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꽁초에 대한 단상
드디어 범인을 잡았다. 현장을 덮쳤다. 채 식지 않은 범행 잔해에선 그때까지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당황한 범인의 얼굴 뒤로 손 글씨로 써 붙여둔 ‘흡연 금지’ 문구가 보였다.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몰래 담배 피우던 비양심 흡연자를 검거한 건 지난 주말. 복도식 아파트 끝 집에 살다 보니 종종 담배 연기 테러를 당해 벼르고 있던 차였다. 바닥 이곳저곳 꽁초가 널브러져 있었다.
말싸움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이곳에서 다시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약속만 받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안하무인이었다. “내 돈 내고 산 담배, 내 마음대로 못 피우느냐”고 했다. “내 돈 내고 산 총이면 내 마음대로 당신 머리에 쏴도 된다는 말이랑 뭐가 다르냐”고 받아쳤더니 화를 내기 시작했다. 큰 소리에 사람들이 구경 나오자 범인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알고 보니 같은 층 사람들 눈을 피해 한 층 높은 우리 층에서 담배를 피운 것이었다.
‘소비’와 ‘무단 투기’가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한 묶음으로 행해지는 가장 왕성한 인간 활동은 아마도 흡연일 것이다. 점심때마다 빌딩과 빌딩 사이를 차지한 ‘흡연 점령군’을 본다. ‘금연’ 표지 앞에서 담배 연기를 뿜어댄다. 일대가 돼지갈비 골목처럼 뿌예진다. 점령군이 머물다 간 자리엔 새똥 같은 꽁초 잔해와 타액이 남아있다. 담배 피울 공간이 부족한 흡연자 입장에서도 고충은 있겠으나, 반대로 비흡연자 입장에선 남이 뿜어낸 담배 연기를 마시는 것만큼 역겨운 고역이 없다. 누구 보고 치우란 건지 틱틱 던져버리는 꽁초도 거슬린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만들어지는 약 6조개의 담배 중 4조5000억개가 무단 투기로 버려지고 있다. 코 푼 휴지는 쓰레기통에 버리면서도 꽁초는 바닥에 버린다. WHO는 “담배꽁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무단 투기되는 쓰레기 중 하나이고, 많은 흡연자들에게 꽁초를 바닥에 버리는 것이 사회 규범에 가까워졌다”고 분석했다. 꽁초 무단 투기만큼은 전 세계인이 하나인 것이다.
집중호우 때 복병도 꽁초다. 빗물받이를 막는 쓰레기 상당수가 꽁초이기 때문이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시간당 100㎜’의 집중호우 상황을 가정해 하나는 빗물받이에 나뭇가지와 흙만 차있을 때, 다른 하나는 다른 쓰레기가 섞여있을 때 침수 여부를 각각 실험한 결과 쓰레기가 있으면 침수 면적은 3배, 침수 높이는 2배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500억원을 들여 짓고 있는 광화문 대심도(大深度) 빗물 터널도 애초 빗물받이가 제 기능을 못하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 이번 장마철 시작 전 빗물받이 점검 때도 다수가 꽁초와 각종 쓰레기로 막혀있었다.
꽁초는 결국 흡연자 본인이 치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에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꽁초를 콕콕 꽂을 수 있도록 담뱃갑 디자인을 바꾸거나, ‘폐기물 발생자 처리 원칙’을 적용해 꽁초 20개를 모아오지 않으면 새 담배를 살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꽁초 300원’이 중고 거래 되는 장면이 나올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최후의 수단’까지 가지 않더라도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상식만 지켜도 투기 되는 꽁초양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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