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간 헌혈 700회…대통령까지 만난 강원도 ‘헌혈왕’[따만사]

김예슬 동아닷컴 기자 2023. 7. 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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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만 씨 “헌혈하고 싶어 해외여행 잘 안 가, 식단 관리도”
헌혈의 집 춘천명동센터에서 ‘헌혈왕’ 이순만 씨(65)가 헌혈을 하기 전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김예슬 기자. 2023.07.15

지난달 9일 강원특별자치도 공식 출범을 알리는 기념식이 개최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태 도지사, 강원도를 대표하는 의인 등이 참석한 뜻깊은 자리에는 ‘강원도 헌혈왕’ 이순만 씨(65)도 있었다. 최근 강원도에서 최초로 헌혈 700회를 달성한 이순만 씨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헌혈을 하며 생명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700회 달성은 전국에서 6번째 기록이다. 1996년 즈음부터 2주에 한 번씩 헌혈을 해 온 이 씨는 헌혈의집 춘천명동센터에서 마스코트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달 9일 강원도 춘천시 강원대학교 백령아트센터에서 열린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기념식에서 이순만 씨(65)가 윤석열 대통령과 강원도 의인 등과 함께 기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6.9/뉴스1

회사원인 이 씨는 헌혈 700회를 달성한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라며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금연, 금주를 평소에도 실천하고 있지만 헌혈을 위해 더 철저하게 금연, 금주 규칙을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이 씨는 “헌혈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건강을 체크할 수도 있고 건강관리를 할 수 있어서 고마운 마음으로 헌혈을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혈압, 헤모글로빈 수치 등을 측정할 수 있다”라며 “오히려 고맙다. 또 700회를 달성해서 뿌듯한 마음도 한편으로는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9일 강원대 백령아트센터에서 열린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기념식. 사진=본인 제공

이 씨는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기념식에 참석해 윤석열 대통령 그리고 다양한 의인들과 함께 출범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이 씨는 “전혀 예상을 못 했는데 도청에서 연락이 왔다”라며 “평일에는 속초에서 근무를 하는데 예상치 못하게 참석하게 되어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포장을 받는 등 다수의 표창장을 받으며 봉사활동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순만 씨가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국민포장. 사진=김예슬 기자. 2023.07.15

이 씨가 첫 헌혈을 한 경험은 대학교 1학년 때다. 1976년도에 단체 헌혈을 통해서다. 당시 이 씨의 주변 친구들은 헌혈을 한 뒤 어지러움을 호소한 것에 비해 그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다며 첫 헌혈 경험을 회상했다.

하지만 그가 ‘헌혈왕’이 된 본격적인 경험은 따로 있다. 탄광에서 근무하던 젊은 시절, 동료의 목숨을 구하면서부터다. 강원도 정선이 고향인 그는 1980년대 탄광촌에서 일하면서 사고가 매우 빈번한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당시 이 씨의 동료도 일을 하다 크게 다치면서 수혈이 필요했다. 마침 O형이었던 이 씨는 자신의 동료를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동료의 목숨을 살리면서 큰 심경 변화가 생긴 이 씨는 헌혈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당시 자신이 헌혈해준 동료의 부인이 찾아와 “남편을 살려줘서 너무 감사하다”라며 인사를 전했던 것도 마음 깊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헌혈로 살아나신 분들의 소식 접할 때마다 헌혈 중요성 느껴…”

1988년 이순만 씨가 이라크 사마라2800세대 현장 근무하던 시절 모습. 사진=본인 제공

이라크에서 근무할 당시에도 그는 헌혈을 통해 한국인 동료를 살려 목숨을 구했다. 그는 “이라크에는 헌혈이 없어서 6년간 이라크 근무를 할 당시 헌혈을 못했던 게 너무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귀국한 이후 그는 성분헌혈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더 꾸준한 헌혈 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헌혈을 하고 난 뒤에 받는 헌혈증서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헌혈증서가 혈액이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절실한 것임을 알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동안 모아둔 헌혈증서를 이순만씨가 잠시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씨는 헌혈증서 20-30장을 모으고 난 뒤 수혈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 기부하고 있다. 사진=김예슬 기자. 2023.07.15

평소 수집이 취미였던 그는 헌혈증서를 모아두었다가 필요한 분들 혹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 씨는 “제가 O형이기 때문에 모든 분들에게 나눠드릴 수 있다”라며 “백혈병 환자분들에게는 20-30장의 헌혈증서를 모아두었다가 드린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그때 느꼈다. 자신에게는 취미로 수집하기 시작한 헌혈증서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중요하고 힘이 되는 증서라는 것을. 이후 이 씨는 헌혈증서를 많이 모으기 시작했다. 이 씨는 “내가 드린 헌혈증서로 살아나신 분들의 소식을 접할 때가 있다”라며 “그때 정말 의미가 크다”라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남몰래 헌혈 시작…100회 때부터 가족들도 알아”

이 씨는 남몰래 헌혈을 시작했다. 비밀리에 헌혈을 했음에도 100회 헌혈을 달성했을 때부터는 가족들도 자연스럽게 이 씨의 헌혈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조용한 선행을 하며 뜻하지 않게 표창장을 받기 시작한 이 씨는 현재까지도 누가 자신을 표창장 수여 대상으로 추천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가족들과 지인들은 이 씨가 헌혈을 자주하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아 횟수를 줄이라는 반응도 많다.

