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그건 잘못된 민원입니다”
2023. 7. 28. 13:39
현직 초등교사가 말하는 ‘민원 판단 기준’
교사에게 전화하기 전에 체크해볼까요
eeessay(필명) 현직 초등학교 교사
흥미로운 글을 봤다. 교사에게 시시콜콜 민원을 넣는 학부모들을 꾸짖는 어떤 학부모의 글이었다. 그 글의 마무리는 이랬다. ‘저는 이제껏 학교에 딱 한 번밖에 전화한 적 없습니다. 문제 학생과 반편성 떨어뜨려 달라고요.’ 반편성을 본인 입맛대로 해 달라는 것이야말로 무리하고 무례한 민원이다. 인터넷에선 모두가 제법 괜찮은 학부모인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민원이 잘못된 민원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거였다. 진짜 몰라서 그런 거라면 알려드리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예의 바른 말투에 가려진 이상한 민원을 예로 들어가며, ‘민원 적합 판단 기준’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임을 밝힌다.
부적절한 민원 예시: 우리 민수가 어제 외갓집에 다녀오느라 숙제를 못 했어요./가정통신문 잃어버렸으니 다시 주세요./선생님, 우리 영희 말이, 사실 그게 아니라 ~한 거라고 하네요.
아이는 친구들과 교사를 상대로 사회생활 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얘기했을 때 학교에서 벌어질 최악의 상황은 기껏해야 그게 ‘수용되지 않는 것’밖에 없다. 학교는 아이가 용기를 내보고 거절당해 보고 좌절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다. 학교로 전화하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보자. ‘이건 꼭 부모인 내가 대신 얘기해주어야만 하는 일인가.’
부적절한 민원 예시: 30분 늦었다고 진짜 지각 처리를 하면 어떡해요?/내년에 짱구랑 같은 반 안 되게 해 주세요(*학교폭력 발생 등 명확한 근거가 있다면 이미 반편성 시 반영된다).
출결, 반배정, 평가에는 원칙이 있다. 온갖 민원이 횡행하다 보니 사소한 지각이나 결석 등을 두고 학부모 편의를 봐주는 교사들도 분명 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들은 원칙을 지키는 교사에게 엉뚱하게 민원을 퍼붓는다. 작년엔 해줬는데 올해엔 왜 그렇게 칼 같냐는 거다. 민원에 지쳐 원칙을 어기는 교사에게도 문제가 있고, 관례적으로 그래왔으니 편의를 봐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학부모에게도 문제가 있다. 민원을 제기하기 전에 생각하자. 관련된 원칙이 있는가? 그걸 어겨 달라는 요구사항인가? 그럼 수화기를 내려놓자.
부적절한 민원 예시: 통지표에 왜 우리 아이가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썼습니까?/(정당한 평가자료가 있는데) 왜 교과평가 결과가 ‘보통’입니까? 올려주세요.
요즘 생활통지표 ‘행동특성’란에 가감 없이 솔직한 말을 적는 교사는, 아니 그럴 수 있는 교사는 전국에 단 한명도 없을 거다. 만약 생활통지표에 아이의 단점이 적혀 있다면, 교사는 굉장한 숙고를 거치고 민원에 대한 걱정마저 이겨내 그걸 적은 것이다. 아이가 이 기회에 그걸 진짜 개선하기 바라기 때문이다. 교과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정당한 근거가 있을 경우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저마다 교육관이 다른 부모들이 자기 맘에 쏙 드는 담임을 만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똑같은 숙제를 내주어도 ‘숙제가 많다’는 민원과 ‘숙제가 너무 없다’는 민원을 동시에 받는다. 그건 제안이 아닌 월권이다.
부적절한 민원 예시: 휴대전화 번호 알려주세요. 작년 선생님은 알려주셨습니다./프로필 사진 부적절하네요. 내려주세요./(근무시간이 아닐 때) 전화를 왜 안 받아요?
교사에게도 인권이 있다. 인간으로서 권리 말이다. 서이초 선생님 추모집회에서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세상에 어떤 직업이 퇴근 후에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욕을 듣고 카톡 프사를 검열당합니까.” 교사가 개인번호를 노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음에도 교무실로 전화해서 알아내거나, 심지어 구글링까지 해서 알아낸다는 일부 학부모를 보며 교사들은 말할 수 없는 압박을 느낀다. 교사가 개인번호를 공개하는 건 순전히 교사 개인의 호의이고 선의이다. 그리고 그 호의는 거대한 악습을 만들어냈다. 이제 바꿔나가야 할 때가 됐다.
