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스트가 원한 '오렌지 페인팅'은 뭘까…박미나의 '색'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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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박미나(50)는 2000년대 초반 어느 갤러리스트의 전화를 받았다.
작가는 자신이 가진 오렌지색 그림을 떠올렸다.
또 2004년 당시 수집 가능했던 물감은 632개였지만 이번 전시 작업을 위해 작가가 칠한 물감은 노랑 234개, 그린 234개, 파랑 202개, 빨강 154개, 바이올렛 81개, 오렌지 72개, 회색 66개, 블랙 46개 등 총 1천134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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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화가 박미나(50)는 2000년대 초반 어느 갤러리스트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작가에게 '오렌지 페인팅'이 있는지를 물었다. 작가는 자신이 가진 오렌지색 그림을 떠올렸다. 집 모양을 표현한 세로가 긴 형태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갤러리스트가 원한 것은 가로로 걸 수 있는 그림이었고 그렇게 짧은 통화는 끝이 났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시기의 작가는 그때 현실의 단면을 깨달은 것 같았다고 했다. 갤러리스트가 원한 '오렌지 페인팅'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던 작가는 이를 작업화하기로 했다. 그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오렌지색 물감을 수집해 보기로 했고 이렇게 수집한 물감들을 3cm 두께의 가로 스트라이프 형태로 칠했다.
이른바 '오렌지 페인팅' 작업은 이후 회색과 검정, 빨강, 녹색, 보라색(바이올렛), 파랑, 흰색, 노랑 등 9개 색상 카테고리로 확대됐다. 이어 2004년 작가는 '오렌지 페인팅'의 용도였을 집안 장식을 고려해 색상별 카테고리에 맞춰 다양한 가구 도형과 색띠 작업을 결합한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8일부터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는 박미나의 개인전은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작업을 19년 만에 같은 콘셉트로 재연한 자리다.
9개 색상 카테고리별로 수집한 물감들을 이용해 가로 혹은 세로로 평균 1.5cm 너비로 색띠 작업을 했다. 색띠 밑에 그에 어울리는 소파나 커피 테이블, 침대 같은 가구 도형을 배치한 형식도 똑같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림의 크기다. 2004년 당시 작가는 브랜드 아파트의 천장 높이가 2m30cm라는 점에 맞춰 벽에 걸 수 있는 세로 2m27cm 크기로 작업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요즘 아파트의 천장 높이가 최소 30cm 이상 높아진 것을 알고 세로 길이를 2m57cm로 늘렸다. 19년간 사회상의 변화가 반영된 셈이다.
또 2004년 당시 수집 가능했던 물감은 632개였지만 이번 전시 작업을 위해 작가가 칠한 물감은 노랑 234개, 그린 234개, 파랑 202개, 빨강 154개, 바이올렛 81개, 오렌지 72개, 회색 66개, 블랙 46개 등 총 1천134개에 이른다. 역시 시각 문화의 발달에 따른 변화지만 집요하고 치밀하게 색의 범위를 확인하려는 작가의 태도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색띠 작업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의 조합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오렌지색 물감 그림에서는 사실상 검은색에 가까운 색도 포함돼 있지만 이 색의 이름에도 엄연히 '오렌지'가 들어가 있다. 물감 색이 사실은 물감 제조사가 정한 이름일 뿐이고 우리는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학습했음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안소연 아뜰리에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는 "박미나는 현대 시각문화에서 회화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안을 제시한다"라며 "뉴미디어의 시대에 회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회의적인 상황에서 끝까지 물감과 붓을 놓지 않고 회화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작가"라고 평했다.
전시는 10월8일까지.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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