸준함으로 프로축구 심판이 돼 지금 위치에 오지 않았을까. 덥고 힘들다고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베테랑 심판인 그의 목표는 뭘까. 곧 200경기를 앞둔 그는 100경기를 더 뛰며 300경기를 채우고자 한다. 빠르면 5년 안에 이룰 수 있다. 그는 “지금 마흔넷이니까 50살쯤 가능할 것 같다”며 “이를 위해선 꾸준히 운동해야 한다. 체력 테스트를 1년에 한 번 하는데, 통과하지 못하면 그대로 끝이다. 테스트가 엄청 어려워 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심판은 지난해 ‘올해의 심판’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날은 때마침 김민재가 독일 ‘거함’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을 확정한 날이었다. 정 심판은 이적 소식에 밤잠까지 설쳤다. 그는 “내 일처럼 너무 기뻤다. 마치 친동생이 뮌헨에 간 것처럼 잠을 설치면서 기뻐했다”며 “그저 지금처럼 꾸준하게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기를 바랄 뿐이다”고 전했다.

그는 오는 10월 자신의 삶을 담은 책을 출간한다. 대한체육회를 통해 강연도 나가고 있는 그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책에 담았다. 정 심판은 심판을 관둔 뒤에는 강연자로서의 새 삶을 꿈꾼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힘든 삶 속에서도 축구 심판을 포기하지 않은 건 이런 의지 덕분이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인생을 바꿨어요. 지금은 어느덧 가정을 이루고 프로축구 심판을 10년 넘게 하고 있네요.”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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