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에 씐 ‘KKK’를 종식시킨 여성들 [책&생각]

임인택 2023. 7. 2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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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북전쟁 이후 조직됐다가 쇠퇴한 백인폭력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이 재건 수준을 넘어 가장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한 때가 1920년대 초중반이다.

이 책이 1920년대 KKK의 광포한 부활에 대한 작가 티머시 이건(69)의 논픽션 탐문이라면, '링 샤우트'는 역사학자 P. 젤리 클라크(52)의 픽션적 탐문이다.

같은 시기, 무엇보다 클랜을 종식시킨 '여성들'에 대한 소설적 상상으로 가득하므로 더 나가네 마네 할 새 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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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9월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에서 열린 KKK 행사. 사진 안 설명이 무릎 꿇은 백인 남성들의 KKK 입단 교육행사임을 추정케 한다. 하워드 카운티 역사학회 제공, 코코모 트리뷴

링 샤우트
피(P). 젤리 클라크 지음, 이나경 옮김 l 황금가지 l 1만5000원

미국 남북전쟁 이후 조직됐다가 쇠퇴한 백인폭력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이 재건 수준을 넘어 가장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한 때가 1920년대 초중반이다. 전국 회원이 최대 5백만 대까지 추정됐고, 그 영향력 아래 있던 상원의원만 15명이었다. 100년 전 이맘때인 1923년 7월4일 인디애나주 코코모에서 10만명이 집결한 미 독립기념일 행사도 그 위세 중 하나다.

미국 인디애나주 KKK의 지도자 데이비드 C. 스티븐슨(D. C. Stephenson). 교육공무원인 여성 매지 오버홀처를 납치, 성폭행, 살인한 혐의 등으로 1925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위키피디아

올 4월 미국 신간 ‘A Fever in the Heartland’(심장부의 열기)는 KKK가 어떻게 미국사회를 장악했는지를 ‘법 위’에서 군림했던 인디애나주의 KKK 지도자 데이비드 시(C). 스티븐슨(1891~1966)을 중심으로 톺은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클랜이 승인한 가게에서 쇼핑을 하고, 클랜이 소개한 요리법으로 백인들이 식사를 했으니 KKK는 감정, 신념이 아니라 질서이고 생태계였다. 흥미로운 건 이 책이 스티븐슨의 ‘악마성’을 고발하는 데 기여한 성폭행 희생자인 백인 여성 매지 오버홀처(1896~1924)를 ‘클랜을 종식시킨 여성’으로까지 호명하는 점. 뉴욕타임스는 서평에서 KKK 조직 내 부패와 위선으로 이미 붕괴가 야기됐다며 “이건 너무 나갔다”고 썼다.

이 책이 1920년대 KKK의 광포한 부활에 대한 작가 티머시 이건(69)의 논픽션 탐문이라면, ‘링 샤우트’는 역사학자 P. 젤리 클라크(52)의 픽션적 탐문이다. 같은 시기, 무엇보다 클랜을 종식시킨 ‘여성들’에 대한 소설적 상상으로 가득하므로 더 나가네 마네 할 새 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소설 속 클랜은 차별에 동조하는 “얼간이 백인”들이다. 이들에게 침투한 악령이 바로 쿠 클럭스다. 이런 기호의 세분은 악마에 씐 게 아니라면 인간이 스스로 그처럼 잔혹할 수 있느냐 묻는 듯하다.

주인공은 “인간임을 기억 못 하는 허연 악령”, 즉 쿠 클럭스를 찾아 없애는 흑인 소녀 사냥꾼들. 이들의 정신적 지주인 진 할머니는 쿠 클럭스에게 가족을 잃은 마리즈에게 신신당부한다. “아직 인간인 자들은 죽이지 말라”고.

1915년 영화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의 한 장면. 미국 중고등학교에선 인종차별 교육용으로 교실에서 상영해 보여주기도 한다.

1915년 영화 ‘국가의 탄생’은 KKK의 부활에 큰 동력뿐 아니라 심지어 그간 없던 복장 콘셉트까지 제공하며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한 최초의 영화로 기록된다. 실재한 이 사실을 토대로, ‘국가의 탄생’이 재상영되려는 1922년 조지아주가 소설의 배경이 된다. 소녀 사냥꾼들은 이를 막기 위해 ‘도살자 클라이드’와 대결해야 한다.

클랜을 보며 “저 기분 좋은 증오를 봐라. 우리가 심은 게 아니라, 늘 저들 안에서 자라고 있다. 조금만 격려하면 꽃을 피우지. 영화 필름 몇 개만 보여 주면 하나로 뭉쳐 열심히 우릴 찾아온다” 말하는 악령 클라이드는, 작가 의도와 무관하게, 무솔리니의 선동술까지 연구했다는 인간 스티븐슨을 떠오르게 한다.

코네티컷대 사학과 조교수로 있는 클라크는 2016년 판타지 중편을 첫 출간한 이후 2021년 이 소설로 네뷸러상, 로커스상, 영국환상문학상을 받았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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