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는 K팝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시사저널=김영대 음악 평론가)
뉴진스의 두 번째 미니 앨범 'Get Up'은 심플함과 직관적 세련미를 집요하게 추구한 끝에 나온 고도로 정제된 결과물이다. 마치 최고급 스마트폰의 미려한 커브 라인을 보는 것만 같다. 단순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유치하다곤 말할 수 없는 앨범 속 트랙들의 러닝타임은 아무리 길어도 3분을 훨씬 밑돌고, 노래들은 여지없이 간결하게 핵심만을 전달한 채 예고나 미련 없이 끝을 맺는다. 그리고 나는 여지없이 이 음악을 또 반복하고 만다. 잘 쓴 단편소설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그 기분 좋은 아쉬움과 아련함, 잘 그린 미술작품이나 느낌 있는 광고를 봤을 때 드는 설명할 수 없는 미학적인 만족감을 뉴진스의 음악들이 제공한다. 그럼에도 이 음악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대중음악'이다. 듣는 이들을 유혹하는 후크는 분명하고, 그 핵심적 멜로디는 싱어롱을 강요하지 않는 것 같아도 그 어느 진한 K팝 선율 못지않게 중독적인 매력을 갖는다.
단순하지만 중독적인 매력
하이브 그룹 산하의 신생 레이블인 어도어가 지난해 뉴진스를 론칭하는 일련의 과정과 그 결과물은 K팝 산업의 수많은 이에게 신선한 충격과 영감을 줬다. 마치 영화 《2001: A Space Odyssey》에 등장하는 모노리스를 마주한 것 같은 경험이었다. M세대와 Z세대를 아우르고 그 공통분모를 꿰뚫는 미학의 매력적인 선택과 배치, K팝에 익숙하거나 그렇지 않은 모든 대중을 설득하는 직관적이고 쉬운(그렇게 느껴지는) 사운드가 기존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배합의 레시피는 기획하고 만든 이들의 독특한 '미감'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 개별적 요소들을 분석하면 할수록 그 본질과는 멀어져 갔다. 그러니까 뉴진스의 미학이 단순히 'Y2K'를 가져온 것 때문에 성공적인 미학이 되는 것은 아니며, 뉴진스의 쉽고 부담 없는 음악이 트렌디하고 세련되게 느껴지는 것이 단지 노래를 '쉽게' 만들어서는 아닌 것이다. 아직 뉴진스의 전략은 그들만의 노하우 영역으로 남아있다.
'Get Up'에서 뉴진스만의 노하우는 한층 더 강화됐고, 그 의도는 그 실체를 더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장르적으로 현재 신스팝과 함께 유행의 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R&B 기반 클럽 음악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UK 개러지(UK Garage)와 저지 클럽(Jersey Club) 사운드가 대표적이다. 두 장르 모두 90년대 말의 하우스, 브레이크비트 등 일렉트로닉 음악이 중심이 된 클럽 신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춤추기 좋은 비트를 갖고 있지만 서정적이면서 몽환적인 멜로디들과 잘 어울리는 사운드가 특징으로, 글로벌하게 확장된 K팝의 현 산업 지형에서 기존 K팝들과 차별을 두면서 흑인 음악에 기반을 둔 북미 및 유럽의 음악 산업, 그중에서도 클럽 신을 공략하기에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장르적 구분은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최근 K팝 아이돌 음악에서 유사한 장르를 차용하는 경우를 더러 볼 수 있지만 뉴진스는 서사와 극적인 묘사가 아닌 직관적인 간결함에서 파생되는 산뜻함에 그 방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들은 흥미롭게도 드라마틱한 멜로디와 고음부가 주는 쾌감으로 점철된, 누가 들어도 뻔한(그래서 때로는 매력이라고 느껴지는) 후크로 달려 나가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결코 심심하지 않다. 《Super Shy》와 《Cool with You》를 한번 귀 기울여 들어보자. 멜로디는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절정을 향해 오르지 않고 문득 세련된 핵심을 훑는 듯하더니 어느덧 자연스레 끄트머리를 내리며 흘린다. 보컬의 예쁘고 섬세한 음색과 이 같은 멜로디 라인이 묘한 어울림을 만들어내면서 빠른 비트의 질주 안에서도 걸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서정성의 영역을 확보해 낸다. 미국과 영국 등 팝의 최첨단에 있는 뮤지션들의 음악에서 종종 느낄 수 있는 세련된 솜씨다.
