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집단의 실패를 가져올 ‘무지의 정치’를 넘어

한겨레 2023. 7. 2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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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래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자유'라고 한다.

'한겨레'가 대통령 취임 이래 지난 1년간 발표된 대통령 연설문 84개를 분석한 결과, 무려 494차례에 걸쳐 자유를 말했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자 로버트 에이치(H). 프랭크는 '경쟁의 종말'에서 이런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편향된 의사결정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시스템을 마비시키는 '무지의 정치'(Ignoramitocracy)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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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경쟁의 종말
승자독식사회 그 후, 미래의 경제 질서를 말한다
로버트 에이치(H). 프랭크 지음, 안세민 옮김 l 웅진지식하우스(2012)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래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자유’라고 한다. ‘한겨레’가 대통령 취임 이래 지난 1년간 발표된 대통령 연설문 84개를 분석한 결과, 무려 494차례에 걸쳐 자유를 말했다. 그가 말한 자유의 내용은 기업과 시장의 자유, 냉전적 질서를 의미하는 자유진영의 그 자유였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버지이자 경제학자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인데, 그는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에게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를 선물했다.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경제 철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 책에서 프리드먼은 정부의 개입과 규제보다 개인과 기업이 시장에서 선택할 자유를 보장해주는 나라, 완전경쟁에 가까운 국가일수록 잘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했던 것처럼 ‘시장은 항상 개인의 이기심을 이용해서 사회 전체를 위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한다’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이 정부 정책이라는 ‘보이는 손’의 작동보다 유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자 로버트 에이치(H). 프랭크는 ‘경쟁의 종말’에서 이런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편향된 의사결정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시스템을 마비시키는 ‘무지의 정치’(Ignoramitocracy)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핵심은 경쟁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경쟁은 찰스 다윈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인류 생존을 위한 적자생존의 투쟁이다. 경쟁은 인간의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온 원동력이지만, 경쟁이 언제나 괜찮은 결과를 낳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완전한 무한 자유경쟁이 벌어지는 자연계를 예로 들었다. 수컷 공작의 화려하고 커다란 꼬리, 수컷 코끼리 물범의 엄청난 체중,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의 거대한 뿔은 생산력 높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진화 경쟁의 결과이다. 그러나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키운 거대한 뿔, 엄청난 체중,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깃털은 비록 같은 무리끼리의 경쟁에서는 승리했을지라도 결과적으로 종족 전체의 멸종이라는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집단의 실패를 가져오는 결과(시장의 실패)를 빚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우둔하거나 사악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너무 영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기심만 추구한다면 모두가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런 행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것이 군비경쟁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전 지구적 재앙과 위기가 닥친다고 할지라도 개인(또는 개별국가)만 손해를 봐야 한다면, 누구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즉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종족 전체의 멸종을 초래할 선택을 취하게 된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로버트 프랭크는 민주주의 세계에서 성공적인 국가는 시장의 자유를 위해 일하는 정부가 아니라 우리가 내는 세금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주는 정부를 선출하는 국민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이 혼자서는 집단의 실패를 막을 수 없기에 그런 정부와 사회,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시장원리인 ‘선택의 자유’를 정치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내게도 지금과 다른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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