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검정고무신과 미키마우스
아이들은 여름방학에 가만히 있지 못 한다. 여름방학이 조금은 기다려지고 특별했던건 할아버지, 할머니 때도, 아버지, 어머니 때도, 요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서로의 방학시절을 떠올려 묶어내는건 쉽지 않았다.
적어도 1990년대 초반 만화 검정고무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1970년대생 만화가 형제는 1960년대 서울 외곽을 배경으로 3대(그 집에는 강아지, 고양이도 있다)가 사는 대가족을 그려냈고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이우영 작가는 지난해 유튜브 등을 통해 만화를 기반으로 명절특집 애니메이션으로 1999년 첫 TV방영을 했을 때 18.6%의 시청률이 나와 자기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작가와 비슷한 연배인 기자도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반대항 노래뽐내기 같은걸 할 때 조금은 촌스러운 머플러 같은걸 목에 두르고 한반 전체가 검정고무신 주제가(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 적에 신으셨던 추억의 검정고무신~~(후략))를 부르는 걸 본적이 있다.
아이가 지겹도록 검정고무신 클립을 보는걸 지켜보면서 '옛날 얘기를 나보다 더 많이 알겠네'라고 매번 신기해할 때쯤 충격적인 뉴스를 봤다. 형제 만화가 중 형인 이우영 작가가 3월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검정고무신 저작권을 두고 출판사와 3년 넘게 법적 분쟁을 해오던 이 작가가 재판이 지연되고 희망적인 소식이 들릴 기미가 없자 삶을 마감한 것이다. 이 작가는 사망 이틀 전 법정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저에게 검정고무신은 제 인생 전부이자 생명"이라고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작가 형제는 그림 부분을 맡았을뿐 스토리작가와 이들을 연결시켜 창작과 부가적인 활동(애니메이션, 굿즈 제작 등)을 뒷받침한 출판사가 있었다는게 반대측 주장이었다. 또 계약서에 '검정 고무신' 관련 모든 창작 활동은 출판사측의 동의를 받도록 돼 있는 조항을 고인이 어겼다는 것도 있었다. 작가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시골 체험농장에서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을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과 관련해 출판사 측이 이를 저작권 침해라며 형사고소한 사례도 작가를 크게 낙담하게 했다.
'검정고무신'의 독자이자 시청자인 아이들이 숱하게 봤을 글로벌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관련한 사연은 이 작가의 비극과 대조된다. 1928년 탄생해 90여년 가까이 전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지배하는 월트 디즈니의 미키마우스가 꼭 그렇다. 미키마우스도 탄생 이전에 캐릭터 분쟁을 겪었다. 디즈니는 먼저 만들었던 오스왈드라는 토끼 캐릭터를 분쟁 때문에 남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토끼귀를 동그랗게 바꾸고 비용 때문에 팔뚝은 더 가늘게 해 귀여운 쥐 '미키 마우스'를 내놓자 세상은 열광했다. 마블과 스타워즈 제작사 새 주인이 디즈니가 됐을 정도다. 아이들을 앞세운 해외여행에서 그 나라의 디즈니랜드를 돌아다닌 이들도 많다.
다시 검정고무신과 이우영 작가 얘기다. 이달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작가에게 미배분된 수익을 지급하라고 출판사측에 뒤늦은 시정명령을 내렸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을 어겼고 '검정고무신'의 원작 이용료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에서 파생되는 투자 수익도 저작권자들이 나눠갖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도 내놓았다. 출판사가 등록한 '검정고무신'의 기영이, 기철이 등 대표 캐릭터의 저작권도 고 이우영 작가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작가 유족들과 만화.웹툰작가들은 "이우영 작가가 곁에 계실 때 이와 같은 결정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면서도 "늦었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기영이와 기철이가 미키마우스의 길을 걷고, 작가들이 다 디즈니처럼 될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세대를 묶어내고 일본 만화의 어설픈 모방에서 벗어나 K-웹툰의 길을 열어젖힌 창작자의 공을 잊을 일은 더욱 아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큰할아버지댁으로 놀러가면서 신나게 놀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철, 기영이(2기 에피소드)가 언젠가 외할머니댁은 가지 않을지 궁금해진다.
배성민 기자 baesm1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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