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변한다…“이 시대에 걸맞은 신 개념을 창조하자” [책&생각]
신의 역사
신의 탄생과 정신의 모험
카렌 암스트롱 지음, 배국원·유지황 옮김 l 교양인 l 3만6000원
종교를 떠나는, 아니 애초부터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럼에도 종교는 지금도 세상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 진리가 사라진 시대임에도 ‘절대적인 존재’인 신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에 관여한다. 영국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역사’는 달라진 시대 변화에 맞춰 사람들이 어떻게 신을 만들고 이해해 왔는지 추적한 역작이다. 1993년 출간된 이래 38개 나라에서 번역‧출간되면서 종교 분야의 굳건한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에서는 1999년 처음 출간되었는데, 누락된 원문을 되살리고 오역 등을 바로잡아 ‘전면개역판’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암스트롱은 “서로 연결된 세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신의 탄생 배경과 이후 오늘에 이른 과정, 철학과 사상이 신의 존재를 탐구한 방식을 유려하게 설명한다. 다만 “신의 실재 그 자체의 역사”가 아닌 “아브라함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신을 어떻게 인식해 왔는가”를 탐구했다는 사실만큼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암스트롱은 종교를 일러 “육신이 물려받을 수밖에 없는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한다. 그런 점에서 인류는 예나 지금이나 지혜로운 인간(호모 사피엔스)이자 종교적 인간(호모 렐리기오수스)이었다. 고대인들은 “신성한 삶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 자체를 “인간 존재의 원형”이라고까지 생각했다. 하여 “신을 모방하는 것”, 즉 “닮음의 영성”을 추구하였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모든 종교의 밑거름이 되었다. 기원전 20세기~기원전 19세기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정착하고, 훗날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 탈출(출애굽)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들의 유일신 야훼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전쟁의 신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인들 사이에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신화가 만연하면서 “초월과 동정심의 상징”으로 변모하였다. 이후에도 야훼는 “거룩하고 슬픈” 신이자 “전쟁” “정의” “지혜”의 신으로 실체를 바꿔나갔다. 절대자임에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존재 가치와 의미는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종교의 속성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유대교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새로운 모세, 새로운 여호수아, 새로운 이스라엘의 창시자”로 받아들인 예수의 출현과 함께 새로운 종교, 즉 기독교의 탄생을 목도하게 된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면서 “다윗의 아들”이라며 환대받았던 예수는 “로마가 내린 십자가형이라는 고통스러운 형벌로 사형” 당했지만, 그 일을 기점으로 “인간의 모습을 한 신”으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신이 예수의 몸으로 육화했다는 교리”, 즉 성육신의 교리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팔레스타인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를 향한 새로운 기독교의 확장이 이어졌다.
한편 이슬람교는 7세기 초, “초월적 가치를 삶의 중심에 두고서 이기주의와 탐욕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를 중심으로 태동했다. 무함마드는 자신이 속한 쿠라이시족이 “돈을 새로운 종교로 만들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하면서 공동체 정신과 족장의 명령에 즉각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무루와’(muruwah)라는 이데올로기를 발전시켜 “종교적 기능”을 담당케 했다. 무함마드는 예언자 반열에 올랐고, 그의 계시를 담은 ‘쿠란’은 “‘징표’와 ‘메시지’를 해독하는 지성이 필요함을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이슬람 영성의 중심이 되었다.
신은 철학의 성찰과 탐구의 주요 대상이기도 했다. 암스트롱은 종교와 철학이 떼려야 뗄 수 없었던 중세철학의 배경과 이후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등 철학 사조들이 고찰한 신 개념을 분석한다. “서방 기독교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사상가”인 13세기 철학자이자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을 통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철학과 서방 기독교 전통을 통합하려고 시도했다. 그런가 하면 15~16세기에 이르러 “동방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같은 ‘문명 세계’의 다른 문화들을 따라잡는 데 성공”한 서방 기독교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토대 위에 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만들어 나갔다. 종교개혁의 대명사처럼 언급되는 마르틴 루터는 신앙을 가리켜 “정보나 지식, 확실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지 않고, 시험되지 않고, 알지 못하는 선함에 대한 자유로운 굴복이자 즐거운 확신”이라고 주장했다. “신은 고난과 십자가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던 루터는 칭의(稱義), 즉 신이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을 구원함으로써 존재 의미를 명확히 한다고 생각했다.
16세기 말~19세기 초까지 이어진 계몽주의의 득세는 신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파스칼,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등으로 이어지는 계몽주의의 흐름 속에서도 신은 그 영향력을 크게 잃지는 않았다. 다만 19세기 초에 이르러 무신론이 확실한 “시대의 의제”가 되면서 “신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다윈, 니체, 프로이트 등이 이 흐름을 견인했다. 특히 니체는 “신을 죽인 자신의 행위를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는 방법을 택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초인은 “낡은 기독교적 가치들에 맞서는 전쟁을 선포”하고 “천민의 관습을 짓밟고 새로운 강력한 인류의 도래”를 알리는 존재였다. 한마디로 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4000년 동안 건재했던 신은 철학자들의 죽음 선언으로 끝난 것일까.
암스트롱은 “절대자의 부적절한 이미지에 대한 거부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도 “신으로부터 후퇴”인 근본주의를 버리고 “이 시대에 걸맞은 신 개념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4000년의 역사 속에서 “삶의 경이와 표현할 수 없는 의미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위해 항상 자신을 위한 믿음”을 창조한 인간이기에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신에 대한 탐구는 결국 인간의 역사와 삶에 대한 탐구라는 점에서 ‘신의 역사’는 간단치 않은 함의를 담고 있는 저작임에 분명하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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