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초등교사를 좌절케 하는가
2023. 7. 28. 13:39
아이를 기분 나쁘게 했다고 아동학대로 신고하거나 신고 위협을 가하는 학부모들….
다른 일터였다면 제지됐을 법한 인신공격도 학교라는 이유로 방치되고,
고통은 고스란히 일선 교사의 몫이 된다.
‘갑질’하는 학부모는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보통의 학부모들도 초등학교 교사의 인권과 교육자로서의 고유권한을 종종 무시한다. 모든 교육활동이 대학입시를 기준으로 평가되는 한국사회에서 초등학교 교실의 붕괴는 어쩌면 이미 ‘예고된 미래’였는지도 모른다.
“선생님도 교사생활 오래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다양한 학부모를 만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대놓고 보복을 시사하는 유형은 16년차 초등학교 교사인 A씨에게도 충격이었다. 발단은 세 아이의 다툼이었다. 또래보다 몸집이 큰 B는 한 학년 위 C, D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학원에서 B가 C, D의 가방을 자꾸만 다른 곳에 던져 놓는 일이 있었고 다음날 C, D는 B에게 수업 교구인 꽃삽을 들이밀며 말했다고 한다. “자꾸 괴롭히면 참지 않을 거야.”
교사인 A씨가 보기에는 ‘다툼’이었지만, B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B의 부모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를 열어달라면서 교사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 “C, D가 우리 아이를 해할 목적으로 흉기를 집에서부터 가방에 숨겨왔다고 증언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물품(꽃삽) 관리 소홀로 학교를 고소하겠다.” C, D의 잘못을 부풀리기 위해 거짓증언을 하라는 얘기였다. 교직에 오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보복을 암시하는 발언은 이 과정에서 나왔다. B의 부모는 이런 말도 했다. “선생님이 학교생활 하기 피곤할 만큼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
서울 서초구의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차 교사가 숨진 사건이 알려지면서 교사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지난 7월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5000여명의 교사가 ‘서이초 교사 추모 및 진상규명 촉구 집회’를 연 데 이어 29일에도 2차 대규모 집회가 예고돼 있다. 서이초 앞으로 도착한 ‘동료교사 일동’, ‘초등교사 일동’, ‘선배 교사’ 이름의 근조화환은 1500여개. 서이초에서 강남서초교육지원청으로 옮겨진 분향소엔 추모 발길이 끊이지 않아 운영기간이 28일까지로 연장됐다.
숨진 교사를 향한 뜨거운 추모 물결은 무엇을 말하는가. A씨는 “(서이초 교사가 사망하기까지 겪은 일은) 당장 나의 일일 수도 있었다. 교사를 자기 입맛대로 휘두르려는 학부모들이 마음을 먹으면, 우리는 그들의 괴롭힘을 피할 수 없다”면서 “무조건 민원이 발생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교장과 교감의 도움조차 기대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거짓증언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A씨는 결국 해당 학부모의 끈질긴 항의전화에 시달렸다. 해당 학부모는 교무실로도 전화해 3~4시간 동안 교육실무사를 놔주지 않으며 ‘분풀이’를 했다고 한다.
‘일부 학부모’의 갑질은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보통의 학부모들도 초등학교 교사의 교육자로서의 고유 권한을 종종 무시한다. 모든 교육활동이 대학입시를 기준으로 평가되는 한국사회에서 초등학교 교실의 붕괴는 어쩌면 이미 예고됐던 미래였는지도 모른다.
주간경향은 ‘서이초 교사 사망이 남 일 같지 않은 이유’를 주제로 10~19년차 초등학교 교사 7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초등학교 교사는 어떤 방식으로 폭력적 상황에 노출될까. 교사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사례는 ‘정서적 아동학대’ 고소 위협이다. 19년째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E씨에겐 ‘녹음 습관’을 갖게 해준 학부모가 있다고 했다. “처음엔 자녀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아이를 학교에 들어와서 한참 동안 노려보고 가셨는데 제가 그 행동을 제지했어요. 나중에는 ‘왜 아이가 학교에 가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느냐’ 등 이해할 수 없는 문제 제기를 하시더라고요. 쉬는 시간에 교실에 들어와서, 제 귀에 대고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소리치기도 하셨고요. 그런 위협을 자주 당했기 때문에 저도 나름대로 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E씨는 자신이 겪은 일을 일지로 남기고, 해당 학부모·학생과 대화할 때마다 녹음했다. 학부모의 태도로 괴로웠던 것은 교사만이 아니었다. 부모의 우려와 달리 선생님과 사이가 좋았던 그의 자녀는 부모가 교실로 들어와 소리를 높일 때마다 벽에 머리를 찧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E씨는 고소를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위협’은 그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누구누구 학생 책 펴세요’라고 간혹 소리 높여 말할 때가 있어요. 근데 ‘혹시 기분 나빴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하고 있어요. 정당한 지도였는데도요.”
