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까지 걸었다’... 글로벌 항공사, 불붙은 수제맥주 쟁탈전

유진우 기자 2023. 7.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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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에서 더 특별한 맥주 한 잔을 제공하기 위한 항공사들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그간 항공사 서비스에서 정수(精髓)는 일등석 와인 리스트였다. 맥주는 그저 간식과 함께 거드는 음료에 그쳤다.

그러나 엔데믹 이후 탑승객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자 유명 항공사들은 일제히 맥주 리스트 점검에 나섰다. 갈수록 다양해지는 탑승객 취향을 맞추려는 노력 가운데 하나다. 소비 연령대가 높은 와인 대신 저연령층이 선호하는 맥주를 강화해 젊음과 신선함을 강조하려는 전략적 판단이기도 하다.

지난 26일 국내 최대 국적 항공사 대한항공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칼스 라거(KAL’s Lager)’를 출시했다. 대한항공이 직접 칼(KAL·Korean Air Lines) 이름을 걸고 맥주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맥주는 경기도 고양에 자리잡은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에서 만든다.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는 2019 대한민국 주류대상 3관왕, 2020 대한민국 주류대상 5관왕을 차지하면서 양조 실력을 검증받았다.

대한항공은 이달부터 이 맥주를 판매하기 시작해, 오는 9월부터는 기내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한다. 대한항공은 그동안 기내에서 미국 버드와이저와 국산 맥주 카스를 제공했다. 칼스 라거는 이들 맥주에 비하면 소량으로 더 자주 생산하기 때문에 신선도와 개성있는 맛을 끌어낼 수 있다.

플레이그라운드 관계자는 “여행을 시작할 때 느끼는 설레임과 비행기 이륙에서 오는 짜릿함, 하늘을 나는 시원함을 맥주로 표현하려 했다”며 “발효 시간을 늘려 탄산을 살리고, 숙성 기간도 길게 잡아서 열대과일 풍미와 부드러운 느낌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보다 훨씬 일찍부터 맥주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보다 5년 앞선 2018년 코리아크래프트브루어리와 손잡고 아시아나(ASIANA)라는 수제맥주를 우리나라 항공사 가운데 처음으로 내놨다.

이 맥주는 대중적인 라거보다 더 진하고 향이 뚜렷한 에일(ale) 타입 맥주였다. 다만 시중에서 판매하지 않아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7월 아시아나항공이 선보인 ‘아시아나 호피 라거’는 온갖 브랜드와 협력한 정체불명 맥주가 쏟아진 수제맥주 업계에서 몇 안되는 성공작으로 꼽힌다.

이 맥주는 아시아나항공이 OB맥주의 수제맥주 전문 브랜드 코리아브루어스콜렉티브(KBC)와 손잡고 만들었다. 레트로(복고풍) 유행에 맞춰 겉면에는 아시아나항공 색동저고리 그림을 넣었다. 이 로고는 1988년 아시아나항공 창립 당시부터 2007년까지 쓰이다 사라져 지금은 볼 수 없다.

광고는 ‘팬데믹 이후 멀어졌던 여행이 아시아나 호피 라거와 함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을 담아 국내 최연소 극장 애니메이션 감독 칭호를 단 한지원 감독이 만들었다.

한편의 만화 같은 이 광고는 독특한 색감과 감각적인 구성으로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젊은 층에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일부에선 ‘맥주 광고를 보고 울컥하기는 처음’이라는 평이 이어졌다.

한국수제맥주협회 회원사 관계자는 “젊은 소비자들은 이 맥주를 마시면서 해외여행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 동시에 아시아나항공이 시류에 앞서가는 세련된 항공사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평소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4050에게 아시아나항공은 만년 2등 항공사였겠지만, 이런 배경지식이 없거나 적은 젊은 소비자들은 이 맥주를 마시면서 아시아나항공 선호도가 상당히 높아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항공사 뿐 아니라 해외 유명 항공사에도 맥주 리스트 강화는 중요한 과제다.

매출 규모 기준 세계 최고인 미국 델타항공과 총 여객 운송수로 세계 최대인 아메리칸항공은 진작부터 수제맥주 서비스를 시작했다.

델타항공은 2018년부터 하와이 코나 브루잉 컴퍼니 맥주를 기내에 배치했다. 코나 브루잉 컴퍼니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수제맥주 양조장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아메리칸항공은 우리나라에도 양조장을 둔 구스아일랜드 맥주를 제공한다.

미국 저비용항공사 젯블루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올해부터 무알콜 맥주 서비스를 기내에서 선보였다.

맥주의 본고장 유럽 계열 항공사도 빠질 수 없다. 네덜란드 국적 항공사 KLM은 2016년 세계 최초로 기내에서 생맥주 서비스를 시작했다. 맥주는 기압에 민감하기 때문에 고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거품도 많아진다. KLM은 거품을 줄이기 위해 하이네켄과 항공기 복도를 끌고 다닐 수 있는 특수 생맥주 카트를 설계했다.

스칸디나비아항공은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맥주 브랜드’라 불리는 미켈러 맥주를 제공한다.

기내에서는 지상과 기압 차 때문에 혈류로 들어가는 산소량이 줄어들고, 이 때문에 맛을 감지하는 미각과 후각 모두 둔감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와인을 마셔도 지상에서 마실 때만큼 뚜렷한 맛과 향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글로벌 대형 항공사들이 ‘기내 서비스의 꽃’이라 불리는 일등석 와인에 힘을 줘도 정작 탑승객은 온전히 그 즐거움을 누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주류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감안하면 기내에서는 잘 만든 수제맥주가 좋은 와인에 못지 않다고 평가했다.

싱가포르 최초 수제맥주 브루어리 ‘레드닷 브루하우스’에서 맥주 양조 총괄을 맡은 크리스탈라 후앙 브루 마스터는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맥주는 와인보다 도수가 훨씬 낮고, 탄산이 들어 있어 후각과 미각이 둔해져도 편하게 마실 수 있다”며 “보통 이런 수제맥주는 비즈니스 클래스 이상 좌석부터 서비스하기 마련인데, 평소 이 등급 좌석에 제공하는 와인에 비하면 가격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경제적 측면에서 항공사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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