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100K] 완주와 포기는 닮았다…둘 다 완성을 향해 가기에

윤성중 2023. 7. 28.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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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완주자와 포기한 자

끝까지 가서 멈추거나 중간에 멈추거나. 일, 공부, 사랑, 달리기 등 뭘 하든지 우리는 언젠간 멈춘다. 멈추는 건 똑같은데 사람들은 이걸 완주와 포기로 구분한다. 둘 중 완주의 값이 더 비싸다. 그럼 포기는 저렴한가? 꼭 그런 건 아니다. 삶에서 둘의 가치와 무게는 같다. 우리는 때론 완주하고 때론 포기한다. 그렇게 완성을 향해 간다. 완주든 포기든 결국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일 뿐이란 뜻이다. 이번 거제100K에 출전한 선수 중 종목별로 가장 마지막으로 피니시라인을 밟은 선수, 경기를 포기한 선수와 만났다. 자, 이들에게도 큰 박수를!

김광명 34세, 번역가

(서울, 100km 출전, 28시간 47분 만에 완주)

거제100K에 출전하게 된 배경이 어떻게 되죠?

등산은 어렸을 때부터 했어요. 트레일러닝은 2년 전 제주도 트랜스 제주에 출전하면서 시작했고요. 트레일러닝을 하려면 거제100K는 꼭 해야 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어요. 짧은 코스에 참가하려다가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어서 100km에 참가했습니다.

100km 경기 어땠나요?

하루를 꼬박 달렸으니 힘들었죠. 스스로 포기하기 전에 컷오프 당할 것 같아 걱정이 많았어요. 즐겁게, 재미있게 하자고 생각하면서 달렸습니다.

포기하고 싶었던 때는 없었나요?

물론 있었죠. 3번이나요. CP1 지나서 다리에 쥐가 났어요. 마침 '달리는 의사' 소속 선배님이 응급처치를 잘 해주신 덕분에 금방 일어났고요. CP6에선 헤드랜턴이 고장 났어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헤매야 했는데 그때 또 앞에서 달리고 있는 선배님 한 분을 만났어요. 무사히 CP8까지 갔습니다. 마지막엔 속에서 탈이 났어요. 먹은 걸 게워내는 상태까지 갔죠. 이때 진짜 포기하려고 했는데, 귀여운 조카가 생각났어요. 끝까지 가야 조카를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았죠. 결국 골인했어요.

이번 대회가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곧 박사학위 최종 심사가 열려요. 잘 마치면 9년 만에 학교를 졸업하는 거죠. 지금 졸업하기 직전 마지막 CP를 지난 기분이에요. 100km를 완주했으니 이것도 무사히 끝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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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구본준 제공

구본준 45세, 회사원

(부산, 50km 출전, 13시간 13분 만에 완주)

거제100K에 출전하게 된 배경이 어떻게 되죠?

트레일러닝은 올해 초에 시작했어요. 원래 제주도 대회 나가려고 했는데, 비행기 결항으로 못 갔어요. 이것이 첫 대회라 많이 아쉬웠는데, 거제100K 경기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됐고 마침 추가 신청을 받는다고 해서 냉큼 접수했습니다.

트레일러닝에 빠진 이유가 뭐죠?

이전부터 로드 러닝과 수영을 조금 했어요. 그래도 산에서 달린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제주도에 갔는데,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달리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 뒷산인 장산에서 조금씩 달리기를 해봤어요. 괜찮더군요. 흙의 감촉이 좋았고, 새소리에 둘러싸여 달리니 색달랐어요. 그러면서 '아! 산에서 달리기 할 수 있겠다'고 마음을 바꿨죠.

이번 대회 어땠나요?

죽을 뻔했어요. 경기가 끝나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죠. 일행과 떨어져서 외롭기도 했고요. 그런데 올해 가을에 열리는 트랜스 제주 대회에 또 신청했어요. 제가 산에서 뛰는 걸 보고 아내도 덩달아 트레일러닝을 시작했고요. 하하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요?

고비가 여러 번 있었어요. 포기하려고 회송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스태프 중 한 명이 끝까지 해보라고 권했어요. 저랑 같이 포기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그 말 듣고 모두 달려나가더군요. 그들 따라서 억지로 CP4까지 갔는데, 거기서 끝내면 아쉬울 것 같아 계속 달렸습니다. 이번에 완주 안 했으면 제주 트랜스 대회에 자격 미달로 신청하지 못했을 겁니다. 제주 대회는 저의 버킷리스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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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기 38세, HD현대중공업 산업보안팀

(울산시, 24km 출전, 5시간 24분 만에 완주)

거제100K에 출전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죠?

거제도에서 트레일러닝 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은 올해 처음 알았습니다. 실내 헬스장에서 웨이트 운동하는 걸 좋아해요. 그러다가 직장 선배들이 50km 대회에 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신청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들어오게 된 원인은 뭘까요?

