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는 하녀, 심지어 소녀였다”...잡종으로 불린 사내, 이중간첩으로 살다 [나쁜 책]
[금서기행, 나쁜 책-3] 비엣 타인 응우옌 ‘동조자’
자술서에 따르면 주인공의 아버지는 프랑스인, 어머니는 베트남인이었습니다. 그는 ‘사생아’였습니다. 가톨릭 신부였던 아버지의 베트남 체류 시절, 아버지의 하녀(심지어 ‘소녀’)였던 어머니 몸에서 그가 태어났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주인공은 이렇게 불렸습니다. “잡종 새끼, 잡종 새끼.”
성인이 된 주인공은 미국으로 건너가 최고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는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에 파견된 CIA 비밀요원이 됩니다. 그런데 그는 사실 북베트남 공산당이 몰래 숨겨둔 ‘이중간첩’이기도 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해외 드라마로 제작 중인 장편소설 ‘동조자(The Sympathizer)’ 의 설정입니다. 이 소설은 2016년 퓰리처상 수상작이지만 작가의 모국 베트남에선 읽을 수 없습니다. 왜 이 책은 금서일까요?
그는 남베트남(자유주의 계열) 최고위직 장군의 빌라에서 아침식사를 함께 합니다. 주요 업무는 긴급 공문 작성이었습니다. 장군의 유능한 부관인 그는 CIA 비밀요원 역할도 동시에 수행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정체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9세 이전에 북베트남(공산주의 계열)의 지시를 받고 잠입했던 공산당 소속 간첩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장군의 충성스러운 참모, 한꺼풀 벗겨보면 CIA 요원, 속내까지 들여다보면 공산주의자 이중간첩인 인물이었지요.
소설은 주인공과 장군이 베트남을 떠나 미국령 괌으로 가는 장면에서 본격 시작됩니다. 북베트남 18개 사단이 남베트남 도시 사이공을 포위합니다. 주인공과 장군은 수백여 명의 난민과 함께 미군 수송기에 탑승합니다. 죽음에서 벗어나려는 피난 행렬이었습니다(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으로 남베트남 멸망).
용감했던 남베트남 전사들은 영광을 뒤로 하고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악명 높았던 장군은 피자 가게를 ‘호령’하는 촌부가 됩니다. 병참 담당이었던 대령은 건물 잡역부, 무장 헬리콥터를 조종하던 늠름한 소령은 정비공, 게릴라를 추적하던 대위는 즉석요리 전문 요리사, 보병 중대의 유일한 생존자인 중위는 배달부가 됐습니다.
이들 패잔병들은 고깃국물을 팔고, 벽돌을 운반하고, 즉석요리를 판매하며 모은 자금으로 고국 베트남에 다시 ‘쳐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주인공은 과연 CIA와 베트콩 사이에서 안전할 수 있을까요.
베트남 전쟁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는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도 황석영 ‘무기의 그늘’, 안정효 ‘하얀 전쟁’ 등이 대표적이었죠. 하지만 미국에선 베트남 전쟁이 패전이었기에 잘 다뤄지지 못했습니다. ‘동조자’는 베트남계 미국인의 시각으로 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소설입니다.
하지만 단지 작가의 국적만이 이 소설의 특징은 아니었습니다.
응우옌 작가는 인종(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종교(가톨릭 금기인 신부의 정사로 태어난 사생아), 이념(CIA 비밀요원이자 북베트남이 심은 고정간첩) 등 모든 차원에서 ‘혼종’의 정체성을 사유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베트남에서도 주변인이고 미국에서도 주변인, 남북 어디에서나 강하게 의심을 받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관계된 거의 모든 사람들을 주인공은 비웃습니다. 베트남을 조롱하고, 미국을 비꼬고, 자신들을 식민지 삼았던 프랑스를 냉소합니다.
