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둘이 살고 고구마
한겨레 2023. 7. 28. 05:05
[시인의 마을]밤에 부엌에 서서 혼자 고구마를 먹는데 앞으로 몇 년은 쩝쩝대는 소리처럼 뻔하겠다 싶은 것이죠 너가 뭔가를 잘못한 건 아니에요 각자가 포기한 만큼 우리 인생은 보답을 받고 있거든요 밤에 부엌에 서서 두 개째 먹으면서 뭉친 모래도 아니고 사람이 허물어질 리 없는데 몸의 가장자리 붙들고 산다 느끼거든요 삶은 고구마쯤 먹는데 식탁에 앉기도 뭐하고 쥐죽은 듯 넓어지는 밤 창밖이나 바라보니 인생 알아서 굴러간다는 말 실감하거든요 멍청하게 서서 가슴을 치다가 너를 잃고 싶진 않아요 너 잃고 혼자서 먹어보는 고구마가 궁금할 뿐 밤에 부엌에 서서 세 개째 삼키면서 인간들 참 무섭다 하루에 열 번씩 화내면서 좋은 날 모자 쓰고 산책하고 얼굴은 별로 주름도 없는 것이죠 그러다 사랑하는 너 죽으면 나의 인생 제멋대로 구르겠네 생각하고 있거든요 너가 언제 삶았는지 모를 열 개쯤 남은 고구마 앞에서
김상혁의 시, 계간지 <문학동네>(2023 여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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