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자금·가업 물려주면 세금 덜 낸다... "불평등 초래" 지적도
혼인 증여, 공제 1억 원 추가
가업승계 저세율 구간 확대
혼인 증여 공제액이 3배 확대된다. 중소·중견기업 승계 증여세는 줄어든다. 정부가 27일 발표한 '2023년 세법 개정안'에 담긴 상속·증여세법 관련 내용이다.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을 줄여 결혼을 유도하는 '저출산 완화', 가업 승계 촉진을 통한 '경제 활력 제고'가 목적이다. 일각에선 '부의 대물림'을 쉽게 해 부유층 위주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값 1.5억 보태면, 증여세 970만→0원
개정안에 따르면, 혼인에 따른 증여재산 공제액은 커진다. 현재 부모가 결혼하는 자녀에게 준 재산 중 5,000만 원까지 비과세다. 결혼 후 10년 이내에 물려준 재산에 한해서다. 정부는 추가로 결혼 전후 2년씩 4년간 증여한 재산 1억 원에 대해 세금을 걷지 않기로 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1억5,000만 원을 결혼자금으로 지급한다면 증여세는 970만 원에서 0원으로 뚝 떨어진다. 신혼부부가 양가 부모에게 1억5,000만 원씩 3억 원을 받을 경우 1,940만 원이던 증여세 역시 0원이 된다.
가업 승계 때 세 부담도 작아진다. 현재 중소·중견기업 사업주가 자녀에게 기업을 넘길 때 10억 원은 기본 공제한 후 60억 원까지 세율 10%, 60억 원 초과~600억 원 이하엔 20%를 곱해 증여세를 물린다. 정부는 세율 10% 구간을 300억 원 이하까지 대폭 넓히기로 했다. 자동적으로 세율 20% 구간은 300억 원 초과~600억 원 이하로 좁혀진다.
만약 가업 승계 과정에서 300억 원을 물려준다면 증여세는 53억 원에서 29억 원으로 절반 넘게 줄어든다. 기존에 세율 20%였던 고율과세 재산 구간(60억 원 초과~300억 원 이하)이 모두 10% 저율과세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증여세를 나눠 낼 수 있는 연부연납 기간도 5년에서 20년으로 크게 늘어난다. 아울러 가업 상속 이후 업종 변경은 중분류 내에서 대분류 내로 바뀐다. 가업 승계 시 감세 혜택을 받은 기업인은 5년 내에 업종을 갈아탈 수 있다. 업종 변경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중소기업계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3분위 자산 4.4억, 1.5억 줄 가구 얼마나?
정부는 혼인 증여 공제 확대가 저출산의 시발점인 혼인 감소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2,000건으로 10여 년 만에 13만 건 넘게 줄었다. 부모로부터 받는 결혼자금이 많아지면 혼인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공제액을 5,000만 원으로 정한 2014년 이후 물가가 많이 올랐고, 주요 결혼 지원 항목인 주택 가격이 크게 뛴 점도 고려했다.
가업 승계 시 증여세 감세는 대를 잇지 못하는 중소·중견기업을 살리기 위한 조치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창업한 지 30년이 넘는 중소기업 대표 가운데 60세 이상이 80.9%다. 후대를 구하지 못한 사업주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은 가업 승계 과정에서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막대한 조세 부담'을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증여세 완화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고소득층, 기업인의 재산 대물림을 용이하게 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을 5개 구간으로 쪼갰을 때 소득 하위 40~60%인 3분위 가구가 보유한 자산(부채 포함)은 4억3,790만 원이다. 결혼 적령기 자녀를 둔 50대, 60~64세 가구의 자산은 각각 6억4,236만 원, 5억4,372만 원이다. 결혼자금으로 선뜻 1억5,000만 원을 내줄 수 있는 가구는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 장관 및 참모진 모임인 '포럼 사의재'는 이날 성명을 통해 "가업 승계, 혼인에 따른 증여세 완화는 부의 대물림과 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혼인에 따른 증여재산 추가 공제 1억 원은 전세 비용을 가장 크게 감안했는데 너무 과한 혜택도, 찔금 공제도 아닌 적정선"이라며 "가업 승계 세 부담 완화는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 박경담 기자 wa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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