부적절한 민원 예시: 그 애도 잘못 있지 않나요?/다른 애들도 그랬다면서 왜 우리 애한테만 그러세요?
사실 이런 말은 주로 아이들이 한다. “철수야, 민희한테 욕을 하면 어떡하니”라고 물으면, 꼭 “쟤도 했는데요.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학부모에게 이 이야길 들으면 좀 아찔하다. 아이들은 보통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말한다. 그 애가 교활해서가 아니라 원래 아이들이 그렇다. 교사는 잘못한 아이들을 모두 똑같이 혼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부적절한 민원 예시: 애아빠가 화가 났다./교장실, 교육청으로 전화하려다 참았다./변호사 부르겠다./교사 일 못 하게 만들겠다.
애아빠가 화가 났다는 건 도대체 어디서 유용한 협박스킬로 퍼졌는지 모를 일이나, 교사들은 이미 그게 유행처럼 번진 교사협박용 멘트임을 알고 있다.
부적절한 민원 예시: 근무시간인데 왜 답장이 늦어요?/답장에 이모티콘, 다정한 말을 담지 않아 서운합니다./우리 애 사진이 몇 장 없네요, 우리 애가 사진에서 웃고 있지 않네요.
교사는 생각보다 바쁘다. 교사의 일은 학부모의 연락에 발 빠르게 응대하며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학교에 온 아이와 한 마디라도 더 나누는 데 있다. 사진을 올려주는 선생님들은 대부분 아이의 표정과 사진 수를 문제 삼는 민원을 받고 나서 그 서비스를 멈춘다. 혹시 담임선생님이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신다면, 그냥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학교생활을 확인해주시면 좋겠다. 나같이 무심한 담임을 만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 아닌가.
eeessay(필명) 현직 초등학교 교사
교사에게 전화하기 전에 체크해볼까요
eeessay(필명) 현직 초등학교 교사
흥미로운 글을 봤다. 교사에게 시시콜콜 민원을 넣는 학부모들을 꾸짖는 어떤 학부모의 글이었다. 그 글의 마무리는 이랬다. ‘저는 이제껏 학교에 딱 한 번밖에 전화한 적 없습니다. 문제 학생과 반편성 떨어뜨려 달라고요.’ 반편성을 본인 입맛대로 해 달라는 것이야말로 무리하고 무례한 민원이다. 인터넷에선 모두가 제법 괜찮은 학부모인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민원이 잘못된 민원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거였다. 진짜 몰라서 그런 거라면 알려드리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예의 바른 말투에 가려진 이상한 민원을 예로 들어가며, ‘민원 적합 판단 기준’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임을 밝힌다.
□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말인가?
Yes! ⇒ 아이가 말하게 도와주세요
부적절한 민원 예시: 우리 민수가 어제 외갓집에 다녀오느라 숙제를 못 했어요./가정통신문 잃어버렸으니 다시 주세요./선생님, 우리 영희 말이, 사실 그게 아니라 ~한 거라고 하네요.
아이는 친구들과 교사를 상대로 사회생활 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얘기했을 때 학교에서 벌어질 최악의 상황은 기껏해야 그게 ‘수용되지 않는 것’밖에 없다. 학교는 아이가 용기를 내보고 거절당해 보고 좌절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다. 학교로 전화하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보자. ‘이건 꼭 부모인 내가 대신 얘기해주어야만 하는 일인가.’
□ 원칙을 어기는 요구사항인가?
Yes! ⇒ 부적절한 민원입니다
부적절한 민원 예시: 30분 늦었다고 진짜 지각 처리를 하면 어떡해요?/내년에 짱구랑 같은 반 안 되게 해 주세요(*학교폭력 발생 등 명확한 근거가 있다면 이미 반편성 시 반영된다).
출결, 반배정, 평가에는 원칙이 있다. 온갖 민원이 횡행하다 보니 사소한 지각이나 결석 등을 두고 학부모 편의를 봐주는 교사들도 분명 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들은 원칙을 지키는 교사에게 엉뚱하게 민원을 퍼붓는다. 작년엔 해줬는데 올해엔 왜 그렇게 칼 같냐는 거다. 민원에 지쳐 원칙을 어기는 교사에게도 문제가 있고, 관례적으로 그래왔으니 편의를 봐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학부모에게도 문제가 있다. 민원을 제기하기 전에 생각하자. 관련된 원칙이 있는가? 그걸 어겨 달라는 요구사항인가? 그럼 수화기를 내려놓자.
