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100K] 실격 당해 쉬었으면…뛰는 내내 포기 유혹 11시간 26분에 마침표

윤성중 2023. 7. 2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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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닝 대회 참가기

지난 6월 첫째 주말, 경남 거제시 거제스포츠파크 일원에서 '거제100K' 트레일러닝대회가 열렸다. 대회는 거제100K 추진회Team UTGJ와 장평동체육회 주관, 이탈리아 아웃도어 브랜드 라스포르티바La sportiva를 비롯해 거제시·거제시체육회·거제시장평동이 후원했다. 필자는 이 대회 50km 부문에 참가, 11시간 26분 11초 기록으로 골인했다.

50km 부문 참가자가 오르막을 걷고 있다. 이날 날씨가 더웠다. 100여 명의 기권자가 나왔다.

"11시간 동안 산에서 대체 뭘 한 거야?"

거제100K 대회가 끝나고 며칠 뒤, 함께 대회에 참가했던 형을 만났는데, 그 형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창피하거나 화가 나거나 슬프지 않았다. 덤덤하게 답했다.

"글쎄요, 저 11시간 동안 산에서 도대체 뭘 한 걸까요?"

형은 나와 같이 50km 부문에 출전해 8시간 12분 만에 골인했다. 당연히 형은 내가 골인할 때까지 3시간여를 기다리지 못했다. 그는 먼저 대회장을 떠났다. 형을 만난 건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였다. 11시간 동안 나는 산에서 뭘 했을까? 그를 만나고 나는 나에게 다시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산을 오르내린 기억밖에 없다. 도중에 기념사진을 찍었다거나 숲 속에서 누워 잠을 잤다거나 화장실에 들르지도 않았다. 오르막이 나오면 걷고, 평지에선 이따금 뛰었다. 오로지 앞만 보고 이동했다. 나는 나에게 다시 되물었다. 이게 11시간이나 걸릴 일이었을까? 나는 왜 그랬을까? 답을 하기 위해 계속 생각했다.

거제100K 참가 신청 공지를 인터넷에서 본 건 올해 초쯤이었다. 고민 없이 신청했다. 신청하면서 생각했다. '올해는 작년 기록을 깨야지.' 작년에 거제100K 50km 부문에 출전해 얻은 기록은 11시간 1분이다. 약간만 훈련하면 올해는 이것보다 더 빠른 기록을 낼 것으로 자신했다. 커다란 바위 같은 자신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깎이고 깎여 돌멩이가 됐다. 훈련을 많이 못 한 것이다. '바빠서 뛸 시간이 없었잖아!' 나는 나와 악수했다. 이윽고 경기날이 됐다. 오전 8시 거제스포츠파크는 대회에 참가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경기장은 출근시간 꽉 찬 지하철 객실처럼 북적였지만 분위기는 유쾌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마음껏 떠드는 소리로 부풀어 빵 터질 지경이었다.

출발선에 모인 선수들. 올해 거제100K에는 1,000여 명의 참가자가 몰렸다.

거제100K는 올해로 11년 됐다. 이 대회는 매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커지고 있다. 대회 전체 운영을 책임지는 천영기 디렉터는 올해 1,000여 명이 참가했다고 했다. 그는 비명 지르듯 외쳤다.

"지금 운영인력으로 1,000명이 한계네요!"

그리고는 곧 사라졌다. 그는 대회장 이곳 저곳을 정신 없이 뛰어다녔다. 이번엔 아웃도어 브랜드 라스포르티바 후원도 생겼다. 덕분에 기념품으로 나눠준 티셔츠 디자인이 꽤 괜찮았다.

나는 같이 출전한 '형'들과 나란히 섰다. 나는 형에게 속삭였다.

"형, 저 신경쓰지 말고 먼저 가세요(소곤소곤)."

형은 대꾸하지 않았다. "3, 2, 1! 출발!!" 진행자가 신호했다. 10km, 24km, 50km, 100km 참가자들이 모두 같이 뛰어나갔다. 어떤 사람이 옆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는 난이도가 작년보다 쉽대요! 도로 구간이 많아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답니다. 그러니 초반에 오버페이스만 하지 않으면 좋은 기록을 낼 것 같아요."

