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없는 ‘MB맨’ 등장…윤 대통령, 방통위원장에 이동관 지명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7월28일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를 지명했습니다. 이날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이 후보자 지명 이유로 “언론계에 오래 종사하신 언론계 중진으로서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 대변인과 홍보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며 “언론 분야의 풍부한 경험과 다양한 인간관계, 네트워킹, 리더십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 방송통신 분야 국정과제를 추진할 적임자”라고 밝혔습니다.
브리핑 자리에 참석한 이동관 지명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에 지금 각국 정부, 시민단체가 모두 그 대응에 골몰하고 있다”며 “공정한 미디어 생태계의 복원, 그리고 자유롭고 통풍이 잘되는 소통이 이루어지는 정보 유통 환경을 조성하는데 먼저 총력을 기울이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이동관 지명자는 이러한 과제를 추진하기에 적합한 인재일까요? <한겨레21> 제1467호 기사 ‘대통령이 싸움 거는 공영방송 쟁탈전’ 기사를 다시 공유합니다. ―편집자
반전은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5월30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의 면직 처분을 재가했다. 한 위원장을 겨냥한 정부·여당의 ‘사퇴 압박’이 지난 1년여간 지속됐는데, 마침내 ‘찍어내기’에 성공했다.
방통위는 방송과 통신에 관한 정책과 규제를 총괄하는 곳이다. 한 전 위원장은 2020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선임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됐다. 임기는 3년인데, 한 전 위원장은 윤 정부 출범 뒤 남은 임기 1년여를 채우려 버텼으나 두 달을 남기고 치워졌다. 한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을 상대로 면직 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및 무효소송을 낸 상태다.
윤 대통령 취임 1년, 방송사가 흔들린다
시끄럽게 비워낸 방통위 수장 자리에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가 내정됐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등 언론단체와 야권에선 즉각 반발했다. 이유는 차고 넘쳤다. 방통위는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관인 만큼, 법률로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려 정당의 당원 등을 위원(장)의 ‘결격 사유’로 명시했다. 이 특보는 법적 결격 사유에 해당하진 않아도, 현직 대통령실 인사라는 점에서 법의 취지와 어긋난다. 2015년 국회 국정감사 때 처음 불거진 이 특보의 자녀 학교폭력 은폐 의혹도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특보는 2008~2011년 이명박(MB)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 홍보수석, 언론특보 등을 거쳤기에 ‘MB식 방송 장악’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MB 정부는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정연주 당시 한국방송(KBS) 사장 강제 해임, 와이티엔(YTN)·문화방송(MBC)·KBS 낙하산 사장 임명 등으로 공영방송을 길들이려 했다. 이에 언론인들이 저항하자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언론인 해직·징계 사태가 이어졌다. 나중에 국가정보원 개혁위원회를 통해 MB 시절 국정원이 KBS·MBC 기자들을 사찰하고 ‘좌편향’ 노동조합과 언론인, 프로그램 퇴출을 기획하는 등 경영 개입 정황이 담긴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올 게 왔네요.” “이미 예견됐던 갈등 아닌가요?” <한겨레21>이 접촉한 언론학자, 언론단체 활동가 등은 진보-보수 성향을 가리지 않고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반응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윤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집권 뒤 1년여 동안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갖가지 사건이 꾸준히 발생했다는 것(표 ‘윤석열 정부 언론 자유 위협 주요 논란 일지’ 참조). 특히 윤 정부 들어 방송 규제를 총괄하는 방통위는 물론, KBS·MBC·YTN·TBS 등 공영 성격의 방송사를 흔드는 일이 잇따랐다.
‘정치적 후견인’ 자처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이동관’은 2022년 정부·여당의 한상혁 당시 방통위원장을 향한 자진 사퇴 압박이 시작됐을 때 이미 후임자 하마평에 오르내린 이름이다. 한 전 위원장이 ‘임기를 채우겠다’고 못박자 감사원, 검찰,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등이 나서서 방통위를 감사·수사·감찰했다. 방통위가 2020년 티브이(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공정성’ 점수를 고의로 낮게 바꿨다는 의혹, 2018년 교육방송(EBS) 유시춘 이사장을 선출한 과정이 적절했는지를 들여다본다는 명분이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전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2023년 47위로 1년 사이 4단계 하락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2022년 대통령실의 MBC 기자 전용기 배제와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 중단 사태에 관한 비판 성명에서 “윤 대통령의 공격적 언어와 차별적 조치를 우려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MB 시즌2’는 성큼 다가와 있었다.