□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가?
Yes!⇒ 아이를 진짜로 학대하는 방향이 아니면 교사의 교육권을 존중해주세요
부적절한 민원 예시: 통지표에 왜 우리 아이가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썼습니까?/(정당한 평가자료가 있는데) 왜 교과평가 결과가 ‘보통’입니까? 올려주세요.
요즘 생활통지표 ‘행동특성’란에 가감 없이 솔직한 말을 적는 교사는, 아니 그럴 수 있는 교사는 전국에 단 한명도 없을 거다. 만약 생활통지표에 아이의 단점이 적혀 있다면, 교사는 굉장한 숙고를 거치고 민원에 대한 걱정마저 이겨내 그걸 적은 것이다. 아이가 이 기회에 그걸 진짜 개선하기 바라기 때문이다. 교과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정당한 근거가 있을 경우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저마다 교육관이 다른 부모들이 자기 맘에 쏙 드는 담임을 만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똑같은 숙제를 내주어도 ‘숙제가 많다’는 민원과 ‘숙제가 너무 없다’는 민원을 동시에 받는다. 그건 제안이 아닌 월권이다.
□ 교사의 인권을 침해하는가?
Yes!⇒ 적절한 민원이 아닙니다. 절대 하지 마세요
부적절한 민원 예시: 휴대전화 번호 알려주세요. 작년 선생님은 알려주셨습니다./프로필 사진 부적절하네요. 내려주세요./(근무시간이 아닐 때) 전화를 왜 안 받아요?
교사에게도 인권이 있다. 인간으로서 권리 말이다. 서이초 선생님 추모집회에서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세상에 어떤 직업이 퇴근 후에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욕을 듣고 카톡 프사를 검열당합니까.” 교사가 개인번호를 노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음에도 교무실로 전화해서 알아내거나, 심지어 구글링까지 해서 알아낸다는 일부 학부모를 보며 교사들은 말할 수 없는 압박을 느낀다. 교사가 개인번호를 공개하는 건 순전히 교사 개인의 호의이고 선의이다. 그리고 그 호의는 거대한 악습을 만들어냈다. 이제 바꿔나가야 할 때가 됐다.
□ 우리 애만 선의의 피해자인가?
Yes!⇒ 정말 그럴까요? 사실관계부터 확인해주세요
부적절한 민원 예시: 그 애도 잘못 있지 않나요?/다른 애들도 그랬다면서 왜 우리 애한테만 그러세요?
사실 이런 말은 주로 아이들이 한다. “철수야, 민희한테 욕을 하면 어떡하니”라고 물으면, 꼭 “쟤도 했는데요.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학부모에게 이 이야길 들으면 좀 아찔하다. 아이들은 보통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말한다. 그 애가 교활해서가 아니라 원래 아이들이 그렇다. 교사는 잘못한 아이들을 모두 똑같이 혼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 소소한 협박인가?
Yes! ⇒ 참아주세요
부적절한 민원 예시: 애아빠가 화가 났다./교장실, 교육청으로 전화하려다 참았다./변호사 부르겠다./교사 일 못 하게 만들겠다.
애아빠가 화가 났다는 건 도대체 어디서 유용한 협박스킬로 퍼졌는지 모를 일이나, 교사들은 이미 그게 유행처럼 번진 교사협박용 멘트임을 알고 있다.
□ 따지고 보면 별 건 아니지만 묘하게 기분 나쁜 일인가?
Yes! ⇒ 적절한 민원이 아닙니다
부적절한 민원 예시: 근무시간인데 왜 답장이 늦어요?/답장에 이모티콘, 다정한 말을 담지 않아 서운합니다./우리 애 사진이 몇 장 없네요, 우리 애가 사진에서 웃고 있지 않네요.
교사는 생각보다 바쁘다. 교사의 일은 학부모의 연락에 발 빠르게 응대하며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학교에 온 아이와 한 마디라도 더 나누는 데 있다. 사진을 올려주는 선생님들은 대부분 아이의 표정과 사진 수를 문제 삼는 민원을 받고 나서 그 서비스를 멈춘다. 혹시 담임선생님이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신다면, 그냥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학교생활을 확인해주시면 좋겠다. 나같이 무심한 담임을 만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 아닌가.
eeessay(필명) 현직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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