‘수업 시작하자’는 수준의 지도로 아동학대 고소를 당하는 일은 실제로 있다. 7월 22일 보신각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집회에서 한 교사는 단상에 올라 “발령을 기다리며 기간제 교사로 일하던 시기, 첫날 첫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경험”을 말했다. 그는 “책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저를 노려보던 아이에 대해 다른 아이들이 ‘쟤는 원래 저렇다’며 앞다퉈 말했는데 그 상황이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첫 수업 이후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자 학교는 ‘그 학부모가 법을 잘 안다’며 곧바로 저와의 계약을 해지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이어 “경찰·검찰,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조사를 거쳐 3개월 후 ‘혐의없음’으로 최종 종결되기까지 매 순간 지옥이었다”면서 “그들이 저를 죽였다”고 말했다.
보통의 일터였다면 어떻게든 제지됐을 누군가의 ‘비상식적 행동’이 학교에선 방치되고 교사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3년 전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을 맡았던 10년차 초등학교 교사 F씨는 학급 학생들과 교환일기 겸 상담일기를 썼다. 학생들이 담임선생님인 F씨에게 자유 주제로 반 페이지 분량의 글을 쓰면, 나머지 반 페이지는 F씨가 답장 형식으로 채워줬다. 대개 ‘○○이는 그렇게 생각했구나. 선생님은 ◇◇◇라고 생각해’와 같은 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학생·학부모와의 소통창구로 사용하고 있던 애플리케이션 게시판에 한 학부모가 이 일기를 문제삼으며 적의가 가득 찬 글을 올렸다. ‘내 딸을 마치 너의 양딸인 양 대하는 태도가 역겹다’는 내용이었다.
이 학부모는 이후 학교생활과 관련 없는 내용의 인신공격성 문자 수백 통을 보내기 시작했다. F씨가 대화하기 위해 전화를 하면 받지 않았고,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만나고자 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F씨가 문자를 차단하자 이 학부모는 자녀가 교사에게 제출하는 알림장 여백에 ‘네가 공권력으로 학부모를 짓밟으려 하느냐’ 등의 막말을 쓰고 F씨의 이름을 빨갛게 칠했다. 자신의 문자를 스팸 처리했다며, 교무실에 스팸(통조림햄)을 쏟아놓고 사라지기도 했다. “자신의 모습은 끝까지 드러내지 않는” 인물의 이해할 수 없는 증오에 노출됐던 F씨는 공황장애·우울증에 시달리다 병가를 냈다. 한때 자해 충동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도 했다. F씨는 “교권보호 책임자인 교감은 저에게 벌어진 일이 관심이 없었다”면서 “학교에도 기댈 수 없다는 사실이 저를 더욱 절망케 했다”고 말했다.
심각한 갑질은 ‘일부’ 학부모가 저지르지만 보통의 학부모 역시 교사의 인권과 교육자로서의 고유권한을 존중하지 않을 때가 많다. 13년간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그만둔 G씨는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그만둔 것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교사직이 ‘침몰하는 배’라는 걸 느끼게 한 권한 침해는 정말 많았다”고 했다. G씨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례는 이랬다. 학교 행사 때문에 오전 내내 체육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이른바 ‘초품아(초등학교 품은 아파트)’ 단지의 초등학교에서 일했던 G씨는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이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제가 다 봤는데, 왜 우리 애 안 챙겨요?” 한 학부모가 운동장이 보이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체육수업을 계속 지켜봤던 것이다.
단순히 기분을 상하게 한 것도 때로는 민원의 이유가 된다. 서울 강남에서만 11년간 일한 초등학교 교사 H씨는 “수업 결손이 많은 학생의 교외체험학습 신청서를 반려했다가 기분을 상하게 한 죄, 이른바 ‘기분상해죄’에 걸린 적이 있다”고 자조했다. 교외체험학습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실 자체에 기분이 상한 학부모는 지속적으로 H씨 개인번호로 민원전화를 반복했다. 뚜렷한 근거 없이 ‘학교폭력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손을 놓고 있느냐’고 몰아붙이는 식이었다.