마실 물 조절에 실패했어요. 날씨가 더운 걸 예상하지 못했죠. 제 몸무게가 120kg이에요. 평소에 러닝을 하지도 않았고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뛴 이유는 뭐죠?

시작했는데, 끝까지 가야죠. 대부분 2명 정도 짝을 지어 뛰더군요. 저는 중간부터 거의 혼자서 달렸어요. 혼자라서 쓸쓸하고 외로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더군요. 처음 느껴보는 경험이었어요. 그래도 다음 경기 때는 제 체력과 맞는 사람과 함께 출전하고 싶어요.

꼴찌했는데도 경기가 재미있었나요?

네, 무척 재미있었어요. 거제도 풍경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성취감이 컸어요. 트레일러닝을 접하고 열 살 아들하고도 산에 자주 다니고 있어요. 다음엔 영남알프스 5peak에 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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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수 43세, 디자이너

(서울, 50km 출전, CP2에서 기권)

거제100K에 출전하게 된 배경이 어떻게 되죠?

8월에 미국에서 열리는 '리드빌' 트레일러닝 대회에 나가요. 훈련차 출전했습니다. 그동안 무릎 부상을 입고 오래 쉬었어요. 장거리에서 즐겁게 달렸던 예전 저의 모습을 되찾으려고 나왔습니다.

왜 기권을 결심했죠?

달리다가 정강이가 찢어졌어요. 무릎이 아픈 상태에서 달리니 기동력이 떨어지더군요. 더 달리면 감염 위험도 있고 무릎이 더 안 좋아질까봐 기권하기로 했습니다.

완주와 포기의 공통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굳이 둘의 공통분모를 대라면 '도전' 아닐까요? 일단 도전해야 완주하거나 포기하거나 하죠. 포기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닌 것 같아요. 도전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으니까요.

이윤정 31세, IT회사 연구원

(부산, 50km 출전, CP2에서 기권)

거제100K에 출전하게 된 배경이 뭔가요?

작년에 거제 100K 100km에 나갔다가 DNF했어요. 이번에는 줄여서 20km에 나가려고 했는데 너무 짧은 것 같아 50km에 출전했습니다.

왜 기권을 결심했죠?

신발을 새로 샀는데, 적응을 못 한 채 달렸어요. 다운힐 할 때 발이 밀려 발톱을 압박하더라고요. 너무 아팠어요. 여기서 더 가면 몸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았어요.

작년에 기권하고도 또 도전한 이유가 있을까요?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대회에만 나오면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고요. 속세의 삶을 잊게 합니다. 저라는 컴퓨터를 리셋하는 느낌이에요. 다음에는 울주에서 열리는 50km 대회에 나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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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현 43세, 회사원

(서울, 50km 출전, CP3에서 기권)

거제100K에 출전하게 된 배경이 어떻게 되죠?

2년 전에 트레일러닝을 시작했고요, 이후 해마다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거제100K는 올해 저의 첫 대회였고요.

왜 기권을 결심했죠?

코스를 숙지하지 못했어요. 32km 지점 CP3 컷 오프 시간에 맞춰 겨우 들어왔죠. 오른쪽 무릎이 이상했어요. 참고 달리면 끝까지 갈 수 있었겠지만 몸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기권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연습 부족이죠. 평소 로드 러닝은 많이 했는데, 산에서 오르내리는 훈련은 많이 못 했어요.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길 반복하면서 심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봉우리를 넘어도 넘어도 계속 나오더군요.

이번 DNF로 깨달은 게 뭐죠?

10월 말에 트랜스 제주 대회에 나갑니다. 평지보다 산에서 달리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겠어요. 내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췄는지 알게 됐습니다. 단련에 대한 욕심이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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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근 36세, 회사원

(서울, 100km 출전, CP3에서 기권)

거제100K에 출전하게 된 배경이 어떻게 되죠?

일 때문에 거제도에 자주 와요. 좋아하는 동네죠. 그래서 대회에 꼭 나가고 싶었어요. 거리가 길수록 볼거리 많고 추억도 많이 쌓을 것 같아서 100km에 출전했고요.

왜 기권을 결심했죠?

뛰는 도중에 발목을 접질렀어요. 이전에 계속 100km 장거리 대회에 출전하느라 피로가 누적된 상태이기도 했고요.

왜 100km 이상의 장거리 대회를 골라서 출전하죠?

거리가 짧으면 아쉽더라고요. 산에서 더 오래 있고 싶어요. 긴 거리를 가야 성취감도 크고요.

이번 DNF를 통해 깨달은 게 있을까요?

제 몸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너무 자만한 것 같습니다. 욕심 부렸죠. 기분이 나쁘진 않아요. 이번에 완주하지 못했으니 다음에 또 와야겠다는 마음이 큽니다. DNF는 다음 완주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기권하는 맛이 없으면 대회가 재미없을 거예요.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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