주인공의 유쾌한 조소는 내밀한 자학 개그에 가깝습니다. 이런 문장들이지요. 무수히 그은 밑줄 중 일부입니다. (이 소설은 거의 전체가 1인칭 문장입니다.)
① [주인공이 미국에 도착해 서양식 좌변기에 처음 앉는 장면] “나는 어린 시절 내내 둘로 조각나 있는 변좌에 앉았고, 내가 자세를 취하면 식탁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던 메기들을 생생히 기억했습니다. (중략) 서구 세계가 뒤를 닦는 종이는 나머지 세계가 코를 푸는 종이보다 부드러웠습니다. 비록 이런 비교는 그저 은유일 뿐이기는 하지만요. 나머지 세계는 심지어 코를 푸는 데 종이를 사용한다는 사치스러운 생각에도 놀라 자빠졌을 겁니다.” (264쪽)
②[베트남인들이 미국에서 이산가족이 된 직후의 장면] “만일 함께 지낼 수만 있었다면 우리는 어지간한 크기의 자급자족적 공동체, 즉 미국이라는 정치적 통일체의 엉덩이에 난 뾰루지 같은 집단을 만들 수가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함께 지내는 것을 허락 받지 못하고, 관료주의적 결정에 의해 새로운 세계의 모든 경도와 위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125~126쪽)
③ [주인공이 소년 시절 첫 수음을 회상하는 장면] “나는 열병에 걸릴 듯했던 청소년기 이래로 줄곧 왕성한 기력으로 부지런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거짓 기도를 드릴 때 십자가를 긋던 바로 그 손을 사용해서요. (중략) 나는 최초의 비정상적인 행위를 열세 살에 어머니의 부엌에서 훔쳐 낸, 내장이 제거된 오징어 한 마리와 저질렀는데 놈은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진정한 운명을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아, 말 못하는 불쌍하고 순결한 오징어여!” (141쪽)
소설 ‘동조자’는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성적으로 파문을 일으킬 만한 요소가 가득한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미국 최고의 저술상인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응우옌 작가의 ‘동조자’는 정작 베트남에선 금서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로, 첫 번째 이유는 공산당 모독이 반복 서술되기 때문입니다.
응우옌 작가는 CIA 간부 ‘클로드’와 남베트남 장군의 대화 장면에서 베트콩 공산주의자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저 개같은 공산주의자 새끼들이···.” (157쪽)
또 주인공은 미국에서 은인인 해머 교수를 만나는데, 해머 교수는 과거 공산주의자였다가 전향한 인물이었습니다. 주인공이 해머 교수에게 묻습니다.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것을 후회하시나요, 교수님?” 그러자 해머 교수는 답합니다. “아니, 그렇지 않아. 결과적으로 그 실수를 저지른 덕분에 오늘날의 내가 될 수 있었어.” (180~181쪽)
주인공은 공산당을 위해 정보를 전달하는 업무를 평생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조국 북베트남에 돌아갔을 때 아무도 그를 동료로 환대하지 않습니다. ‘미국 사상에 물들었다’는 이유에서였죠.
공산주의자들은 주인공의 옷을 전부 벗겨 매트리스 위에 눕힙니다. 기절할 듯이 졸린 주인공이 잠들려 할 때마다 여러 고문기술자들이 돌아가며 주인공을 발로 툭툭 건드립니다. 절대 잠들지 못하게 하려는 수면 고문이었죠. 아주 환한 조명을 켜서 그의 얼굴을 비추며 괴롭히기도 합니다.
또 그들은 소련이 선물한 혈청을 그에게 주사합니다. 9볼트 배터리 전선을 그의 귀에 꽂아 전기로 고문합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그의 목구멍으로 물을 붓기도 하지요. 주인공은 미쳐버리기 직전까지 갑니다. “제발 잠 좀 자게 해줘!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라고 비명을 지르는 주인공의 마지막 요청을 공산당 비밀 정치위원은 들어주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것은 바로 나였다.” (626쪽)
베트남을 식민지화했던 프랑스도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고, 패망을 앞두고 무능하고 부패했던 남베트남도 무책임한 정부로 비판 받습니다. 패망한 장수인 ‘장군’이 난민들에게 슬리퍼로 뺨따귀를 때려 맞는 장면도 그려지지요.