교사들은 특히 저연차 여성 교사일수록 고유권한을 무시당하다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G씨는 “저연차 미혼 여성 교사들을 향한 ‘선생님 결혼했어요? 자식 없으니까 모르시죠? 애 키워봤어요?’ 같은 공격은 매우 흔하다”면서 “서이초의 경우, 부모 개입이 심한 1학년은 베테랑도 힘겨운데 2년차 교사에게 맡겼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았고, 교사들의 민원까지 받아야 하는 나이스(NEIS) 업무까지 맡겼으니 최악(1학년 담임)과 최악(나이스 업무)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초등학교 교사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자 교육부와 교육청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7월 24일 장상윤 교육부차관의 언론 브리핑에 따르면 교육부는 생활지도의 범위와 방식 등 기준을 담은 고시안을 오는 8월 중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교육활동을 침해받은 교원과 가해학생을 즉시 분리하고, ‘중대한 교육활동 침해’는 학교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방안, 아동학대 ‘신고’만으로 직위해제 되는 관행의 개선, 학부모 민원 응대 체계의 마련 등이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교육당국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초점을 맞춰 대책을 추진중이라는 점이다.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교사의 적극적인 생활지도가 크게 위축됐다.”(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선생님들의 칭찬을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데 학생인권조례가 활용되고 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 교육부 수장들이 직접 나서 학생 인권조례를 이른바 ‘교권 침해’의 원인인 것처럼 언급하는 가운데 교육부는 곧 마련할 ‘생활지도 고시안’의 취지를 근거로 각 시·도 교육감에게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요구할 방침이다.
일선 교사들은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정쟁성 대책’이 중심적으로 거론되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좋은교사운동의 현승호 대표는 “교육부가 8월 중 마련한다고 하는 ‘생활지도 고시안’은 학교 현장의 정당한 생활지도가 어디까지인지를 판단할 중요한 기준인데 정부가 이 법령을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급히 설문을 해본 결과 교사들이 가장 바라는 생활지도 유형은 ‘정상적인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잠시 분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으로, 이런 요구는 학생인권조례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다른 일터였다면 제지됐을 법한 인신공격도 학교라는 이유로 방치되고,
고통은 고스란히 일선 교사의 몫이 된다.
‘갑질’하는 학부모는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보통의 학부모들도 초등학교 교사의 인권과 교육자로서의 고유권한을 종종 무시한다. 모든 교육활동이 대학입시를 기준으로 평가되는 한국사회에서 초등학교 교실의 붕괴는 어쩌면 이미 ‘예고된 미래’였는지도 모른다.
“선생님도 교사생활 오래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다양한 학부모를 만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대놓고 보복을 시사하는 유형은 16년차 초등학교 교사인 A씨에게도 충격이었다. 발단은 세 아이의 다툼이었다. 또래보다 몸집이 큰 B는 한 학년 위 C, D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학원에서 B가 C, D의 가방을 자꾸만 다른 곳에 던져 놓는 일이 있었고 다음날 C, D는 B에게 수업 교구인 꽃삽을 들이밀며 말했다고 한다. “자꾸 괴롭히면 참지 않을 거야.”
교사인 A씨가 보기에는 ‘다툼’이었지만, B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B의 부모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를 열어달라면서 교사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 “C, D가 우리 아이를 해할 목적으로 흉기를 집에서부터 가방에 숨겨왔다고 증언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물품(꽃삽) 관리 소홀로 학교를 고소하겠다.” C, D의 잘못을 부풀리기 위해 거짓증언을 하라는 얘기였다. 교직에 오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보복을 암시하는 발언은 이 과정에서 나왔다. B의 부모는 이런 말도 했다. “선생님이 학교생활 하기 피곤할 만큼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
서울 서초구의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차 교사가 숨진 사건이 알려지면서 교사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지난 7월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5000여명의 교사가 ‘서이초 교사 추모 및 진상규명 촉구 집회’를 연 데 이어 29일에도 2차 대규모 집회가 예고돼 있다. 서이초 앞으로 도착한 ‘동료교사 일동’, ‘초등교사 일동’, ‘선배 교사’ 이름의 근조화환은 1500여개. 서이초에서 강남서초교육지원청으로 옮겨진 분향소엔 추모 발길이 끊이지 않아 운영기간이 28일까지로 연장됐다.