땡볕 속에서 걷고 있는 선수들. 이날 날씨가 더워 기권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오버페이스하지 말라는 그 사람은 쏜살같이 달려 곧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실망했다. 그를 따라가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속도를 낮췄다. 6분 30초 페이스로 달렸다. 달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3023년에 살고 있는 후세 사람들은 산에서 달리기 경주를 하는 2023년의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고려시대 나무꾼이나 화전민 혹은 도적들의 생활상을 정확하게 알 수 없듯 후세 사람들은 우리들의 이 행위를 알아채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알아챈다면 세계 10대 불가사의 안에 포함시킬지도 모른다. 후세 인류학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1,000년 전 사람들은 산에서 달리기를 했다고? 왜 그랬지? 이웃 지역 땅을 뺏기 위한 것이었을까?"

내가 후세 사람을 만난다면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우리가 이날 왜 산에서 뛰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쉽게 말하면 우리는 그냥 재미로 뛰었어요!"

재미있는 것을 할 때 우리의 얼굴 표정은 늘 밝지 않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매분 매초 웃지 않는 것처럼. 이날 대회에서 본 사람들 표정은 대체로 무표정하거나 심각했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여기에 더해 졸리기까지 했다. 눈을 꿈뻑꿈뻑 거리면서 북병산 오르막을 기어올랐다. 기어오르다가 자주 멈춰 시간을 흘려 보냈다. 똑딱똑딱.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나를 우르르 지나쳤다. 그들을 불러 세워 "거 참, 다 같이 조금만 쉬었다가 갑시다!"라고 외치고 싶었는데, 입을 열기 전에 그들은 눈앞에서 없어졌다. 망치 고개에선 어떤 참가자가 "우웩, 우웩!"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 누워 조금만 자다가 갈까? 생각이 들었는데 그만뒀다. 누군가 그 광경을 사진 찍어 '거제100K, 헛구역질 하는 사람과 그 옆에서 자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천천히 오르막을 올랐다. 속도는 20분 페이스였다. 그러다가 '기권', '포기' 'DNFDid not finish(끝내지 않았다)'를 떠올렸다. 이쯤에서 그만둬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밤 늦게 골인한 한 선수. 경기는 하루 꼬박 이어진다. 100km 참가자의 경우 24시간 넘게 쉬지 않고 달린다.

나는 천천히 오르막을 오르면서 포기와 완주의 공통점에 관해 생각했다. 포기와 완주가 같은 것이라면 여기서 기권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둘은 공통점이 없었다. 젠장! 그것을 생각하는 사이 북병산 정상에 올랐다. 시간은 오후 12시 20분이었다. 여기서 1km 정도 떨어져 있는 CP2까지 1시 안에 들어가야 했다(트레일러닝 대회에 마련된 보급소 CPCheck Point엔 정해진 시각 안에 들어가야 하는 규정이 있다. 정해진 시각이 넘으면 실격처리 된다). 나는 부리나케 달려 내려갔다.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쏙 들어갔다.

CP2에 12시 45분쯤 도착했다. 여기서 국밥을 먹었다. 먹는 도중 주변을 둘러봤는데 양수열 사진기자가 와 있었다. 그는 여기서 DNF한 사람을 찾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어쩔 거야. 계속 갈 거야? 포기할 거면 너도 사진 좀 찍자."

포기하면 그가 오랫동안 놀릴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대답했다. "가야지!" 나는 주섬주섬 장비를 챙겼다. 여기서 기권하겠다는 사람에게 에너지젤도 받아 챙겼다. 다시 오르막으로 향했다.

이상하게 힘이 났다. 이전과 달리 다리가 번쩍번쩍 들렸다. 한 번도 쉬지 않고 가파른 길을 올랐다. 앞에 있던 여러 사람도 제쳤다. 속도가 빨라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지만 기분은 국사봉 오르막에서 급격하게 또 나빠졌다. 300m 남짓한 거리를 30분 동안 헤맨다니, 젠장!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국사봉 정상석은 쳐다보지도 않고 CP3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이때 시간은 오후 3시 10분. CP3 컷 오프 시간은 3시 30분이었는데, 거기까지 거리가 3km나 됐다. 5분 페이스로 달려도 제 시간 안에 못 들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속도를 줄였다. 내 몸을 내려다봤다. 툭 튀어나온 배가 꿀렁꿀렁 대는 꼴마저 보기 싫었다. '하, 너 때문이야!' 슬픈 얼굴로 뱃살을 잡아 뜯으면서 내려갔다.

100km 부문에 출전한 한 선수의 골인 후 모습.

CP3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45분. 양수열 기자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가 또 물어봤다.

"어쩔 거야. 계속 갈 거야? 차 탈래?"

나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CP스태프에게 물었다.

"저 실격인가요?"

스태프는 말했다.