앨범의 타이틀 곡 중 하나인 《Super Shy》는 아이돌 그룹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 중 하나였던 그들의 데뷔곡 《Attention》을 연상케 하는 세련된 클럽 음악이다. 빠른 BPM의 달려 나가는 에너지와 팔세토를 적극 활용한 창법이 대비되면서 경쾌하지만 동시에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ETA》는 보다 기분 좋은 중독성이 매력적인 또 하나의 클럽튠으로 공격적인 비트에 단조의 멜랑콜리한 느낌을 매치시켜 《Hype Boy》 때와 같은 대중적인 호소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Ditto》 《OMG》 등 기존에 발매한 싱글들과 장르적으로나 스타일적으로 일체감을 보이면서 콘셉트가 없는 콘셉트 앨범과 같은 느낌을 연출해 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소설적 세계관에 기대지 않지만 그 이야기들이 '음악적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마치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스토리든 가능케 하는 느슨한 템플릿을 만드는 것에 가깝다고 할까? 백화점 스타일에 가까운 근래 K팝 아이돌 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장르적, 사운드적 일관성이 돋보인다.
뉴진스의 심플함과 세련미에 음악만큼이나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은 보컬이다. K팝 산업에서 보컬은 음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한 그룹의 재능과 기술적 숙련도를 말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듀서나 디렉터의 미학적 수준과 취향 그리고 그룹의 방향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첫 곡 《New Jeans》에서 들리는 뉴진스의 보컬은 담백함 그 자체다. 언뜻 들으면 테크닉을 사실상 배제한 채 예쁜 보이스 컬러만을 내세웠던 왕년의 미소녀 가수들을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확히 그 반대다. 담백하다는 것은 기존에 익숙했던 어떤 보컬의 '클리셰'나 '디바'스러운 일종의 감정 과잉적 요소가 없다는 뜻일 뿐 뉴진스는 R&B와 팝 보컬의 장점만이 조화된 대단히 트렌디하면서도 테크니컬한 보컬을 자랑한다.
중요한 것은 그 테크닉이 음악적인 분위기의 통일성을 만들어내는 범위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곡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이를테면 경연대회스러운 보컬의 전시는 뉴진스의 음악에서는 애초에 배제돼 있다. 하니, 다니엘, 혜인, 해린, 민지 등 다섯 명의 목소리는 조금만 관심 있게 들으면 완벽히 구분되지만 동시에 어느 부분을 누구로 바꾸어 불러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한 것은 단순히 음색이나 창법을 기계적으로 일치시키거나 혹은 억지로 차별화하고자 각각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큰 틀에서 곡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자연스러운 본인의 목소리를 노래의 장르와 멜로디에 어울리도록 만드는 보컬 디렉션 때문으로 보인다. 역시나 감각과 접근법의 차이다.
장르와 문화 넘어선 보편적 세련미
K팝은 오랫동안 K팝이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 결과는 우리가 오늘날 익숙한 복잡하고 정교한 K팝 사운드와 난해한 세계관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K팝의 궁극적인 결론일까? 뉴진스의 프로듀서 민희진은 그 지점을 새삼 물어보고 있다. 뉴진스의 'Get Up'은 재닛 잭슨의 과거 히트곡들과도, 질베르토나 조빔의 보사노바와도, 류이치 사카모토나 심지어 클래식과 나란히 함께 놓고 들어도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장르와 문화를 넘어선 보편적인 간결함과 세련미가 있다는 뜻이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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