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틈을 보일 때, 나는 성큼 다가가 당신과 [책&생각]

한겨레 2023. 7. 2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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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좋아진다.

내가 '나'의 못남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 이를테면 기가 막히게 잘생겼거나 엄청나게 돈이 많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한 이들보다, 어딘가 허접해 보이는 이들 주위에 사람이 많은 것은 이런 메커니즘 때문일 것이다.

살면서 타인으로부터 거절과 미움이라는 공격을 받을 때마다, 나를 둘러싼 성채를 이중 삼중으로 단단하게 정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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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의 책들 사이로]

환영의 방주
임성순 l 은행나무(2022)

누군가가 좋아진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지나온 생에 대해 묻고, 거쳐온 아픔에 손길을 얹어주고 싶다. 그런데 망설여진다. 상대가 내 호의를 반길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좋아할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질색할 것 같다. 가깝게 지내며 서로 힘이 되어주는 장면을 몇 번 떠올리다가 결국 돌아선다. 가끔 그가 생각날 때면 이렇게 결론 내린다. 잘했어. 먼저 손 내밀었다면 창피를 당했을 거야. 연애 관계에서만이 아니다. 인간과 맺는 모든 관계에 이런 가정이 깔려 있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왜 먼저 손 내밀지 못하는가. 내가 ‘나’의 못남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속에 들어앉은 ‘나’는 못났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차마 그런 나를 타인에게 내밀 수 없다. 다가가고 싶다고, 너와 친해지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다. 반면 내가 호감을 품은 상대는 완벽해 보인다. 세련되고, 강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저렇게 멋있는 인간이 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 무엇이 아쉬워서 나 같은 못난이와 친해지고 싶겠는가?

그렇다면 만남은 언제 가능한가. 모두가 서로 제 몸속에 들어앉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대체 사람 간의 연결은 언제 일어나는가. 상대의 약점이 눈에 보일 때다. 모자라고 약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올 때다. 완벽해 보이던 상대의 틈을 인식할 때, 우리는 성큼 다가선다. 너도 나만큼 못난 존재였구나. 겉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 이를테면 기가 막히게 잘생겼거나 엄청나게 돈이 많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한 이들보다, 어딘가 허접해 보이는 이들 주위에 사람이 많은 것은 이런 메커니즘 때문일 것이다.

‘퍼스트 제너레이션’(소설집 ‘환영의 방주’)의 주인공이 상대 남성에게 마음을 여는 건 그가 한없이 서툴러 보이기 때문이다. 숙제를 앞둔 남학생처럼 수줍어하는 남자의 손을 잡으며 주인공은 ‘손가락 사이에 얽혀오는 미숙함에’ 설레한다. 뭉클한 감정에 빠져든다. 트렌스젠더인 주인공은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함부로 내보이는 편견과 값싼 호기심에 상처받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면에 철문을 치고 경계하며 살아왔다. 굳게 닫혔던 그녀의 마음을 연 건 ‘모든 게 처음인’ 남자의 어설픈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을 아파하며 살아간다. 내 안에 있는 나는 너무 잘나면서도 못났고, 너무 강하면서도 여리다. 이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성벽을 쌓는다. 살면서 타인으로부터 거절과 미움이라는 공격을 받을 때마다, 나를 둘러싼 성채를 이중 삼중으로 단단하게 정비한다. 이 상처받고 가엾은 미물을 절대 성채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성채 안에서 안전하게 머물며 기나긴 생을 버티리라! 다른 말로는 ‘열등감’이라 불릴 수 있을 이 성채는 잘생긴 외모, 부, 학벌, 사회적 지위의 결핍이라는 원자재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쌓은 성채의 주요 원자재는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일 것이다. 사회가 쌓아주고 주인공 스스로도 부지런히 쌓았을 거대한 성채에 예기치 않은 순간 틈이 생기고, 주인공이 그 틈새로 빠져나가 타인과 손을 맞잡는 장면은 우리네 인간들 모두가 품은 성채를 떠올리게 하는 아릿한 상징으로 맺힌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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