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공동체의 꿈[살며 생각하며]

2023. 7. 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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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관 마하연사찰음식문화원장
삼십 중반에 인도서 6년 공부
히말라야 설산에서의 ‘일깨움’
가진 것들 나눠 주고 미얀마行
평등과 자비 공동체 몸소 체험
명상·요가·자연 음식으로 힐링
몸과 마음 치유되는 도량되길

어느 여름날 이른 저녁, 한 여성이 절 마당 평상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나를 보며 다가와서 하는 말이, 본인은 기독교인인데 직원들 퇴근시키고 하루를 마감하며 잠깐 절에 올라와 쉬어가는 시간이 힐링이 된다며 환히 미소를 지었다. 불교인이 아닌 타 종교인이지만 참으로 고맙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였다. 그가 돌아간 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잠시 잊어버렸던 나의 꿈들이 떠올랐다.

실은, 이십 대부터 수행 공동체를 꿈꾸었다. 막연했지만, 인종을 초월하고 종교를 초월하여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이 사상을 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더불어 함께하는 수행 공동체였다. 한 공간에서 마음을 치유하는 명상을 하고 몸을 이완하는 요가를 하고, 하루의 일과 중 잠깐이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노동을 하고 하루에 한 번이라도 다 같이 한 끼의 공양을 하며 각자의 삶을 살되 더불어 함께하는, 함께이되 각자의 삶이 존중되는 공동체다.

나의 이십 대 때는, 오로지 수행 잘하고 도력이 깊어지면 지도력이 생기고 그 지도력으로 독재가 아닌 상생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한때는, 잠을 안 자고 경전을 읽으며 깊은 좌선으로 삼매에 들며 늘 설산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설산에 가고 싶어졌다. 나중에야 그곳이 히말라야 어느 자락쯤의 설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삼십 초반에 히말라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고 먼저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성지순례를 위한 준비로 인도와 관련된 서적 20여 권을 쌓아 놓고 탐독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인도 지도를 그리고 성지순례를 위한 계획을 세우며 참 행복하게 준비하였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인도는 나에게 늘 설렘과 그리움으로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렵사리 스승님의 허락을 받고 다시 짐을 꾸려 인도로 날아가 6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인도와의 인연은 나를 정지된 시간 속에 묶어두기에 너무나 매력적인 나라였고 날마다 감사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다. 또한, 히말라야에 대한 목마름으로 5년이 지난 9월 어느 날, 혼자서 가이드와 포터를 데리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등정에 올랐다.

힘든 산행 속에도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히말라야 정기를 흠뻑 느끼며 온몸으로 흡수하여 받아들일 수 있었다. 비로소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며 그간의 고뇌였던 일들과 생각들이 다 내려놓아졌다. 무엇을 위해 박사학위가 필요하며 문자 공부를 한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이 부질없고 헛되다는 일깨움에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짐을 느끼었다. 성스러운 설산 히말라야의 정기를 오롯이 받고 오로지 수행을 해야겠다는 신심과 열의가 불끈 솟아올랐다.

델리로 돌아온 후, 학업을 뒤로하고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유학생들과 인도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짧은 시간에 빠르게 정리하여 수행을 위해 미얀마로 향하였다. 수도 양곤의 수행센터에서 집중수행을 하며 그곳의 수행 규범에 많은 매력을 느끼었다. 사부대중(비구, 비구니, 재가 남신도, 재가 여신도)이 함께 한 공간에서 기상과 취침, 공양, 수행을 같이한다는 것은 차별이 없는 평등과 자비의 수행 공동체 모습이었다. 귀국하면 한 공간에서 같이 사부대중이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수행 풍토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나이 사십이 되어 한국에 돌아와 양로원이라는 절의 특수한 사정상 어르신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날마다 정성스럽게 열심히 어르신들을 봉양하며 많이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었다. 나 스스로 수행력이 생기면 산 좋고 물 좋은 수행 공간이 주어지리라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키우며 지냈다.

사십 중반 어느 날, 인연이 있는 대안 법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기 이천 감은사에 오게 되었다. 이천은 쌀과 도자기의 고장으로서, 개인적으로 도자기만 보아도 배부를 정도로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도시다. 감은사에 거주하며 신도가 없어 소나무와 대화하며 농사를 짓고 오가는 인연들에게 공양을 올렸다. 때론 김치찌개로, 때론 된장찌개로 소찬으로 한상차림이었지만 밥상을 차릴 때마다 공양을 받는 이들의 건강과 평안을 염원하였다. 그런 인연이었을까? 내 삶에 꿈에도 없던 사찰 음식과의 인연으로 바쁘게 10년이 넘는 시간을 쉼 없이 달리기하듯이 달려왔다.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몸도 마음도 쉬며 충분히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이젠, 제대로 된 마하연 사찰음식문화원을 건립하여 명상과 요가와 자연 음식으로 잘 짜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한다. 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내면을 깊이 채우는 명상과 요가를 통해 단 하루를 머물고 가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치유가 가능한, 그런 맑고 향기로운 공간을 세우는 것이 또 하나의 꿈이 되었다. 누구든 이 공간에 들어오면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배울 수 있고 그 배움을 통해 탐·진·치가 쉬게 되고 그 쉬게 됨을 통해 몸과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도량이길 발원해 본다. 이미 내 꿈은 작아졌고 열정도 식었지만 배워가는 도량, 쉬어가는 도량, 자유로운 도량에서 나 또한 인연 있는 모든 이와 함께 안락하고 태평하고 행복해지기를 꿈꾸어 본다.

우관 마하연사찰음식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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