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닮은 전등, 눈 결정 모양 초콜릿… 불규칙성에 담은 실용[최경원의 세상을 바꾼 디자인]

2023. 7. 2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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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카페 - 최경원의 세상을 바꾼 디자인 - (28) 패트릭 주앙
스푼 끼워놓을 수 있는 냄비·누르면 한번에 펴지는 원 샷 의자… 일상 생활의 편리함에 초점 맞춰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듯한 유리구 조명선 미술작품 연상… 기계주의적 정형화 거부한 파격 돋보여
물방울을 연상케 하는 조명

프랑스의 디자이너들은 일반적으로 특유의 장식성이나 낭만주의적 경향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패트릭 주앙은 현실적인 실용성에 기반을 두고 프랑스적 낭만주의를 표현하는 디자이너다. 그래서 그의 디자인은 구체적인 삶 속에서 정서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해준다.

◇ 알레시를 위한 파스타 냄비 디자인

알레시 파스타 냄비

이탈리아 주방용품 브랜드 알레시(Alessi)를 위한 파스타 냄비를 보면 냄비 손잡이에 홈이 파여 있다. 뚜껑 손잡이와 몸체 손잡이를 함께 잡으면 홈이 안 보이는데, 이 홈에는 파스타 요리를 할 때 긴요하게 쓰이는 요리용 나무 스푼을 끼울 수 있다.

◇ 몸체 손잡이 홈에 나무 스푼이 끼워진 모습

몸체의 손잡이와 나란히 나무 스푼이 놓여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우면서 요리 시 불편함을 잘 포착한 디자인이다. 별것 아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암초처럼 박혀있는 불편함을 기발하게 해결한 센스가 돋보인다. 일상화된 불편함을 짚어내는 디자이너의 섬세한 감각이 기능성을 넘어선 즐거움을 준다.

◇ 하겐다즈를 위한 초콜릿 디자인(Flocon)

하겐다즈 초콜릿

주앙의 일상생활적 디자인 센스를 잘 보여주는 디자인 중 하나가 바로 초콜릿 디자인이다. 초콜릿이라고 하면 사각형의 모양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주앙은 초콜릿의 모양을 눈 결정 모양으로 디자인, 매력적인 맛을 가진 초콜릿에 상징적인 의미까지 부여해서 초콜릿의 매력을 더욱 배가시켰다. 소복하게 쌓인 눈처럼 초콜릿의 맛도 부드럽고 차분할 것 같은데, 이미 눈으로 맛을 보게 된다.

◇ 조명 디자인 에테르(Ether)

에테르(Ether) 조명

조명의 이름을 에테르라고 지은 것부터 상징성이 가득하다. 주앙이 디자인한 조명등 에테르는 유리로 만들어진 비정형의 속이 빈 구 형태들을 모아서 주렁주렁 달아놓았다. 디자인은 간단해 보이는데, 정확한 구 형태가 아니라 비정형으로 만들어진 투명한 유리구들이 자아내는 인상은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보인다. 에테르, 즉 알코올처럼 금방이라도 기화해 날아갈 듯하다. 정확한 기하학적 형태로 만들었다면 기계적이고 딱딱해 보였을 텐데 비정형의 투명한 유리구가 여럿 모여 있으니 아침에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이슬이나 물방울을 연상케 한다.

◇ 맑은 이슬이나 물방울을 연상케 하는 조명

현대 디자인에서는 무엇을 만들더라도 기하학적으로, 생산성이나 기능성만 고려했던 게 얼마 전까지였다. 이제는 불규칙하고 자연스러운 이미지의 디자인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단지 형태에 대한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20세기를 장악했던 기계주의 미학이 완전히 퇴조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향후 디자인이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이 조명등의 디자인에 잠재된 가치는 대단하다.

