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뮤지컬배우 거쳐 연극 데뷔한 아이비 "남들의 몇 배 연습"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매일 뮤지컬 연습이 끝나면 따로 공간을 빌려 혼자 두세 시간씩 더 연습했죠. 남들만큼 대사를 못 외우고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몇 배로 더 연습해야 비슷하게 할 수 있었어요."
지난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배우 아이비(본명 박은혜·41)는 자신을 '스스로 채찍질하는 노력파'로 칭했다.
2005년 가수로 데뷔한 아이비는 2010년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 무대에 오른 뒤 주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해왔다. 그간 탄탄한 실력으로 '시카고', '아이다'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아이비는 "공연계에 자리를 잡은 지금도 무대에 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늘 연습한다"고 돌아봤다.
그는 뮤지컬 무대에 익숙해질 때쯤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 19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한 연극 '2시 22분'을 통해 공연계 데뷔 13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다.
아이비는 "연극은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어 집에서 따로 연습할 수 있어 좋았다"며 "연습의 시간이 있었기에 자신감이 생기고 실력을 다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 경험하는 연극에서 두 시간 동안 극을 이끌어가야 하는 주인공을 맡아 부담이 컸다고 한다. 아이비는 매일 새벽 2시 22분만 되면 집에 나타나는 혼령의 정체를 밝히려는 제니를 연기한다.
아이비는 "집 거실에서도 혼자 대사를 외우고, 침대에 누워서도 대본을 봤다"며 "배우들 사이의 호흡이 중요한 공연이라 상대방 대사도 완벽히 알고 있어야 했다. 긴장을 놓을 수 없어 늘 공연 전에 배우들끼리 대사를 맞춰본다"고 말했다.
혼령의 공포에서 아이를 지켜야 하는 엄마 역할을 맡는 것도 처음이라 상상으로 채워나가는 부분이 많았다. 연습 과정에서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 '유전'(2018)을 참고하기도 했다.
그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남편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비슷해 참고할 부분이 많았다"며 "표현이 약하다는 느낌이 들 때면 영화를 돌려보며 공포에 질린 순간 몸짓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참고하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연극 데뷔로 인한 부담이 컸던 만큼 다른 배우들과 합을 맞추는 과정에 공을 들인 것이 도움이 됐다. 아이비는 첫 공연부터 애드리브가 나오는 모습에 자신도 놀랐다며 웃어 보였다.
"무대가 체질인지 무대에만 서면 신기하게 집중이 되더라고요. 누군가가 저를 보고 있어야 집중할 수 있나 봐요."
그동안 연극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고 한다. 뮤지컬 '시카고'에 출연할 당시 독백이 많은 록시를 연기하며 연극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아이비는 "'이제야 연극을 하게 된다니' 생각했다"며 "연기에 있어서 뮤지컬과 연극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관객을 보고 연기하는 뮤지컬과 달리 배우와 눈을 자연스럽게 마주치면서 대사하는 부분을 신경 쓴다"고 설명했다.
이어 "뮤지컬 무대에서는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받았는데 연극에서는 관객의 새로운 반응을 느끼는 매력이 있다. 극이 끝날 때까지 관객과 함께 호흡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연극만의 매력을 알아가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도 연극에 도전할 생각이다. 길게는 석 달까지 공연하는 대극장 뮤지컬이 익숙하다 보니 한 달 반을 공연하는 이번 작품이 짧게 느껴져 아쉬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재밌는 극이 앞으로도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며 "무대에서 예뻐 보이는 것에 생각보다 욕심이 없다. 특이한 캐릭터, 사람이 아닌 캐릭터도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비는 13년간 무대에 올랐지만, 지금까지 무대가 편하게 느껴졌던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무대에 오르는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무대는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가장 무서운 곳이에요. 무대에 대한 공포 때문에 무대를 더 성스럽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게 되죠. 주어진 기회에 즐거움을 느끼며 배우 생활을 하고 싶어요."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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