숨진 교사를 향한 뜨거운 추모 물결은 무엇을 말하는가. A씨는 “(서이초 교사가 사망하기까지 겪은 일은) 당장 나의 일일 수도 있었다. 교사를 자기 입맛대로 휘두르려는 학부모들이 마음을 먹으면, 우리는 그들의 괴롭힘을 피할 수 없다”면서 “무조건 민원이 발생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교장과 교감의 도움조차 기대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거짓증언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A씨는 결국 해당 학부모의 끈질긴 항의전화에 시달렸다. 해당 학부모는 교무실로도 전화해 3~4시간 동안 교육실무사를 놔주지 않으며 ‘분풀이’를 했다고 한다.
‘일부 학부모’의 갑질은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보통의 학부모들도 초등학교 교사의 교육자로서의 고유 권한을 종종 무시한다. 모든 교육활동이 대학입시를 기준으로 평가되는 한국사회에서 초등학교 교실의 붕괴는 어쩌면 이미 예고됐던 미래였는지도 모른다.
주간경향은 ‘서이초 교사 사망이 남 일 같지 않은 이유’를 주제로 10~19년차 초등학교 교사 7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동학대 고소 위협이 ‘무기’
초등학교 교사는 어떤 방식으로 폭력적 상황에 노출될까. 교사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사례는 ‘정서적 아동학대’ 고소 위협이다. 19년째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E씨에겐 ‘녹음 습관’을 갖게 해준 학부모가 있다고 했다. “처음엔 자녀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아이를 학교에 들어와서 한참 동안 노려보고 가셨는데 제가 그 행동을 제지했어요. 나중에는 ‘왜 아이가 학교에 가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느냐’ 등 이해할 수 없는 문제 제기를 하시더라고요. 쉬는 시간에 교실에 들어와서, 제 귀에 대고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소리치기도 하셨고요. 그런 위협을 자주 당했기 때문에 저도 나름대로 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E씨는 자신이 겪은 일을 일지로 남기고, 해당 학부모·학생과 대화할 때마다 녹음했다. 학부모의 태도로 괴로웠던 것은 교사만이 아니었다. 부모의 우려와 달리 선생님과 사이가 좋았던 그의 자녀는 부모가 교실로 들어와 소리를 높일 때마다 벽에 머리를 찧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E씨는 고소를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위협’은 그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누구누구 학생 책 펴세요’라고 간혹 소리 높여 말할 때가 있어요. 근데 ‘혹시 기분 나빴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하고 있어요. 정당한 지도였는데도요.”
‘수업 시작하자’는 수준의 지도로 아동학대 고소를 당하는 일은 실제로 있다. 7월 22일 보신각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집회에서 한 교사는 단상에 올라 “발령을 기다리며 기간제 교사로 일하던 시기, 첫날 첫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경험”을 말했다. 그는 “책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저를 노려보던 아이에 대해 다른 아이들이 ‘쟤는 원래 저렇다’며 앞다퉈 말했는데 그 상황이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첫 수업 이후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자 학교는 ‘그 학부모가 법을 잘 안다’며 곧바로 저와의 계약을 해지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이어 “경찰·검찰,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조사를 거쳐 3개월 후 ‘혐의없음’으로 최종 종결되기까지 매 순간 지옥이었다”면서 “그들이 저를 죽였다”고 말했다.
보통의 일터였다면 용인됐을까
보통의 일터였다면 어떻게든 제지됐을 누군가의 ‘비상식적 행동’이 학교에선 방치되고 교사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3년 전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을 맡았던 10년차 초등학교 교사 F씨는 학급 학생들과 교환일기 겸 상담일기를 썼다. 학생들이 담임선생님인 F씨에게 자유 주제로 반 페이지 분량의 글을 쓰면, 나머지 반 페이지는 F씨가 답장 형식으로 채워줬다. 대개 ‘○○이는 그렇게 생각했구나. 선생님은 ◇◇◇라고 생각해’와 같은 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학생·학부모와의 소통창구로 사용하고 있던 애플리케이션 게시판에 한 학부모가 이 일기를 문제삼으며 적의가 가득 찬 글을 올렸다. ‘내 딸을 마치 너의 양딸인 양 대하는 태도가 역겹다’는 내용이었다.