"컷 오프 시간은 상관 말고 끝까지 가세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어린애였다면, 그래서 내 옆에 엄마가 있었다면 엄마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이렇게. "엄마, 나 가기 싫어, 으앙!" 그렇지만 나는 어른이었으니 참아야 했다. 그동안 살면서 참고 참은 일들로 만들어진 거대하고 견고한 나의 빌딩이 여기서 참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양수열 기자한테 말했다. "나 계속 간다." 양수열 기자는 답했다.

"그래, 골인지점에서 봐."

얕은 언덕을 오른 다음 내리막과 평지가 7km쯤 이어졌다. 햇볕이 따가웠다. 그건 내가 달리기를 멈춰야 할 구실이 되지 않았다. 머리가 가려웠지만 그것 역시 핑계가 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계속 달리고 달렸다. CP4에 도착했다. 여기서 아이스크림을 두 개 먹었다. 나는 또 확인했다. "저 실격 아니죠?"

스태프는 말했다.

"네, 여긴 컷 오프 없어요. 스위퍼(대회가 끝날 무렵 전체 주로를 돌면서 표식기를 떼거나 마지막 주자를 챙기는 대회 스태프)가 와야 끝납니다."

피니시까지 남은 거리는 12km였다. 나는 출발했다. 시내를 지나 오르막 구간에 진입했다. '고도 200m짜리 언덕만 넘으면 끝'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그 '끝'이 대체 어디인가 확인하려고 자주 목을 빼고 오르막 위를 살폈다. 끝은 보이지 않고 대신 '계룡산 전망대' 화살표가 나타났다. 길이 그쪽으로 이어졌다. "전망대 가기 싫은데! 거기 가기 싫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내 의지로 길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어서 입을 다물었다.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없다는 어떤 철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속으로 욕했다. '젠장!' 거제 대회 코스를 만든 디렉터에게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여기서 내리막을 주소서!' 다행히 길은 전망대까지 가지 않고 옆으로 샜다. 이제 바라던 내리막이었다. 왼쪽 검지 발가락 발톱이 죽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검지 발톱을 살리는 방법은 빨리 피니시까지 가는 것밖에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달렸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직전, 나는 골인했다. 형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들 중 한 명이 말했다.

CP3 풍경. 여기서 선수들은 대회 주최측에서 마련한 음식과 음료를 먹고 쉰다.

"11시간 동안 산에서 대체 뭘 한 거야?"

나중에 그 형에게 물었다.

"형, 완주와 포기의 공통점이 뭘까요?"

잠깐 고민한 다음 대답했다.

"멈춘다는 게 똑같네."

Interview

천영기 디렉터

그는 일반 직장인이다. 거제100K 디렉터가 본업이 아니다. 매년 이때가 되면 그는 엄청난 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또 대회를 열기 위해 빚도 졌다고 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왜 매년 행사를 진행하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제가 트레일러닝을 하면서 얻은 감동을 더 많은 사람과 누렸으면 좋겠어요. 참가자들이 와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보상이 됩니다. 대회 이름 앞에 '거제의 꿈', '파랑새의 꿈' 이런 글귀를 넣은 이유는 거제100K 참가자들이 '동화책' 주인공이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에요. 힘들게 코스를 돌고 돌아서 결국 가족과 친구들에게 돌아온다는 스토리의 주역이 되는 거죠. 올해도 선수 모두 동화 속 주인공 역할을 만끽했겠죠?"

윤일성 사무국장

거제100K는 '인간미 넘치는' 대회로 평가받는다. 이것은 참가자들의 불편한 사항을 모두 듣고 최대한 반영하는 섬세한 운영에 따른 결과다. 그 번거로운 일처리는 윤일성 사무국장이 대부분 처리한다. 그가 갖고 있는 대회 운영용 전화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매일 수십, 수백 번 울리는데, 대회 출발시간 문의부터 돌아가는 버스 시간까지 시시콜콜한 내용이 많다. 작년까지 개인 전화를 이용해 이런 문의 사항을 접수했다가 올해 공용 전화로 바꿨다. 특히 이번에는 이 전화로 부상으로 인한 대회 불참을 알리는 연락이 많았는데, 이에 따라 사무국에선 사정이 있어 대회장에 오지 못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대회비를 환불해 줬다.

"참가비가 싼 편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운영비용이 마이너스만 되지 않으면 괜찮다는 입장이에요. 부상을 당해서 대회장에 오지 못한 분들도 마음이 오죽하겠어요? 내년에 몸 관리 잘해서 꼭 오세요."