‘예상 가능했다’는 반응의 두 번째 의미는 더 중요하다. ‘정치적 후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를 들추기 때문이다. 조항제 부산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는 ‘정치적 후견주의’를 “정치권력이 인사권을 매개로 공영방송의 후견인이 되는, (…) 즉 공영방송이 권력의 정치공학의 일원으로 도구화되는 것”으로 설명한다.(2023년 1월 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 특별세미나 자료)
어느 당이든 집권만 하면 공영방송의 인사권을 단단히 틀어쥘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방송 장악’ 혹은 ‘공영방송 전쟁’을 부추긴다는 의미다. 2022년 9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중앙여성고문단 특강’에서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는 “지금 방송·공기업 등에 (전 정권이) 전부 ‘알박기’를 해놔서 대통령만 우리 사람이지, 전부 다 저쪽 사람들”이라며 “천신만고 끝에 정권을 되찾아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데, 좀 오래 참고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윤핵관’으로 꼽히는 권성동 의원은 윤 대통령 지지도가 높지 않은 이유로 “좌파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총선에 승리해 다수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권당 입장에서 ‘전 정권의 방송 알박기’ 인사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의지가 도드라진다.
정부가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하는 이유는
공영방송 이사진과 사장 등 경영진 선임은 대체로 방통위를 거치도록 돼 있다.(그림 ‘공영방송 지배구조 현황’ 참조) 방통위의 위원 구성은 정부·여당 추천 3명 대 야당 추천 2명이다. 법률상 방통위는 “각 분야 대표성을 고려”(방송법 제46조)해서 공영방송 이사를 뽑으면 되는데, ‘관행’적으로 정부·여당과 야당, 즉 정치권의 추천을 받아왔다. 또 법률상 공영방송 이사회는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사진 다수가 ‘관행’적으로 엽관제(Spoils System,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나 대통령이 관직 임명권을 갖는 제도로, 정당에 대한 충성도와 기여도가 인사 기준이 되기 쉽다)에 따라 뽑혔기에 법이 정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또한 이사진 구성에서 정부·여당의 추천 몫이 야당 몫보다 수적으로 많은데다, 의사결정이 다수결에 따르므로 정부·여당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다.
예외적 상황도 있다. 2020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추천 몫으로 KBS 이사가 된 서정욱 변호사는 2021년 KBS 이사회의 수신료 인상안 표결에서 같은 당 추천 이사 가운데 ‘홀로’ 찬성표를 던졌다. “나는 자유한국당 추천(이사)이지만 KBS 이사로서 KBS의 재정 상황, 공적 책무 등을 합리적으로 검토할 의무가 있다. 고뇌를 거듭한 끝에 수신료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서정욱 이사가 2021년 <한겨레>에 한 말)
KBS 수신료 문제는 정치권의 ‘공영방송 흔들기’를 위한 대표 아이템 가운데 하나다. 윤 정부가 TV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서 걷으려는 방안을 추진하는 배경으로, KBS의 ‘정순신 변호사 아들 학교폭력 사건’ 단독 보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2023년 2월24일 윤석열 정부의 첫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지자 임명 하루 만에 자진 사퇴했다. 대통령실은 약 2주 뒤인 3월9일 돌연 국민제안 누리집에 ‘TV수신료 징수방식 개선 국민참여 토론’을 시작했다. 6월5일에는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방통위와 산업통상자원부에 후속 조치 이행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고 발표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보수 성향 언론학자는 “윤 대통령이 정치 경험이 적어서 이번 정부는 (공영방송 갈등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차이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KBS 수신료 문제는 고전적 아이템이지만, 통상 정부·여당 위치에서는 인상을 추진하고 야당이 되면 인상에 반대했다. 40년째 동결된 수신료를 인상하지 않고서는 공영방송 재원을 마련할 방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정치 양극화 시대 권력에서 자유로운 공영미디어는 필수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수신료 외 재원 마련에 별다른 논의 없이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분리해서 걷는 방안부터 추진하고 있다. 언론노조는 6월7일 낸 성명에서 “수신료 겁박” “공영방송 장악 넘어 해체를 획책하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한 전 방통위원장처럼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김의철 KBS 사장의 ‘자진 사퇴’를 압박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MB 정부, 문재인 정부도 실행하지 못한 ‘YTN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공기업인 한전케이디엔(KDN)과 한국마사회가 보유한 YTN 지분 30%가량을 매각하려는 것이다.
시청률·화제성·수익성 등 모든 면에서 공영방송을 포함한 지상파 독과점 체제가 무너지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득세한다. 공영‘방송’이 아닌 공영‘미디어’를 위한 제도 개편이 시급한 시점임을 고려해, 하루빨리 공영방송의 정치적 종속을 끊어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영방송 이사 수를 늘리고 정치권 외에 학회, 시청자위원회, 직능단체 등에서 이사 추천을 받는 내용 등을 담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들을 3월21일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해당 법안에 “민주당·언론노조의 공영방송 영구장악법”이라고 반발하며 4월14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이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이슈는 정권 비판을 넘어 민주주의 위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안정적·평화적 공론장의 필요성이 더 커지는데, 정치·경제 권력에서 자유로운 공영미디어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벌이는 ‘공영방송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민주주의이자, 국민이라는 뜻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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