그런데도 미국은 이 소설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했고, 베트남은 이 소설을 하대했습니다. 왜일까요.
응우옌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내 봤습니다. 며칠 뒤 긴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원문을 옮겨 적어 봅니다.
응우옌 작가가 밝혔듯이, 소설에서 베트남의 국부로 통하는 호치민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대목이 이 소설이 베트남에서 출판이 금지된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소설에서 미국에 도착한 베트남 난민들은 미국인이 버린 고급의상을 주워 입고 정치적 항의 성명이 적힌 알림판을 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손에 든 알림판에는 “호치민=히틀러?”, “우리 국민에게 자유를!”(390쪽)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응우옌 작가와 같은 베트남 보트 피플이 바라보기에 호치민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호치민은 반대파를 탄압했고 민간인 학살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칸영화제를 비롯해 세계의 영화상을 수상한 거장 박찬욱 감독이 연출하는 데다 영화 ‘아이언맨’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무려 1인 5역을 맡았기에 더 화제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박 감독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동조자’를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정이 느껴지는 한 마디이지요.
“어떤 작품을 하겠다고 결정할 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야 하고 잘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어야 하는데 ‘동조자’는 그런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박 감독의 작품은 소설을 원작 삼은 작품이 많습니다. 영화 ‘아가씨’ ‘공동경비구역 JSA’는 소설이 원작이고 ‘올드 보이’도 일본 만화가 원작이었지요. 이번 ‘동조자’에 그는 어떤 색깔을 입힐까요.
4세 때 미국으로 건너간 보트 피플 출신인 그와 그의 형은 ‘아메리칸 드림’을 현실로 바꿔낸 신화적 인물들입니다. 응우옌의 형은 미국 행정부에서 백악관 자문위원회를 이끌었던 의사로 여러 매체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응우옌 소설가 본인은 UC버클리에서 영문학과 민족학 학위를 받은 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강의하는 교수입니다.
4세 때 미국으로 갔던 보트 피플의 후예는 자기 자신이 역사 속에서 누군인지를 정확히 바라봄으로써, 또 과거와 현재의 연결선상 위에서 스스로를 잊지 않음으로써 현재의 자리에 섰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명언을 떠올리게 하지요.
디아스포라(Diaspora)란 특정 민족이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재일교포(마이니치)를 다룬 이민진 소설 ‘파친코’, 윤여정 배우가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영화 ‘미나리’ 등이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디아스포라 작품이지요.
‘동조자’의 주인공은 이처럼 수많은 베트남인의 비극적 운명을 응축한 캐릭터였던 것이지요.
베트남은 미국의 패전으로 우리나라와는 다른 길을 갔지만 말이죠.
저는 ‘동조자’에서 주인공의 독백을 읽는 내내 최인훈 소설가의 대표작이자 20세기 최고의 한국소설인 ‘광장’ 속 이명준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과연 저뿐일까요?
한 국가가 치른 전쟁은 영구적인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전쟁의 상흔은 거의 ‘낡은 것’ ‘오래된 것’으로 치부되어 망각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비엣 타인 응우옌 작가의 소설과 문장은 여전히 현재적입니다. ‘헌신자’ ‘난민들’ 등 후속작 소설이 출간 때마다 큰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한국문학에서도 응우옌과 같은 작가들이 장대한 역사소설로 세계 문학과 길항하는 때를 기다려 봅니다. 슬픔은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질 뿐, 낡아지는 감정은 결코 아니니까요.
※ 다음 주에는 최근 타계한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 장편소설 <농담>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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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에게 펼쳐진 책과 같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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