◇ 울퉁불퉁한 모양의 조명 디자인 수은(Mecure)

둥근 금속 모양으로 디자인된 조명 디자인에 수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게 좀 이상한데 자세히 보면 수긍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조명 디자인의 모양은 대칭 형태를 이루는데, 한쪽이 움푹 들어가 있어서 대칭형이 살짝 붕괴됐다. 둥근 모양은 수은이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액체 금속이 인력으로 응축돼 대칭형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항상 흔들거려 비대칭의 불균형 상태가 되기 쉬운데, 그것이 움푹 들어간 부분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됐다. 금방이라도 흔들흔들 액체처럼 움직일 것 같다.

이 조명은 단단한 금속 재질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은의 원형에 아주 가까이 간 듯하다.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진 금속인데 가공되지 않은 수은의 원형질에 가깝게 가공됐다는 점은 철학적이기도 하다. 조명이라는 기능적인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본질에 대해 많은 사유를 하게 만드는 디자인이다.

◇ 한 번에 의자가 되는 원샷(One Shot)

철학적이거나 상징성이 강한 디자인을 하는 주앙이 실용성이나 구조에 대해서도 앞서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원샷 의자다. 평소에는 원기둥 모양인데, 앉을 때 윗부분을 잡고 눌러주면 우산이 펴지듯 의자로 펴진다. 하나의 플라스틱 덩어리가 변신 로봇처럼 구조 변화가 쉽게 이뤄지는 것은 디자이너의 탁월한 설계 능력 덕분이다.

의자의 형태를 자세히 보면 구조가 아주 복잡하다. 관절 부분이 움직이기 때문에 부품도 많고, 그 움직임이 고려된 형태들도 매우 복잡하다. 디자이너로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얇고 탄력성이 좋은 플라스틱으로 체중을 견딜 수 있게 디자인한 점은 구조에 대한 이해가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앙이 현실적인 구조나 생산 엔지니어링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실력이 월등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 디자인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표현한 듯한 솔리드(Solid) 의자

솔리드(Solid) 의자

주앙의 철학이 아주 잘 담긴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단연 이 솔리드 의자를 들어야 할 것 같다. 의자라는 것은 형태의 실루엣으로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고, 그냥 봐서는 일단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기능적인 디자인이라는 것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냥 디자이너가 장난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순수미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막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상당한 첨단기술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의자가 전혀 의자 같지도 않고, 불완전한 형태로 보인다.

주앙이 의자라는 실용적인 가구를 이렇게 만들었던 데는 형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 원리에 대한 파격적인 시도가 깔려 있다. 질서에 대한 불신, 기계적 완벽함에 대치되는 무질서의 완벽함에 대한 믿음 때문에 이렇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과학에서의 불확정성 원리와도 이어진다. 과학에서도 이제는 엄밀한 규칙성이 부정되고 있고, 더 이상 과학으로 세상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견해가 일반화되고 있다. 완전한 수학적 형태가 사실 완전한 것이 아니고, 완전한 것은 자연의 살아있는 형태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주앙은 디자인에서 의도적으로 불규칙한 형태를 표현한 것이다. 최근 우주관의 변화를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표현하면서 이전의 기능주의 디자인, 합리성을 추구했던 디자인을 부정하고 있다.

디자이너 주앙은 디자인을 통해 단순한 상품성·기능성을 넘어서 물리학적 우주론, 새로운 조형관을 표현하는 단계에까지 다가갔다. 그의 디자인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단지 디자인이 사용하는 물건을 만드는 수준의 직업적 일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주앙의 디자인은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고 우리가 봐야 하는 게 무엇인지를 사용하는 물건을 통해 보여준다.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패트릭 주앙 Patrick Jouin (1967∼)

- 1967년 : 프랑스 낭트 출생

- 1992년 : 파리 ENSCI 산업디자인학교 졸업

- 1992년 : 필리프 스타르크 추천으로 Thomson Multimedia에서 근무

- 1998년 : Patrick Jouin ID 설립

- 2009년 :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개인전

- 2011년 : 황금컴퍼스상 수상

- 2014년 : MOMA의 Solid 컬렉션 등 많은 디자인 세계 박물관에 영구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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