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尹 대통령 한·미·일 외교에 김한길 막후 역할론 ‘솔솔’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은 지금 누구보다도 분주하다. '국민 통합'이라는 특명 외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비공식 특사 역할까지 맡아 물밑에서 땀이 나게 뛰고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김 위원장은 지난 3월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 드라이브와 이어진 한·미·일 3국의 '삼각 공조' 분위기 조성에 조언은 물론 직접 일본과 미국을 오가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한 나라의 외교는 무겁고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 특히 여러 국민적 감정이 뒤엉킨 한일 관계는 그중에서도 최고난도다. 미·중 패권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 세계적 외교 흐름 속에서 한·미·일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윤 대통령에겐 김 위원장처럼 믿고 맡길 수 있는 조력자가 필요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금 김 위원장의 위치나 역할이 단순히 여러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 수장 중 한 명이 아닌, 지난해 대통령선거 과정부터 부각됐던 윤 대통령의 '정치적 조력자' 역할을 실제 수행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정황이 목격된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사실상 윤 대통령의 비공식 특사 역할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지난 3월초 김한길 위원장은 극비리에 일본 도쿄에 위치한 요미우리신문 본사를 찾았다. 당시는 한일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긴 논의 끝에 제3자 변제안에 합의하고, 윤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앞둔 때였다. 오이카와 쇼이치 요미우리신문그룹(요미우리신문이 속한 지주회사) 대표이사·회장, 마에키 리이치로 편집국장, 오가와 사토시 국제부장 등 수뇌부가 직접 김 위원장을 맞았다. 이들은 김 위원장에게 윤 대통령 단독 인터뷰를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발행부수로 일본 내에서는 물론 세계 1위로 집계되는 요미우리는 과거부터 한일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고 보도해온 신문으로 꼽힌다. 특히 김 위원장과 비슷한 시기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또한 요미우리 본사를 방문해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신문 대표 겸 주필을 만났다는 점도 눈에 띈다. 와타나베 대표는 요미우리의 최대 권력자이자 일본 정계에서 '막후의 쇼군(최고 실력자)'이라고 불리는 인사로 1960년대에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 공화당 총재와 한일 수교에 부정적이었던 오노 반보쿠 당시 자민당 부총재가 만나도록 직접 연출하고 한·일 국교 정상화의 단초가 된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보도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요미우리 측이 김한길 위원장을 접촉한 이유는 그가 김대중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일본 문화 개방을 주도하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 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관여하는 등 지일(知日) 정치인으로 활동한 이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일본 도쿄 출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 인간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점을 요미우리가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도쿄를 다녀간 이후 요미우리는 오이카와 대표가 직접 용산 대통령실을 방문해 윤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윤 대통령이 방일한 3월16일 전날과 당일에 걸쳐 요미우리에 1면 머리기사를 포함해 총 14개 면으로 단독 인터뷰가 집중 보도됐다. 3월15일 하루에만 9면을 할애했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는 공통의 이익에 부합한다"면서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또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과 관련한 이야기들도 솔직하게 터놓으며 기시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전 자신의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은 것으로 평가됐다. 일본 언론계와 정계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며 파격을 보인 요미우리의 윤 대통령 단독 인터뷰는 일본의 많은 국민은 물론 정계 인사들에게도 상당한 관심을 끌었고, 한일 정상회담 직전 양국 관계의 관심도를 더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이후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만나 관계 개선에 뜻을 모았고, 양국 관계에 모처럼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기시다 총리의 서울 답방과 후쿠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 윤 대통령 초청 등 핑퐁 외교는 물론 양국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복원 등 실질적 관계 개선까지 이뤄지며 양국 관계는 '제2 전성기'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VIP급 예우 받아