하지만 이 씨는 “헌혈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가족들과 함께 가는 해외여행도 마다했다. 외국을 여행한 경우는 귀국 후 1개월이 경과돼야 헌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가족들에게는 회사 일 때문에 해외여행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곤 했다”라며 웃었다. 그는 최근 베트남 여행을 가본 경험을 제외하고는 헌혈을 위해 해외여행을 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 씨에게 헌혈 봉사는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헌혈자 에스코트, 연탄 나르기 등 봉사만 1만 시간 넘어…

헌혈의 집 춘천명동센터에서 이순만 씨가 물품 정리를 하고 있다. 사진=김예슬 기자. 2023.07.15

이 씨는 1992년도부터 강원혈액원 소속 봉사회인 방울 봉사회에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헌혈뿐만이 아닌 연탄 나르기, 불우이웃 돕기, 환경보호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누적 봉사시간만 1만 6000시간이 넘는다. 특히 그는 헌혈의집 춘천명동센터에서 헌혈자 에스코트 활동을 하며 접수부터 안내, 물품 나르기 등 하나부터 열까지 관리하고 있다. 헌혈을 하기 위해 센터로 들어온 방문객들 중 다수는 이 씨를 알아보며 환한 미소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헌혈의 집 춘천명동센터에서 이순만 씨가 헌혈자 안내 및 에스코트를 하고 있다. 사진=김예슬 기자. 2023.07.15

그는 평일에는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는 여가 시간을 반납하며 하루에 8-10시간을 매주 꾸준히 봉사한다. 주말이면 더욱 바빠지는 헌혈센터 간호사들을 위해 항상 많은 도움을 주는 이 씨는 “남을 도우는 것이 삶의 큰 가치관이다”라며 “헌혈하는 것 그리고 헌혈증서 나눠드리는 것 등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센터 앞 골목에서 한 달에 한번 헌혈을 홍보하는 캠페인에도 참여한다고 전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웃과 서로 도왔던 경험이 습관 돼

2012년 겨울, ‘춘천연탄은행’을 통해 이순만 씨가 연탄을 직접 배달하며 봉사하고 있는 모습. 사진=본인 제공

그가 오랜 세월 동안 꾸준한 봉사를 할 수 있는 비결은 남을 도우는 것이 몸에 배 습관이 됐기 때문이다. 이 씨는 “5살 때 아버님이 하던 사업이 망하면서 집안이 어려워졌다. 어릴 때 이웃이나 친척들의 농사일을 도와주고 또 내가 도움을 받기도 했다”라며 “다른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몸에 습관처럼 밴 거 같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이 씨는 평소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걷기’와 ‘식단관리’를 꼽았다. 그는 “‘걷기’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라며 “회사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고 퇴근하고도 산책을 한다. 또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비법이다”라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설명했다. 아울러 체중 관리도 헌혈을 위해 관리하는 것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살도 너무 찌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라며 “헌혈을 위해 체중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헌혈의 집 춘천명동센터에서 이순만 씨가 물품 정리를 하고 있다. 사진=김예슬 기자. 2023.07.15

이 씨는 헌혈한 뒤에 받는 소소한 사은품들도 다른 이들에게 선물한다. 영화관람권, 문화상품권 등 다양한 사은품을 받아 모아둔 뒤에 불우이웃 돕기 할 때 소외된 이웃들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헌혈하고 되레 긍정적인 변화 생겨…헌혈에 대한 인식 바뀌었으면”

헌혈을 하면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건강에 대한 우려 때문에 헌혈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해 이 씨는 “헌혈을 하면 오히려 새로운 피가 생성이 되니까 건강이 더 좋아지는 기분이다”라며 “바늘에 찔리는 고통도 모기에 물리는 정도로만 따끔하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헌혈을 한 뒤로 이 씨의 삶에 달라진 변화가 있다면 더 건강해지는 습관들이 생긴 것이다. 그는 계속 움직이고 운동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에 있었다면 소파에 앉아서 TV만 봤을 것”이라며 “헌혈 봉사를 하며 계속 움직이게 되면서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만 69세면 정기적인 헌혈을 하지 못한다. 성분채혈은 만 59세, 전혈채혈은 만 69세까지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그는 지정헌혈은 만 69세 이후에도 가능하기 때문에 건강만 유지한다면 지정헌혈을 통해 헌혈 봉사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씨는 “해보고 싶은 봉사는 없고 지금 하고 있는 연탄은행에서 하고 있는 연탄 나르기, 헌혈의 집 에스코트, 장애인 시설에서 하는 봉사 등을 꾸준히 하고 싶다”는 소망도 말했다.

끝으로 이 씨는 “헌혈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라며 “수혈받아야 할 사람은 많은데 헌혈을 하는 사람은 부족해 혈액 보유량이 부족하다. 다들 헌혈을 많이 하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건강을 유지해서 어려운 분들을 계속 도와드리는 것이 앞으로 나의 목표다”라고 덧붙였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김예슬 동아닷컴 기자 seul5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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