이 학부모는 이후 학교생활과 관련 없는 내용의 인신공격성 문자 수백 통을 보내기 시작했다. F씨가 대화하기 위해 전화를 하면 받지 않았고,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만나고자 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F씨가 문자를 차단하자 이 학부모는 자녀가 교사에게 제출하는 알림장 여백에 ‘네가 공권력으로 학부모를 짓밟으려 하느냐’ 등의 막말을 쓰고 F씨의 이름을 빨갛게 칠했다. 자신의 문자를 스팸 처리했다며, 교무실에 스팸(통조림햄)을 쏟아놓고 사라지기도 했다. “자신의 모습은 끝까지 드러내지 않는” 인물의 이해할 수 없는 증오에 노출됐던 F씨는 공황장애·우울증에 시달리다 병가를 냈다. 한때 자해 충동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도 했다. F씨는 “교권보호 책임자인 교감은 저에게 벌어진 일이 관심이 없었다”면서 “학교에도 기댈 수 없다는 사실이 저를 더욱 절망케 했다”고 말했다.
초등교사 존중하지 않는 부모들
심각한 갑질은 ‘일부’ 학부모가 저지르지만 보통의 학부모 역시 교사의 인권과 교육자로서의 고유권한을 존중하지 않을 때가 많다. 13년간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그만둔 G씨는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그만둔 것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교사직이 ‘침몰하는 배’라는 걸 느끼게 한 권한 침해는 정말 많았다”고 했다. G씨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례는 이랬다. 학교 행사 때문에 오전 내내 체육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이른바 ‘초품아(초등학교 품은 아파트)’ 단지의 초등학교에서 일했던 G씨는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이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제가 다 봤는데, 왜 우리 애 안 챙겨요?” 한 학부모가 운동장이 보이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체육수업을 계속 지켜봤던 것이다.
단순히 기분을 상하게 한 것도 때로는 민원의 이유가 된다. 서울 강남에서만 11년간 일한 초등학교 교사 H씨는 “수업 결손이 많은 학생의 교외체험학습 신청서를 반려했다가 기분을 상하게 한 죄, 이른바 ‘기분상해죄’에 걸린 적이 있다”고 자조했다. 교외체험학습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실 자체에 기분이 상한 학부모는 지속적으로 H씨 개인번호로 민원전화를 반복했다. 뚜렷한 근거 없이 ‘학교폭력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손을 놓고 있느냐’고 몰아붙이는 식이었다.
교사들은 특히 저연차 여성 교사일수록 고유권한을 무시당하다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G씨는 “저연차 미혼 여성 교사들을 향한 ‘선생님 결혼했어요? 자식 없으니까 모르시죠? 애 키워봤어요?’ 같은 공격은 매우 흔하다”면서 “서이초의 경우, 부모 개입이 심한 1학년은 베테랑도 힘겨운데 2년차 교사에게 맡겼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았고, 교사들의 민원까지 받아야 하는 나이스(NEIS) 업무까지 맡겼으니 최악(1학년 담임)과 최악(나이스 업무)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 마련한다지만…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초등학교 교사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자 교육부와 교육청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7월 24일 장상윤 교육부차관의 언론 브리핑에 따르면 교육부는 생활지도의 범위와 방식 등 기준을 담은 고시안을 오는 8월 중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교육활동을 침해받은 교원과 가해학생을 즉시 분리하고, ‘중대한 교육활동 침해’는 학교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방안, 아동학대 ‘신고’만으로 직위해제 되는 관행의 개선, 학부모 민원 응대 체계의 마련 등이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교육당국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초점을 맞춰 대책을 추진중이라는 점이다.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교사의 적극적인 생활지도가 크게 위축됐다.”(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선생님들의 칭찬을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데 학생인권조례가 활용되고 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 교육부 수장들이 직접 나서 학생 인권조례를 이른바 ‘교권 침해’의 원인인 것처럼 언급하는 가운데 교육부는 곧 마련할 ‘생활지도 고시안’의 취지를 근거로 각 시·도 교육감에게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요구할 방침이다.
