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부족하면 뚱뚱해진다…한국인, OECD서 수면시간 가장 짧아"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미국 비행기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1902∼1974)는 1927년 5월 미국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33시간 30분에 걸친 단독 비행에 성공했다.
무게를 줄이고 연료를 최대한 많이 싣기 위해 낙하산까지 빼놓고 칠흑 같은 밤하늘을 홀로 비행한 린드버그의 가장 큰 적은 졸음이었다.
옴짝달싹하기 어려운 조종석에서 수마와 오랜 시간 싸운 끝에 대륙 건너편의 환호하는 인파를 마주한 린드버그는 그야말로 영웅 취급을 받았다.
린드버그처럼 장시간 수면을 참아야 하는 상황은 드물지만, 현대 한국인의 생활은 푹 자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학력고사와 본고사가 있던 시절 수험생활을 했다면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의미의 '4당5락'(四當五落)이라는 말에 익숙할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노년 세대는 잠을 줄여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젊은이들은 늦은 시간까지 또래들과 어울리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사용하고 게임을 하며 잠을 미룬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국가별 15∼64세 수면시간 자료에 의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평균 수면 시간이 가장 짧았다.
통계청의 시간 사용 실태 조사(2019년)에서는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이 7시간 22분이고, 적정 수면시간인 7∼9시간을 자는 이들은 47%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16.4%는 6시간 미만, 44.4%는 7시간 미만을 잤다.
서울대 의대 교수이며 수면 전문가인 정기영은 신간 '잠의 힘'(에이도스)에서 이처럼 한국의 수면 부족 실태를 지적하고 잘 자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극단적으로 잠을 줄인 경험은 수면의 가치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책에 따르면 가장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은 기네스 기록은 1963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살던 당시 17세의 랜디 가드너가 보유하고 있다.
그는 무려 264시간, 즉 11일 동안 동안 잠을 참았다.
가드너는 잠을 자지 않은 지 사흘째가 되자 구역질을 하고 말을 할 때 혀가 꼬이는 증상을 보였다. 나흘째 새벽이 되니 신호등을 사람으로 착각했고, 이레째부터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말이 어눌해졌고 비틀거리면서 걸었다. 시야가 뿌옇게 되고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가드너의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기네스가 잠을 오래 참는 것을 더 이상 기록 종목으로 삼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잠을 자지 않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쥐를 대상으로 수면 박탈 실험에서 2주 이상 잠을 재우지 않았더니 털의 거의 다 빠지고 체중이 줄었으며 결국에는 패혈증으로 죽었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은 며칠간 수면 부족을 겪고 나면 잠을 몰아서 자곤 하지만 몸이 바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적정 수면 시간보다 적게 자면 잠이 빚처럼 쌓인다. 이른바 '수면 빚'이다.
필요한 시간보다 40분 정도씩 적게 잔 젊은 성인들이 수면 빚에서 완전히 회복되는데 3주가 걸렸다는 연구도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을 평소보다 2시간 정도 적게 자게 했더니 날이 갈수록 주의력 검사에서 반응 속도가 떨어졌으며 2주 정도가 지났더니 하룻밤을 꼬박 새운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됐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심혈관질환, 정신질환 등의 위험을 높인다.
수면 부족은 치매 등 인지장애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잠을 자는 동안 뇌에 쌓인 독성 단백질인 아밀로이드를 배출한다.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이 바로 아밀로이드와 관련이 깊다.
건강한 성인이 하룻밤을 꼬박 새운 뒤 뇌척수액의 아밀로이드 농도를 검사했더니 잠을 제대로 잔 경우와 비교해 아밀로이드 농도가 25∼30% 증가했으며 아밀로이드 PET 검사에서 아밀로이드 침착이 의미 있게 증가했다고 한다.
65세 이상 노인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잠을 6시간 미만으로 자거나 9시간 이상 잔 경우 7∼8시간 잔 노인에 비해서 아밀로이드 침착 정도가 높았고, 인지 기능 검사 척도인 MMSE 점수도 낮았다. 즉 수면 시간이 부족하거나 너무 많으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더 솔깃할 이야기도 있다.
잠을 적게 잘수록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높아지고, 과체중과 비만이 많아진다는 것은 많은 대단위 연구에서 일관성 있게 파악됐다.
20∼65세 한국인 8천7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하루 수면이 5시간 미만인 사람은 7시간 자는 사람에 비해 전체 비만 및 복부 비만의 연관성이 25% 정도 높았다.
주목할 점은 20∼40세의 젊은 남성이 여성보다 비만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즉 잠이 부족했을 때 젊은 남성이 젊은 여성보다 더 뚱뚱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건강한 수면 생활을 위해서 평일과 휴일을 구분하지 말고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라고 권한다.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은 생체 시계를 일정하게 유지해 좋은 잠에 도움이 된다. 또 잠자리에 들기 2시간 전부터 스마트 기기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생체 시계는 지구의 자전 주기에 맞게 작동하지만 매일 10여분 지연되는 속성이 있으니 기상 후 1시간 이내에 30분 정도 햇빛을 보면 생체 시계가 제대로 세팅이 된다. 아침 산책이 올바른 수면 습관에 도움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낮잠은 어떻게 자야 할까. 오후 2시쯤 몸이 나른할 때 20분 이내로 짧게 자는 것은 강력한 회복 기능을 보이는 '파워 낮잠'(power nap)이지만 2시간 정도 길게 자면 야간 수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운전하다 졸음이 쏟아지면 커피를 마시자마자 15분간 짧은 잠을 자고 15분 정도 지난 후 운전하는 것이 수면 없이 커피만 마신 경우보다 사고 발생률을 25% 정도 줄인다고 한다.
커피의 각성 효과는 마시고 30분 정도 지나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잠시 자고 일어나면 파워 낮잠과 커피의 각성 효과가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224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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