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서정주는 임옥상이 부럽다

박은주 부국장 겸 에디터 2023. 7.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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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뷰]
시대에 굴복한 예술인들
부관참시한 좌파들
‘성폭력’ 논란된 예술권력
스스로 어떤 단죄 할 건가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나라’라는 선동을 위해 진보는 수많은 문화예술인을 명예살인해왔다. 미당 서정주도 표적 중 하나였다.

2015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는 공동성명 발표 현장. 오른쪽부터 검은 안경 쓴 이가 고은 시인이다. /오종찬기자

2003년, 시 전문 계간지 ‘시평’에 시인 손진은씨가 ‘서정주가 빠진 국어교과서’라는 글을 썼다. 드물게 나온 ‘서정주 포용론’이었다. “서정주 작품이 빠진 것은… 안목의 부재, 경직성에서 파생된 것” “서정주 시는 일제 말기의 논리적 파탄(파시즘 체제 옹호 등 친일 행각)까지를 포함해 끌어안아야 할 유산이다.” 20년이 흘러 손 시인이 말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누님이 밭을 매며 그의 시를 외셨다. 서정주 시는 그런 시다. 당시 어떤 평론가는 ‘국화 옆에서’의 국화가 ‘사무라이’를 상징한다는 말까지 하더라” 그 시가 젊어 방종했던 미당의 먼 친척 누이를 노래했다는 걸 알 사람은 다 알았다. 한국어라는 텃밭을 흐드러진 꽃밭으로 가꾼 시인, 절개를 지키지 않았던 시인은 살아서도 죽은 세상을 살다 2000년 타계했다. 그래도 좌파는 ‘부관참시’ 죽창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뽑힌 자리에 ‘참여 시인’ 고은이 들어섰다. 2001년 설립된 한국문학번역원은 3년 반 동안 번역 170건을 지원했는데, ‘무기의 그늘’ 등 황석영 소설이 8편, ‘만인보’ 등 고은 시집이 6건으로 최다였다. 김소월, 박완서, 이문열, 박경리, 서정주 작품이 그들보다 적었다. 시 ‘만인보’를 외우는 국민은 별로 없었지만 온갖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를 순회했다. 십수년간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라 떠받들어졌다. 마지막 소식은 그가 시인 최영미를 비롯 여성 여럿에 대한 성폭력 시비에 휘말렸다는 것이다.

2000년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나기 직전, 고은씨 집 앞에 몰려있는 취재진. /주완중기자

노무현 시절, 이런 패턴이 반복됐다. 2005년 5월 진주 시민단체가 촉석루에 들어가 ‘미인도’(논개 영정)를 강제로 떼어냈고, 비슷한 시기 남원 춘향사당의 성춘향 그림도 철거요구가 시작됐다. 영정을 그린 이당 김은호의 친일 시비가 이유였다. 그해 6월 정부 홈페이지 국정브리핑에 ‘일제 찬양 미술가들 해방 후엔 위인 동상·영정 도맡아’(조은정)라는 글이 올라왔다. 당대 최고 인물화가의 그림을 이렇게 썼다. “위인의 동상과 진영에서 감동적인 이미지를 확인할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이 역사의식 없는 친일 미술가의 손에서 탄생된 때문이다… 미술작품의 진실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KBS 등은 ‘친일’ 시리즈를 반복해 만들었다. 시민단체, 학자, 방송, 정부가 한 몸처럼 움직인 게 놀라울 따름이다.

운보 김기창, 조각가 김경승도 그렇게 뽑혀나갔고, 그 공백을 메운 이 중 하나가 임옥상이다. “미술은 윤리의 외침에 귀 기울이는 작업”이라던 임옥상은 전국 조형물 시장의 ‘재벌’이었다. 청계천 전태일 동상, 봉하마을 ‘대지의 아들 노무현’상, 민주당사의 김대중·노무현상, 대검찰청 이준열사 흉상을 비롯, 광화문역사, 시흥어린이놀이터… 끝이 없다. 그가 2013년 후배 작가를 성추행해 검찰이 1년 형을 구형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 임옥상이 일본군위안부 추모공간 ‘기억의 터’를 설계했는데, 관련 단체는 여태껏 침묵하고 있었다. 성폭력 예술가의 작품을 어디까지 남겨둘 건가. 우리 사회 숙제다.

화가 임옥상 씨(왼쪽)와 최강욱 의원. /최강욱의원 유튜브 영상 캡처

이문열의 단편 ‘사로잡힌 악령’은 추잡한 여성 편력의 승려가 뜬금없이 ‘민족 작가’로 성공하는 줄거리다. 1994년 출간되자 “시인 고은 이야기”라는 말이 돌았다. 재판(再版)에서 빠졌다. 이문열 작가에게 이유를 물었다. “내고 보니 점잖지 못한 글 같아서 뺐다. 고은이 그렇게 됐는데, 다시 낼 생각도 없다.”

흠결 있는 작가의 상처에 죽창을 꽂아 구덩이에 파묻는 좌파의 ‘처단 방식’에 진저리 친 국민이 상당수다. 그런 이들에게 이문열 식 ‘관용’을 구하는 것도 이젠 위선으로 보인다. 역사의 되갚음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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