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치열한 미술 현장, 비평가로서 증언했다 [책&생각]
나는 67학번이다. 국어 선생의 추천으로 미학과를 선택하였으나 3학년 때 김윤수 선생을 만나면서 미술사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파사르게의 ‘미술사의 철학’을 통해 서양미술사학에는 양식사로서 미술사, 정신사로서 미술사, 도상학으로서 미술사 등 여러 방법론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당시 ‘창작과비평’에 연재된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읽으면서 사회사로서 미술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미술사의 기본은 문화사로서 미술사가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1983년에 잰슨의 ‘회화의 역사’(열화당)를 번역한 것은 이런 관심의 산물이었다.
81년 신춘문예를 통해 미술평론에 입문한 이후에도 현대미술에 대한 이론보다 미술계의 현장에 더 관심이 많았다. 당시 우리 미술계에는 젊은 미술가들의 조형적 반란이 열화같이 일어났다. 국전을 중심으로 한 관학파적 경향과 서구 현대미술의 경향을 추종하는 추상미술, 그리고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제도권 미술에서 벗어나 작가 정신을 표현하고 현실을 담아내는 진짜 미술을 하고 싶다는 젊은 미술가들이 소집단 운동을 벌이며 나섰다.
현실과발언, 임술년, 삶의미술, 시대정신, ‘20대 힘’ 전…. 군부독재 상황에서 일어난 이 미술계의 움직임을 당국은 반독재 민중운동의 하나로 보고 탄압을 가하였다. 1985년에는 전시장이 폐쇄되고 심지어 작품이 압수되고, 미술인이 연행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에 반발한 미술인들은 민족미술협의회를 창립하고 ‘그림마당 민’을 개관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이어갔다. 나는 이 미술계의 상황을 비평가적 입장에서 증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펴낸 것이 나의 첫 책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열화당, 1986)이다. 이 책은 10년 뒤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창비, 1997)를 펴내고 절판시켰다.
그때 나는 진정한 민족미술은 미술사에 기초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허름한 대안공간인 우리마당, 그림마당 민, 한마당, 예술마당 금강, 예술마당 솔, 소극장 학전에서 열었다. 이를 통해 나는 미술학도를 비롯하여 젊은 화가, 미술·역사교사, 미술 애호가를 만나게 되었다. 강좌 중에는 반드시 문화유산의 현장 답사를 다녀왔는데 수강자들은 강의보다도 답사에 더 열광했다. 그간의 경험을 담은 것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 1993)이다.
답사기는 뜻밖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사실 이 책이 밀리언셀러가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출판평론가들은 그 요인으로 사회적 현상 몇 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치열했던 반독재 투쟁은 사실상 끝난 상황이었고, 둘째로 경제적으로는 국민소득 1만 달러의 중진국으로 되었고, 셋째로 자가용 700만 대를 넘는 마이카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여기에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그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것’을 찾고 있었던 시점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이듬해에 영화 ‘서편제’가 1백만 관객을 돌파한 것도 이런 시대상을 말해 준다.
나는 독자들이 이렇게 관심을 보일 때 우리 문화유산을 ‘전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2권, 3권을 연이어 펴냈다. 그렇게 세 권으로 답사기를 마무리하면서 혹 방북의 기회를 얻는다면 그때 북한문화유산답사기를 쓰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1997년 꿈 같은 방북허가를 실제로 받았고 98년에는 금강산 관광이 열려 북한답사기를 두 권으로 출간하였다.
이후 2004년에 문화재청장으로 부임하여 4년간 근무를 마치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즌 2로 들어가 현재까지 국내편 12권, 일본편 5권, 중국편(실크로드) 3권을 출간하였다. 그러는 사이 답사기 출간 30년을 맞이하게 되어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아는 만큼 보인다’까지 펴냈다. 앞으로 국토박물관 순례라는 개념으로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3권을 더 써서 전15권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다.
유홍준 미술사학자, 명지대 석좌교수
■그리고 다음 책들
화인열전(전2권)
미술사의 기본은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가 열전’이 말해 주듯 화가의 일대기라는 생각에서 단원 김홍도 등 8명의 삶과 예술을 전기 형식으로 쓴 책인데 보완할 사항이 있어 절판해 놓았다.
역사비평사, 2000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추사 김정희의 전기로 본래 ‘완당평전’(전3권, 학고재, 2002년)으로 펴냈는데 수정 보완할 사항이 많아 다시 펴낸 책이다. 또 언제 개정판을 낼지도 모른다.
창비, 2018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전4권)
이 책은 한국미술사 통사로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전7권으로 구상하여 현재 제4권 조선시대 건축과 불교미술 편까지 펴냈고 제5권 공예 편을 집필하고 있다.
눌와, 2012~22
안목
‘미를 보는 눈’ 시리즈로 ‘국보순례’(2011), ‘명작순례’(2013)에 이어 역대 높은 안목을 가졌던 미술사가와 애호가 이야기를 쓴 것이다. 그분들의 눈을 통하여 우리의 안목을 높이자는 뜻이다.
눌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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