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조합에서 열리는 새로운 맥락…하이퍼텍스트를 예술로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7. 2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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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
독일 작가 마틴 그로스
국내 첫 개인전 ‘드림 파일’
9월 16일까지 파운드리 서울
마틴 그로스, Time to Go (2023) 파운드리 서울
“그래서 이제 어쩌란 말인가.(Und Jetzt)”

이렇게 합창단(CHOR)이 외친다고 독일어로 쓰였다. 중세시대 기적을 다룬 16세기 책 이미지에서 출발한 그림 ‘Time To Go’(2023)은 노래하는 입들로 둘러싸인 가운데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이모티콘으로 마무리된다. 당황이나 놀라움을 뜻하는 이 이모티콘이 새삼 에두아르 뭉크의 ‘절규’와 닮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포스터 형식으로 표현한 오늘날 현대인의 자화상이 거친 오일스틱으로 완성됐다.

독일 작가 마틴 그로스(39)는 서울 한남동 파운드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국내 첫 개인전 ‘드림 파일’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 뒤섞인 현실을 전시장 전체에 구현했다.

작가의 접근법은 1965년 테드 넬슨이 만든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오마주다. 책이나 일반 문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던 방식과 달리 하이퍼텍스트는 링크로 연결된 문서들을 이곳저곳 원하는 위치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게 했다. 이런 방식이 바로 이 작가의 작업 방식과도 연결된다.

마틴 그로스의 ‘드림파일’전시 전경. 파운드리 서울
전시장 지하1층으로 입장하면 2개 층을 뚫어 만든 높이 7m의 거대한 왼쪽 벽에 텍스트로 구현된 5분 남짓한 영상 작업이 정지화면처럼 걸려있는 평면 회화 사이에서 속도감을 올려준다. 작가가 처음 시도한 대형 영상 작업 ‘Oh Sega Sunset’(2023)은 검정 배경에 주황색 영어 문구가 빠르게 흘러나온다. 모아온 시 구절이나 인용문, 키워드 등 전혀 이어지지 않을 문장들이 바쁜 현대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다. 통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글자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등장한 것이 낯설고 불편하다.

이미지와 텍스트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작가는 실제로 제니 홀저와 바바라 크루거 등 개념주의 작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마틴 그로스, Grey Skies Turquoise Days 파운드리 서울
마틴 그로스, Night Forest(2023) 파운드리 서울
판화나 콜라주 등 다양한 미술 실험을 한 것처럼 보이는 평면 작업은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종이에 오일스틱으로 그렸음을 확인하게 된다. 노을빛 하늘에 날아가는 갈매기나 밤의 숲속 같은 서정적인 장면도 적외선 카메라 사진이나 컴퓨터 화면 등에서 볼 법한 이미지로 재해석됐다. 애플 음성 비서 ‘시리’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유령처럼 시각화한 회화도 있다.
마틴 그로스, All in Cold(2023) 파운드리 서울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스팸 이메일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정보 이미지와 채팅 대화나 댓글 등을 정보로 수집하고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을 함께 병치하면서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내러티브와 맥락을 만드는 것이 흥미롭다”면서 “나는 낭만주의와 하이테크 사이에 있으면서 그 충돌과 대조를 회화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독일 작센주 프라우엔에서 태어나 라이프치히미술대학, 런던 로열아카데미에서 공부한 작가는 종이에 연필로 건축구상도를 그리는 작업에서 출발해 공간감을 구축하는 작업을 거쳐 콜라주 같은 회화와 동영상 작업으로 확장되고 있다.

전시는 9월 16일까지.

마틴 그로스 작가 sunn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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