대회정보

거제100K 스태프들. 대부분 거제도에 거주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올해 거제 100K 경기는 100km, 50km, 24km, 10km 네 종목으로 나눠서 열렸다. 이번 책에 실린 참가기와 고도표는 50km 코스를 기준으로 했다. 이 대회의 코스 길이와 누적고도는 매년 바뀐다. 이번 50km 경기의 총 거리는 약 50.45km, 누적고도는 2,586m에 이른다. 작년보다 누적고도 100m 정도 낮아졌다. 여기에 더해 거제시내를 통과하는 평지와 임도 구간이 늘어 난이도가 작년보다 쉬워졌다고 일부 참가자들이 평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거제100K는 국내에서 열리는 트레일러닝 대회 중 난이도가 높은 쪽에 속한다.

이번 50km 구간에 배치된 산의 고도는 400~500m 정도로 낮은 편이지만 출발지점의 해발고도가 '0m'에 가까워 그야말로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 수준인 것이다. 코스는 거제지맥 능선을 토대로 여러 산을 이었다. 이번 50km 종목에선 북병산(465.4m), 옥녀봉(517m), 국사봉(458m) 등의 봉우리를 거쳤다. 이 중 북병산과 국사봉의 오르막이 특히 가파르다. 경기 중 길 찾기는 사무국에서 만든 리본을 통해 확인했다. 경기가 끝나면 리본을 모두 철거하는데, 따라서 대회 종료 후 같은 코스를 그대로 찾아가는 건 어려울 수 있다.

윤성중 기자가 챙긴 주요 장비

50km 부문에 출전, 골인 직후의 윤성중 기자.

트레일러닝화 라스포르티바 자칼2

암벽화의 좋은 품질로 유명한 이탈리아 아웃도어 브랜드 라스포르티바 LASPORTIVA가 만드는 트레일러닝화는 어떨까? 암벽화의 유명세를 이어도 될 정도로 괜찮다. 그동안 나는 라스포르티바 트레일러닝화에 대한 이미지로 '무겁고 딱딱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자칼2가 이것을 무참히 깼다. 먼저 자칼2는 가볍다. 275~280g 정도 된다. 전작인 자칼1에 비해 20g 정도 무게를 덜었다. 이것은 일반 러닝화 무게와 비슷하다. 자칼2를 신고 달리는 동안 이 신발을 로드러닝에 사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갑피 또한 부드러운데, 낭창낭창한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고 헐거운 건 아니다. 신발이 헐거우면 달릴 때 발이 이리저리 꺾일 수 있는데, 이 신발이 그랬다면 대회 때 내 발목은 성치 않았을 것이다. 내 발목이 지금 정상인 건 비교적 낮게 설계된 중창 덕분일 수도 있다. 딱딱하거나 물렁거리지 않는 적당한 쿠셔닝을 가진 미드솔이 발을 안정적으로 받친다. 암벽화 전문 제작 브랜드이니 접지력에 관해선 따질 게 없다. 이렇게 쓰고 보니 완벽한 신발 같기도 한데, 살짝 아쉬운 게 있다. 신발 색상과 디자인이 너무 화려하다는 것(이걸 일상생활 때도 신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은데)과 '칼발'을 제외한 사람들에겐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레이스 베스트 오스프리 듀로 6L

트레일러닝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은 대체로 예민하다. 산에서 달릴 때 달리는 것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얼마 없다. 그러니 몸에 부착된 장비는 움직일 때 걸리적 대지 않아야 하며 에너지젤이나 물을 섭취할 때조차도 동작을 최소화해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오스프리 듀로는 적절한 장비다. 착용했을 때 몸에 착 달라붙는 한편 가슴 부위의 버클도 탈착이 편하다. 앞쪽 멜빵에 주머니가 많은 점도 여러모로 편리하다. 스마트폰을 넣는 주머니도 따로 있다. 오스프리에서 제작된 수낭과 함께 쓰면 그야말로 베스트Best 베스트Vest다.

에너지젤 파시코 파워 에너지젤

CP2에서 DNF하겠다는 한 선수에게서 이 에너지젤을 받았다. 초록색 바탕에 빨간색과 파란색 글씨로 이뤄진 포장지, 그 분위기가 좀 요란하다 싶어 불량식품인가? 했는데, 완벽한 오해였다. 파시코POSYKO는 대회 때 내가 가장 요긴하게 쓴 '장비'다. 40km 지점을 지날 때 허벅지가 뻐근해지면서 곧 근육경련이 일어날 것이라는 신호가 왔다. 이때 파시코 파워 에너지젤을 꺼내어 삼켰다. 신기하게도 허벅지 근육은 원상태로 돌아왔다. 운동생리학을 연구하는 이윤희 박사가 파시코 대표다. 제품 개발에 공들인 태가 난다. 맛있기까지 하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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