일선 교사들은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정쟁성 대책’이 중심적으로 거론되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좋은교사운동의 현승호 대표는 “교육부가 8월 중 마련한다고 하는 ‘생활지도 고시안’은 학교 현장의 정당한 생활지도가 어디까지인지를 판단할 중요한 기준인데 정부가 이 법령을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급히 설문을 해본 결과 교사들이 가장 바라는 생활지도 유형은 ‘정상적인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잠시 분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으로, 이런 요구는 학생인권조례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선생님께서 떠나신 후 우리는 달라졌습니다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초등교사들의 호소가 온·오프라인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서이초 교사를 기리며 서울 중랑구 한 초등학교 박정우 교사가 써서 보내온 글을 싣는다. -편집자 주
선생님. 드리고픈 마음은 산더미 같은데, 그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에게 편지글을 지도할 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편지글은 반성문이 아니에요.” 그런데 저도 선생님께 편지글인지, 반성문인지 분간이 안 되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해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이 함부로 쏟아졌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수많은 동료가 선생님께 편지글 같은 반성문을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산더미같이 죄송한 마음을 안은 채로 우리들이 어떻게 교육이란 것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간 복도를 지나며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동료들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가끔은 그 교사가 저이기도 했습니다. 붕괴된 제 교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갔던 끔찍한 해도 있었습니다. 동료들 모두 운이 나쁜 해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들은 각자 운이 좋기만을 바라며 교실에 머물러서는 안 됐습니다. 매년 아이들에게 지도하는 수업 내용대로 올바르고 떳떳한 목소리를 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그러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정신 건강 의학과 상담을 권하거나, 회복 탄력성에 대한 책을 주는 소극적인 동료였습니다. 교실을 바로 세울 생각은 못 하고, 무고하게 아동학대 고발을 당할 때를 대비하라 조언하는 비겁한 동료였습니다.
뉴스 기사에서 저연차 교사라는 말을 보았습니다. 그건 저를 더 부끄럽게 만드는 말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저연차일 때가 더 좋은 교사였기 때문입니다. 수업을 준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고, 교사로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말을 거침없이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운이 좋은 교사였다는 걸 몰랐습니다. 물론 연차가 쌓일수록 새로 알게 되거나 발전한 부분도 있습니다. 교사의 교육 활동이 어떻게 얼마나 정당한가 증명해야 할 상황이 많다는 것, 교육과 보육 모두를 적당히 하면서 행정 업무 처리를 잘해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것, 부당함에 대한 분노를 삭이거나 그런 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제 책장에는 학급 경영, 교육 방법, 교육 철학 관련 서적보다 마음을 다잡는 방법, 교육 활동 침해 시 대응 방법 관련 서적이 더 많습니다. 며칠간 뉴스를 보면서 선생님이 얼마나 좋은 교육자이신지 계속해서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더 오래 있던, 더 잘 내려놓게 된 교사로서 무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떠나신 후 우리들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서로가 그간 당했던 폭력을 털어놓게 되었고, 그로부터 시작될 수 있는 지난한 싸움마저 감수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쏟을 때가 많던 교실 밖으로 나와 올바르고 떳떳한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지켜 드리지 못한 교실을 늦게나마 바로 세우기 위해 동료로서 계속해서 마음을 모으려 합니다.
지금처럼만 우리들이 마음을 모았더라면… 교사라는 이유로 침묵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교실을 지키고 선생님의 교실을 지켜 드렸더라면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학교에서 마주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서로 수업 자료를 공유하고, 어떻게 이런 자료를 만들었느냐며 신나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듬해에는 몇 학년을 가르쳐 보고 싶다는 선생님의 설레는 눈빛을 봤을지도 모릅니다. 발령받으신 학교에 동행하여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한 교사인지 자랑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인복 많은 그 어떤 교사는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었을 겁니다. 선생님께서 가르치셨을 수백 명의 아이가 학교에서 더 크게 웃었을 겁니다.
선생님. 적어도 교사인 우리들만큼은 잘 알고 있던 겁니다. 운이 특별히 좋은 해에만 교사가 교육 활동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교실에 머물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얼핏 평화로워만 보이는 교실에서 얼마나 많은 교사가 감정과 표정을 잃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부터 정당함과 부당함을 앞에서 말할 줄 아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처음 기고를 하겠다 했을 때는 익명성을 지켜달라 부탁했지만, 선생님께 부치는 글을 마무리하면서 그 말을 취소하였습니다. 선생님을 추모하는 데 있어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고자 합니다. 다시는 이런 아픈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선생님의 동료들이 모든 교사의 교실을 잘 지켜나가겠습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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