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련 핵전쟁 막은 KGB 이중 첩자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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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냉전 시대 소련의 첩보기관 케이지비(KGB, 국가보안위원회) 소속으로 영국 비밀정보부 엠아이6(MI6)을 위해 활동한 이중 첩자였다.
그러나 미국 첩보기관 시아이에이(CIA, 중앙정보국) 소속 KGB 이중 첩자에 의해 신분이 들통나는 바람에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던 중 기적처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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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와 배신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중 스파이, 올레크 고르디옙스키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l 열린책들 l 3만2000원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냉전 시대 소련의 첩보기관 케이지비(KGB, 국가보안위원회) 소속으로 영국 비밀정보부 엠아이6(MI6)을 위해 활동한 이중 첩자였다. 그는 1974년부터 무려 10년이 넘도록 KGB의 핵심 정보를 영국으로 빼돌렸고, 그러면서도 KGB의 신임을 받아 이 기관의 런던 지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미국 첩보기관 시아이에이(CIA, 중앙정보국) 소속 KGB 이중 첩자에 의해 신분이 들통나는 바람에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던 중 기적처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스파이와 배신자’는 소련과 영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첩보기관들이 얽히고설켜 빚어낸 이 영화 같은 실화를 담은 논픽션이다. 영국의 언론인 겸 작가 벤 매킨타이어가 3년에 걸쳐 스무번 넘게 고르디옙스키를 인터뷰하고 관련자들 역시 취재해서 쓴 이 책은 2019년에 첫 방영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스파이들의 전쟁’ 첫번째 에피소드 ‘세상을 구한 남자’의 원작이기도 하다.
책은 1985년 5월 모스크바로 소환된 고르디옙스키가 아파트로 들어서면서 자신이 KGB의 감시 대상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런 상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시간순으로 서술한다. KGB 요원인 아버지와 형을 좇아 그는 자연스럽게 KGB 요원이 되었다. “KGB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할 그의 삶에 균열이 생긴 것은 그가 1966년 1월 덴마크에 부임하면서였다. 그곳에서 목격한 서구 사회의 풍요와 자유는 헝가리 봉기와 프라하의 봄, 베를린 장벽 설치 등에서 잇따라 확인한 소련의 억압적 체제와 대비되었다.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에 KGB 소속이었던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와 고르디옙스키 자신의 반항적 성격도 선택에 한몫했다.
“소련 체제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자신의 역할”이라 믿은 그는 덴마크와 영국에서 암약하는 KGB 요원들을 밀고하고 KGB 본부의 비밀 작전을 빼내는 한편, KGB에서 요구하는 정보와 자료를 모스크바로 전달하는 일에도 소홀할 수 없었다. 이중 첩자로서 그가 수행한 업무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1980년대 초 미국과 소련 사이의 핵전쟁 위협을 막은 일이었다. KGB 국장 출신으로 공산당 서기장 자리에 오른 유리 안드로포프는 진심으로 미국이 소련을 상대로 핵전쟁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하고 그에 맞설 선제 핵공격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다. 고르디옙스키는 소련 내부 정보를 영국과 미국 최고 지도자들에게 전함으로써 소련의 불안이 거짓이 아님을 확인시켰고,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로 하여금 소련을 향해 유화 제스처를 취하도록 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넘을 수 있게 했다. “고르디옙스키는 목숨을 걸고 조국을 배신해 세상을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었다.” 책에서는 1983년 9월에 벌어진 소련군의 KAL 007 여객기 격추 사건 당시 고르디옙스키가 안드로포프의 비밀 전문을 빼돌려 MI6에 건넨 일화도 소개된다.
첩보원들의 비밀 접촉과 미행, 작전 장면 등이 상세히 묘사되어 흡사 첩보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주는 책이다. 특히 고르디옙스키가 MI6의 작전에 따라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모스크바를 탈출해 핀란드, 노르웨이를 거쳐 영국으로 도망치는 장면은 시간과 장소, 관련 인물들을 급박하게 오가며 박진감 넘치게 서술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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