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다시 제기된 공안(公案), 기업의 존재이유!
2011년 개정 상법은 “회사란 상행위나 그 밖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여 설립한 법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법적으로 회사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지만, 그 중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효시인 ‘주식회사’는 현대 기업의 대표적 형태이다. 동인도회사의 설립과 더불어 암스테르담에 생긴 증권거래소는 기업이 동원할 수 있는 자본의 양적 팽창을 가져왔고,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출발이 되었다.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기업은 가계(소비자), 정부와 함께 경제 활동의 3대 주체이다.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며, 그 사전적 정의는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 판매하는 조직”이다. 회사이든 기업이든 공통적으로 영리 또는 이윤을 추구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기업의 존재이유’였고, 그것을 당연시했다. 그러나 이제 ‘기업의 존재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기업가와 대중의 공안(公案)으로 다시 대두되었다. 그 배경은 자본주의 부작용 심화, 지구 온난화와 환경보호 그리고 기업 영향력의 폭발적 팽창이다.
아담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를 지탱하는데, 그 원동력은 자유로운 개인의 이기심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처럼 개인이 아닌 기업이 시장경제의 주역이 된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기업은 왜 생기는가에 대해서는 미국 시카고대 교수이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스(Ronald Coarse)가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1937년 <기업의 본질>에서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이 생긴다고 설명하였다. 즉, 개인이 일일이 시장에 참여하면 가격 조사, 법률 비용 등 매 거래마다 여러가지 비용이 드는데, 타인을 고용하여 조직을 운용하면 구매, 생산, 판매 등에서 절감할 수 있는 거래비용이 조직 운영비보다 더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코스 교수의 주장처럼 기업은 탄생부터 특정한 목적을 가진 의식적 구성체이다. 조직을 운영하며 ‘거래비용’을 절감하려는 기업의 입장에서 최종 목표는 당연히 ‘이윤추구’로 귀결 되었으니, 그것을 기업의 존재이유로 본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다. 이 맥락에서 기업이라는 조직의 본질은 ‘주주 이익추구 단체’로 된다. 이는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케인즈와 함께 20세기 경제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자유시장주의자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의 말로 더욱 확고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 창출”이라고 평생의 지조처럼 확고하게 주장했다. 그 이윤은 주주에게 돌려줘야만 새로운 투자로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고, 채권자에게 이자를 지급할 수 있게 하고, 정부에게는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게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주장은 닉슨이나 레이건 등 보수 자유주의 정권의 이론적 바탕이었다.
기업의 존재이유가 ‘주주 이익추구’라는 이론에 도전한 새로운 견해가 1999년 미국에서 등장하였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주주, 노동자, 채권자, 경영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는 ‘생산 공동체설(Team Production Theory)’이 블레어(Margaret Blair)와 스타우트(Lynn Stout) 교수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주주는 자본으로, 노동자는 노동으로, 경영자는 자신의 노하우를 투자하여 거둬들인 과실을 이윤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이윤은 주주 뿐 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있다. 이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도 하며 이들은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이 이론이 등장한 후 곧이어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터졌다. 그 영향으로 2018년, 놀랍게도 미국 갤럽조사에서 당시 30세 이하의 젊은 세대가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자본주의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45%였고, 사회주의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51%로 높아졌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한 민주당 워렌(E. Warren) 상원의원이 ‘책임 있는 자본주의 법안(Accountable Capitalism Act. S 3348)을 2018년 8월 연방의회에 제출했다. 연간 수입이 10억 달러(약1.2조원) 이상인 회사는 연방 상무부의 인가를 받아 등록하고, 그 기업의 이사회는 노동자가 40% 이상을 선출하고, 경영자의 보수도 제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비록 그 법안이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자본주의 기업에 대한 충격적인 공격이었다.
이런 충격적 분위기 속에서 2019년 8월, 아마존, GM, Apple, CISCO, 월마트 등 200여 명의 주요 대기업 CEO로 구성된 단체인 BRT(Business Roundtable)가 ‘기업의 목적에 관한 입장’을 발표했다. 그 발표는 기존의 ‘주주 우선’ 입장을 버리고 공급망, 임직원,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도 배려하는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천명한 것이다. 이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등장을 의식한 것으로, 기업의 본질에 대해 획기적인 시각의 변화를 보여준 것이다.
한편 미국의 법원은 경영자들의 이런 입장 변화 이전부터 기업의 존재이유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취했다. 즉, 1919년부터 미국법원은 이사회의 구성원인 이사의 책임에 대해 ‘이사는 주주의 대리인’이 아니라 ‘기업의 수탁자’라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따라서 주주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충돌할 때 이사는 주주에게 손해가 가더라도 기업에 이익이 가는 방향으로 의사 결정해야 한다고 판시하였으니, 이것은 곧 기업의 본질을 ‘주주이익 추구단체’가 아니라 ‘생산공동체’에 입각하여 본 것이다. 우리나라 법원도 같은 입장으로 이사는 기업 이익을 우선 보호해야하는 임무가 있으며 이를 위반하면 배임죄가 된다고 해석한다.
기업의 본질 및 존재이유는 ‘주주 이윤추구’에서 자꾸 멀어져 가고 있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그의 저서 <MANAGEMENT>에서 “이윤은 기업의 목적이나 동기가 아니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그 타당성의 판정 조건이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보험이며, 기업 존속의 조건이다”라 명확하게 정의하였다. “기업은 이윤을 내야만 비로소 사회 공헌 활동을 완수할 수 있고 그래서 이윤은 기업이 보다 나은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할 있게 해 주는 수단이다”고 부연 설명하였다. 그는 기업의 존재이유를 내부에서 찾지 말고 외부, 즉 고객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고객의 욕구가 감지되면 그들을 만족 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기업이니, 기업의 존재이유는 고객이라고 확실히 설파한 것이다. 드러커의 이같은 확실한 정리는 2000대 초, 그의 인생 말년에 나온 완숙한 성찰의 결과이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나온 직후의 일이니 그의 통찰력과 시대 사조의 흐름을 예지한 탁월한 능력의 결과라고 보여 진다.
이제 기업의 사회적책임(CSR)과 ESG 경영이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고 MZ 세대는 ‘ESG 소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회적 환경이다. 우리 상법은 기업의 영리추구를 개념적 정의로 쓰고 있지만, CSR과 ESG 그리고 윤리경영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존재이유’에 대해서는 성문법에서 벗어나 순발력 있는 시각의 변화를 스스로 가져야 할 때이다.
기업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은 유기체이다. 그래서 어떤 이유이든 변화하는 생태계에서 적응하여 살아남아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생존하는 Company는 같이 일하는 Company(동료)와 빵을 나누어 먹어야 한다. ESG는 ‘기업의 존재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공안(公案)을 다시 제기하고 스스로 답을 찾기를 기대하고 있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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