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그림으로 본 세상] 파인애플 옆 피자
우리가 믿는 현재
우리가 모르는 과거
# 17세기 그림에서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수박을 본 적 있습니다. 과육이 적은데다 색도 연해서인지 무척 낯설었습니다. 과학자들이 '리코펜' 성분을 보충해 과육을 붉게 만든 게 지금의 수박이 됐다고 합니다.
# 이번엔 피자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탈리아 문화부가 최근 2000여년 전 화산 폭발로 파괴된 폼페이 유적에서 이탈리아 피자의 '원조'로 추정할 만한 그림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 아메리카대륙에서 유럽으로 토마토가 건너간 것과 모차렐라 치즈가 만들어진 시기보다 훨씬 이전에 그려진 그림이어서 '그림 속 음식'이 진짜 피자라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이 그림이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끈 이유는 '원조 피자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림 속 음식 옆에 있는 과일 때문이었습니다.
# 흥미롭게도 그 과일은 파인애플입니다. 흔히 파인애플 토핑을 얹은 피자를 '하와이안 피자'라고 일컫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토핑을 혐오해 피자의 본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 그런데 정작 이탈리아 문화부가 '파인애플 옆에 있는 음식'을 피자의 원조로 추정한다'고 밝히자, 웃지 못할 모순이 발생했습니다. '파인애플 토핑 피자'를 혐오하던 이탈리아 사람들이 '파인애플 옆 피자'를 원조라고 주장하는 셈이 됐기 때문입니다.
# 이처럼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을 옛 기록에서 발견하는 건 색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참, 그림 속 음식이 '피자'인지는 언제쯤 밝혀질까요? 만약 그게 피자라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웃어야 할까요, 울어야 할까요?
송정섭 작가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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