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밀수', 류승완표 해양 케이퍼 무비…레트로와 올드의 경계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1970년대 해녀들이 밀수에 가담했다"
영화제작사 외유내강의 조성민 부사장은 한 지역 박물관에서 1960~70년대 활약했던 해녀 밀수단의 기록을 접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스쳐 지나갈 한 줄의 글귀다. 그러나 영화인은 달랐다. 이 한 문장에서 영화적 상상력이 발동됐다.
'바다'와 '해녀'는 익숙한 조합, 여기에 '밀수'라는 범죄 행위가 섞여 케이퍼 무비(범죄영화의 하위 장르로 범죄자들이 절도와 강탈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작품)의 근사한 토대가 마련됐다. 이 아이디어가 류승완 감독의 각본과 연출, 김혜수·염정아·조인성·박정민·김종수·고민시 연기와 만나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로 탄생했다.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극. '액션의 대가' 류승완 감독이 처음으로 바다를 무대로 펼치는 활극이다. 자신이 사랑한 고전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와 확장시켰고, 자신이 애정했던 과거의 향수와 취향을 온전히 반영한 작품이다.
김혜수, 염정아라는 동시대 최고의 배우가 메인 롤을 맡았으며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가 가세해 매력적인 캐릭터 무비를 만들어냈다. 바다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인 만큼 시각적으로 시원하고 에너지적으로도 활력이 넘친다.
180억대 대작에 여배우 두 명을 주연으로 내세운 건 한국 상업 영화에서는 최초의 시도다. 최초의 시도는 조명할 만하지만 여성 영화에만 포커스를 맞출 필요는 없다.
김혜수, 염정아는 특유의 끼와 카리스마로 서사의 중심축을 세웠지만, 두 사람의 워맨스가 영화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정민과 고민시는 팔색조 매력을 발산하며 영화와 캐릭터에 독특한 개성을 불어넣었고, 조인성은 특별 출연이지만 그 어떤 영화 속 활약보다 매력적인 50분을 만들어냈다. 캐릭터 무비의 핵심이 '앙상블'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류승완의 멀티 캐스팅은 매우 성공적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만큼 영화는 시대의 분위기와 온도를 충실하게 재현했다. 이야기의 공간과 인물, 음악과 패션 등 모든 요소에 있어서 복고의 향기가 물씬 난다. 급격한 산업화와 그에 따른 부작용, 서민의 고통과 공무원의 비리를 통해 빈익빈 부익부의 그늘을 넌지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토대일 뿐 시종일관 오락 영화의 터치로 극을 완성해냈다.
다만 서사의 밀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건이 벌어지고, 인물 간의 오해와 갈등이 야기되는 초, 중반의 이야기가 다소 루즈하게 펼쳐진다. 물론 이는 믿음과 배신, 연대와 화해로 이어질 결말과 통쾌한 액션을 위한 빌드업이지만, 이야기의 설계가 새롭지도 촘촘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장르적 쾌감에 온전히 도달하지 못한 듯한 인상도 남긴다.
이야기의 아쉬움은 캐릭터와 액션이 채운다. 특히 수중 액션과 지상 액션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한국 상업 영화에서 최초로 시도된 수중 액션이 압권이다. 김혜수, 염정아를 필두로 김재화, 박경혜 등의 배우들이 장기간의 훈련을 거쳐 바다, 수조 세트에 직접 뛰어들었고 실감 나는 액션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수중 액션과 촬영 모두 쉽지 않은 도전이었겠지만 장면의 구성에 따라 카메라 앵글을 다양하게 잡고, 사운드를 폭넓게 활용해 물속의 역동성을 표현해 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의 관계를 묘사한 우아한 몸짓이다. 두 사람은 위아래로 교차하는 물길에서 서로의 손을 터치한다. 차가운 심해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은 우정의 온기다.
땅 위에서 펼치는 남성 캐릭터들의 액션도 역동적이다. 류승완 감독의 초기작인 '짝패'(2006)와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의 액션을 보는 듯한 날 것의 활력이 넘친다. 박정민에게는 장도리를, 조인성에게는 칼을 쥐어주고 그들을 위한 독무대를 깔았다. 영화의 박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이 장면들은 바다와 땅으로 이어지는 액션의 하이라이트 역할을 한다.
가수 장기하가 맡은 영화음악은 '밀수'를 1970년대로 안내하는 청각 가이드 역할을 한다. '앵두'(최헌), '연안부두'(김트리오), '님아' (펄 시스터즈),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산울림) 등 시대를 풍미한 명곡이 영화 내내 흐른다.
콘셉트와 취향이 명확한 음악인 데다 사운드를 크게 활용하기 때문에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여지도 있지만 시대와 극의 무드를 형성하는데 음악만큼 훌륭한 보조제는 없다.
특히 권 상사(조인성)의 후반부 액션 장면에 깔리는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는 6분 10초에 달하는 대곡 전체를 사용해 액션의 기승전결과 연결시킨 듯한 구성이 매력적이다.
쿠키 영상도 있다. 류승완 감독의 위트가 돋보이는 이 보너스 영상은 마카롱 디저트 같은 달콤한 유희를 선사한다.
재밌는 영화는 계절을 타지 않는 법이지만, 영화의 어떤 공간은 특정 계절에 만나야 더욱 빛난다. 바다를 주무대로 활용하는 '밀수'는 확실한 여름용 오락 영화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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