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49] 일본의 화장지 소동
1973년 11월 일본에서 느닷없이 화장지 품귀 소동이 벌어진다. 화장지를 사려고 상점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개점과 동시에 화장지를 움켜쥐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기(奇)현상이 일본 전역을 휩쓴 것이다. 화장지 대란으로 시중의 원성이 높아지자 정부가 나서 생활 물자 긴급조치법 등을 발동해 수급 안정에 나섰으나 사태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고, 소동은 해를 넘겨 계속되었다.
같은 해 10월은 4차 중동전쟁 발발과 오일 쇼크에 따른 경제 불안감이 감돌던 시기다. 정부가 종이 절약 담화를 발표한 이 시점이 나빴다. 자원 낭비를 막자는 절약 캠페인이었지만, 사람들이 이를 종이가 부족하다는 신호로 해석해 불안감이 증폭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오사카의 한 수퍼마켓이 화장지 판촉 캠페인을 벌인 것이 불을 붙였다. 화장지를 싸게 판다는 전단을 보고 몰려든 인파에 순식간 화장지가 동나자 인근에 소문이 퍼졌고, 한 언론사가 이를 ‘종이의 광소곡(狂騷曲)’이라는 자극적 제목을 달아 보도하면서 ‘화장지 품귀 사태’가 기정사실화되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뒤엉켜 화장지를 끌어안은 채 아수라장이 된 상점 사진이 지금도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화장지 소동은 오일 쇼크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일본인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사실 당시 화장지 수급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생산도 소비도 안정적이었고, 오일 쇼크로 공급이 위축될 가능성도 낮았다. 시중의 막연한 불안감, 카더라 통신, 언론의 자극적 보도가 한데 어우러져 군중 심리를 자극함으로써 일어나지 않아도 될 대혼란이 벌어진 것이었다. 고의적으로 유포한 거짓 뉴스가 소셜미디어,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순식간에 퍼지는 현대사회는 이러한 집단 패닉 현상에 더욱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진영 논리가 과학적·합리적 사고에 우선하는 사람이 많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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