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내가 살고 싶은 세상, 소국과민(小國寡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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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동네에서 살고 싶다.
인구가 많지 않아서(寡民·과민) 사람 귀한 줄 아는 그런 곳.
이렇게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이야기하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
수준 높은 사람(上士·상사)은 이런 세상을 함께 꿈꾸고 만들자고 할 것이고, 고만한 사람(中士·중사)은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 의심하고, 한심한 사람(下士·하사)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크게 비웃으며(大笑·대소) 무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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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면 금방 도는 작은 마을
내 집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이런 마을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아! 무더운 여름날 꿈이로구나
다시 꿈꾸면 나오지 않으리라
이런 동네에서 살고 싶다. 인구가 많지 않아서(寡民·과민) 사람 귀한 줄 아는 그런 곳. 어쩌다 이웃이 찾아오면 반가이 맞이하고, 일찍 갈까 걱정하며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내어줄 줄 아는 그런 동네.
마을은 크지 않아서(小國·소국) 아침밥 먹고 슬슬 산책하면 동네 한바퀴 후딱 돌 수 있는 작은 마을이었으면 좋겠다. 자동차(舟輿·주여)가 집마다 있지만 그것을 매일 타고 어디로 가야 할 이유가 없고, 인간의 힘보다 열배 백배 강한 가전제품(什佰之器·십백지기)은 있지만 그것을 매일 사용할 필요가 없다.
돌아다닐 일이 없으니 세탁기는 일주일에 한번 쓰는 것으로 족하고, TV는 어쩌다 세상 소식이 궁금할 때나 틀어보고, 스마트폰은 사용할 일이 없으니 어디에 뒀는지 한참 생각해야 알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이 중시돼(重死·중사) 전쟁 때문에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不能徙·불능사) 되는 곳. 내가 태어난 집 마당에서 혼인하고, 내가 태어난 방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가족이 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한다.
마을 사람들의 학력은 그만저만해서 누가 많이 안다고 으스대지 않고, 누가 학벌이 좋다고 머리 숙이지 않아도 된다. 촌장을 마을 사람들이 진심으로 존경해 추대하고, 촌장은 겸손하게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다한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을 길을 알아서 청소하거나 망가진 도로를 보수하고, 무너진 이웃의 담장을 함께 수리한다. 가르침보다는 깨달음으로, 지시보다는 자율로, 충고보다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그 마을에는 버려진 사람(棄人·기인)도 버려진 물건(棄物·기물)도 없다. 저마다 갖고 태어난 그릇의 크기만큼 담고, 어느 그릇이 더 크고 작다고 비교하지 않으며, 어떤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의 어른이든 아이든 여자든 남자든 모두 소중한 사람들로 인정받고, ‘여자니까’ ‘어리니까’ ‘못났으니까’라는 말을 들을 수 없다. 전쟁이나 선거·집회·궐기대회에 나가느라 일상이 망가지지 않고, 저 먼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상하고 괴이한 일이 마을 사람들의 대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安居·안거),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甘食·감식), 지금 입고 있는 내 옷이 세상에 가장 예쁘고(美服·미복), 오늘 내가 사는 일상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고(樂俗·낙속) 생각한다. 더 예쁜 옷을 입기 위해 더 많이 일하고, 더 좋은 집을 얻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긴 줄에 동참하고, 더 멋있는 것을 보기 위해 먼 길을 가지 않는 그런 마을이다.
이렇게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이야기하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 수준 높은 사람(上士·상사)은 이런 세상을 함께 꿈꾸고 만들자고 할 것이고, 고만한 사람(中士·중사)은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 의심하고, 한심한 사람(下士·하사)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크게 비웃으며(大笑·대소) 무시할 것이다. 한심한 사람들이 비웃는 것은 진리라 그런 것이니 그들이 웃는다고 주눅들 필요가 없다.
무더운 여름날, 잠에서 깨어보니 낯익은 장소다. 고급 차는 줄지어 서로 뽐내며 학당 옆을 질주하고, 잘난 사람들의 멋진 일상이 사이버 허공에 가득하다. ‘꿈이로구나! 내가 꿈을 꾸었구나!’ 옆에는 노자의 ‘도덕경’ 80장이 펼쳐져 있으니, 태상노군(太上老君)이 불러냄이 분명하다. 꿈에서 깨어남이 아쉽다. 다시 꿈을 꾸어 그런 마을에 들어가면 영원히 꿈속에 갇혀 나오지 않으리라.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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