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짧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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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에게 퇴근은 육아로의 출근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면 열 살 딸아이는 필자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재잘거린다.
딸은 필자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엄마의 사랑을 갈구한다.
퇴근 후 필자가 유일하게 밖에 나갈 수 있는 건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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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에게 퇴근은 육아로의 출근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면 열 살 딸아이는 필자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재잘거린다. 딸이 말을 할 땐 딸을 쳐다봐야지 딴청을 부렸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딸은 요즘 새로 나온 여자 아이돌의 안무를 추며 자기를 봐 줄 것을 종용한다. 저녁을 차리면서도 눈은 딸에게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딸이 질문을 했을 때 건성으로 대답하면 영혼이 없다며 영혼을 가득 담아 대답할 때까지 같은 질문을 계속한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주위가 산만하다. 딸은 필자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엄마의 사랑을 갈구한다.
과일을 깎으며 음식물 쓰레기를 모은다. 설거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잠시 나갈 찬스를 노린다. 딸아이에겐 하루 종일 그리워한 엄마가 필요하겠지만 나는 잠시 혼자 숨을 고르고 싶은 생각뿐이다. 퇴근 후 필자가 유일하게 밖에 나갈 수 있는 건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다. 딸은 필자가 나가는 순간부터 시간을 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늦어질라치면 들어오라고 다그친다. 나온 지 오 분 정도 지났을까 딸에게 전화가 온다. 아파트 단지 산책로를 돌며 잠시라도 사색을 하고 싶은 나는 꾀를 낸다.
"지금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 줄이 너무 길어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그래? 엄마 앞에 몇 명이나 있는데?"
"대략 열 명 정도 있는 것 같아. 얼른 버리고 갈게."
"알았어. 버리고 바로 들어와야 해!"
딸을 따돌린 나는 유유히 산책로를 걸으며 어떤 꽃이 새로 고개를 내밀었는지 둘러본다. 울울한 팽나무를 올려보며 소원을 빌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얼굴을 씻는다. 까맣고 깊은 하늘을 쳐다보고 별을 찾다가 눈앞을 환히 밝히는 수국으로 시선을 돌린다. 각양각색의 수국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잎 하나하나가 별을 닮았다. 탐스러운 수국 봉우리를 조심스레 어루만진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수국은 정원의 가로등처럼 더 선명해진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보며 산책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힘겹게 버텨온 오늘 하루에도 감사한다. 삶의 행복은 먼 데 있지 않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렸고,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곱은 마음을 다잡는다. 산책로를 두어 바퀴 돌았을까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딸이다.
"지금은 앞에 몇 명이나 있어, 엄마?"
"으응, 이제 두 명 남았어."
"알았어. 얼른 들어와!"
나는 웃으며 서둘러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랑한다. 딸아. 내게 가장 아름다운 꽃은 언제까지나 바로 너란다. 너는 그 누구도 내게 주지 못하는, 가슴속 저 깊은 곳까지 환하게 밝혀주는 웃음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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