김한길 위원장은 요미우리신문 인터뷰를 주선하기 전부터 한일 관계 개선 등의 필요성에 대해 윤 대통령과 공감대를 갖고 긴밀히 소통·논의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을 비롯한 여권의 사정을 두루 잘 아는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를 김 위원장이 주선한 것이 맞다"면서 "김 위원장이 한일 및 한·미·일 관계와 관련해 후보 시절부터 윤 대통령과 자주 토의하고 의견을 공유해 왔던 것으로 안다. 요미우리 인터뷰 진행 또한 김 위원장이 일본을 방문하기 전부터 윤 대통령과 깊은 교감을 하면서 움직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한일 관계 개선의 연장선에서 매우 끈끈하게 공조를 굳혀가고 있는 한·미·일 3국 관계에도 깊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7월10일부터 15일까지 미국 뉴욕과 워싱턴DC를 방문했다. 출장의 공식적인 명분은 국민통합위원장으로서 업무상 관련 있는 여러 기관을 방문해 주요 인사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오는 8월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릴 한·미·일 3국 정상회담 사전 협의 및 조사 등 중대한 임무를 띠고 방문한 게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김 위원장의 미국 일정을 세부적으로 살펴봐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국민통합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미국에서 국민통합위와 역할이 유사한 백악관 국내정책위원회(Domestic Policy Council)의 니라 탠든 위원장과 만나 한미 관계 등 외교적 현안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탠든 위원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 중 한 명이다. 특히 김 위원장과 탠든 위원장의 만남은 백악관의 '웨스트윙'(집무동)에서 이뤄졌는데, 이 또한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웨스트윙은 보통 국가원수 등 VIP급 인사들에게만 공개되는 곳으로 국내 인사들이 백악관을 찾을 땐 주로 백악관 본관 뒤편의 아이젠하워 행정동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취재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미 국무부 산하 정보기관인 정보조사국(INR)도 방문해 정보분석팀 담당관들에게 한·미·일 관계 당면 현안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도 김 위원장은 상·하원의 한국 관련 의원 모임인 '코리안 코커스(Korean Caucus)'의 지한파 의원들과 면담을 갖고, 대표적인 미국의 민주당계 민간 연구기관인 브루킹스연구소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대통령-김 위원장 사이 깊은 신뢰 있어"
국민통합위 사정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는 "김 위원장에 대해 미국이 제공한 대우와 일정 등을 보면 일반적인 외국의 장관급 이상 예우를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김 위원장에게 대통령이 맡긴 비공식 협의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8월말로 예정된 한·미·일 정상회담을 포함해 향후 3국 간 핵심 현안을 조율하는 김 위원장의 역할을 백악관이 미리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한 게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평소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와도 수시로 만나 한·미·일 3국 관계 등에 대해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통합위를 이끌고 있는 김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어떻게 이런 외교적인 중책까지 맡게 된 걸까. 정치권에선 오랜 인연에서 비롯된 두 사람 사이의 신뢰에 주목한다. 2013년 윤 대통령이 여주지청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정원 대선 개입 특별수사와 관련한 외압을 폭로하며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증언했을 당시 김한길 위원장은 제1야당 민주당 대표였다. 김 위원장은 그때 당 차원에서 윤 대통령의 증인 출석을 성사시키도록 노력했고, 두 사람은 그때부터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에서 조국 사태 등을 겪으며 정치 참여를 고민할 때도 사적으로 조언하며 멘토 역할을 했다. 김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2021년 말엔 후보 직속 기구인 새시대준비위 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대통령 당선 이후 윤 대통령이 새롭게 만든 국민통합위의 첫 위원장에 임명됐다. 그 과정에 보수진영 내 김 위원장에 대한 비토도 적지 않았으나 윤 대통령은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해준 김 위원장을 철저히 신뢰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윤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자주 전화통화를 하거나 독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현재 국민통합위원을 맡고 있는 임재훈 전 의원도 통화에서 김 위원장의 외교적 역할론에 대한 질문에 "대통령과의 교감 아래 여러 물밑 노력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깊은 신뢰 관계를 통해 파생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짧지만 의미심장한 답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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