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회장님이 챙겨야 중대재해가 없다
재해 노동자들 목숨값은 여전히 안전비용보다 낮아
김두현 변호사
지난주 경남 창원 현대비앤지스틸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300~400㎏ 무게의 철판에 깔려 사망했다. 1년 사이 벌써 3명째 사망 사고였다. 사망한 노동자는 기계에 부착된 철판의 연결부위가 헐거워진 것을 수리하다 변을 당했다. 애초 연결부위의 구멍크기도 맞지 않고 마모되어 있어 제대로 된 수리도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작업자 수는 적고 빠르게 수리를 완료해야 기계를 가동할 수 있었으므로 급한 대로 땜질식 수리를 하다 기어이 사고가 났다. 노동조합은 그간 수차례 노후화된 설비의 교체와 수리 작업자의 충원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그때마다 돈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누구나 돈이 없어도 써야 할 돈은 쓴다. 그저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돈은 써야 할 돈이 아니었던 것뿐이다. 어떻게 하면 노동안전 비용을 써야 할 돈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 만들어진 것이 지난해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다음의 세 가지 특징점이 있다. 첫째,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 등’이 직접 안전조치 의무를 부담하고,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가 발생하게 되면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여기서 ‘경영책임자 등’은 쉽게 말해 회장님 시장님으로 불리는 높으신 분을 뜻한다. 과거 사고가 발생해도 실질적인 권한도 없는 현장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만 꼬리 자르기식으로 책임을 지던 문제점을 바로 잡고, 진짜 권한을 가진 높은 사람이 직접 안전조치를 챙기도록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둘째, 법 위반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책임자 외에 해당 회사 법인에도 50억 원 이하의 높은 벌금을 부과한다. 회사 입장에서 형사처벌 시 부과되는 높은 벌금은 곧 ‘중대재해의 비용’이 된다. 사고로 인한 벌금이 수십억 원이라면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 수억 원 정도는 쓸 수 있게 된다. 그게 더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셋째, 중대재해를 입은 피해자나 유족들에게 최대 5배 범위 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한다. 기존에는 중대재해로 사망에 이르러도 근로복지공단이 지급하는 산재 유족급여로 대부분 보전시키고 정작 회사는 별다른 배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회사가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가 중대재해를 당할 경우 피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하도록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결국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는 회장님과 같은 높으신 분이 다른 중요한 경영 현안과 동등하게 안전문제도 챙기도록 강제하고, 위반 시 회사에도 막대한 벌금과 손해배상금을 부담하도록 하여 재해노동자의 ‘목숨값’을 높이려는 데 있다. 진짜 권한을 가진 경영책임자가 안전문제를 자신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로 인식하고, 높아진 재해노동자의 목숨값을 고려하여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안전비용을 지출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간 재해만 나면 이뤄진 꼬리 자르기식 책임회피와 낮은 목숨값에서 비롯된 “돈이 없어서 못한다”는 안이함으로 인해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중대재해에 대한 반성이다.
그러나 시행된 지 1년이 넘은 이 법은 제대로 ‘집행’이 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까지 발생한 중대산업재해는 총 253건인데, 이 중 검찰이 기소한 건은 불과 14건이었다. 통상적인 수사와 기소가 2, 3개월 만에도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사의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서두에 언급한 현대비앤지스틸에서는 지난해 9월과 10월에도 잇따라 중대재해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데 9개월이 넘은 현재까지도 검찰의 기소 여부는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던 사이 또다시 노동자가 철판에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어렵사리 기소가 된 사건들도 면면을 살펴보면 1심까지 진행된 몇 건의 사건들에서 검찰은 짠 듯이 징역 2년형을 구형했다.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대검찰청에서 마련한 중대재해에 대한 양형기준에 따르면 중대재해 사망사고 시 검찰은 최소 징역 2년6개월에서 징역 4년형을 구형해야 한다. 대검찰청이 정한 양형기준의 하한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을 구형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에서 선고하는 형은 통상 검찰의 구형을 초과하지는 않으므로, 기소된 이들은 대부분 징역 1년 이하에 집행유예가 선고되어 구속을 면했다. 회사 법인에 부과한 벌금도 많아 봐야 1억 원에 불과했다. 이들이 선고받은 형과 벌금은 그들의 입장에서 재해노동자의 목숨값과 같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목숨값은 여전히 낮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기소 시 법리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검사 출신 대통령의 법리해석에 반하여 검찰이 쉽사리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가 죽어야 재해노동자의 목숨값을 올릴 것인가.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