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70> 겐지 이야기-무라사키 시키부(970?~1014?)
- 1000년 전 일본 교토의 궁인
- 여성에, 존귀한 신분도 아니라
- 후대에 본명조차 전하지 않지만
- 빼어난 글솜씨에 천황마저 감탄
- ‘금지된 연정’ 다룬 단편 54편
- 문학·성관념·신앙·미의식 등
- ‘日내면 들어가는 통로’로 평가
1000여 년 전 고대 일본 교토 궁정에서 일하는 한 시녀가 이름을 날렸다. 빼어난 미인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득한 옛날 일이라 미모로 판단하긴 어렵다. 확인되는 재능은 하나. 당대 천황마저 감탄했던 글솜씨다. 그녀 작품인 장편소설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겐지 모노가타리)’가 그 증거. 그 궁인이 무라사키 시키부(紫武部)다.
▮헤이안시대 왕조여성문학 일군 시녀
일본 후학 문학도에게 이 소설은 활자로 된 젖이었다. 그들은 ‘겐지 이야기’를 먹으며 자랐다. 궁정 비사 중에서 금지된 남녀 연정을 주제로 단편 54편이 묶였다. 시키부는 귀한 종이가 손에 들어오면 머릿속에 쟁인 얘기를 한 편 풀어냈다. 초고를 주변 독자들에게 읽히고 반응을 살폈다. 글은 갈수록 인기를 더해갔고, 마침내 교토 지가를 높였다. 근대 들어 이 소설은 여러 언어로 번역돼 읽혀 고전 명작이 됐다. 세계인은 ‘겐지 이야기’라는 다리를 건너 11세기 일본 헤이안시대(平安時代)로 들어갔다. 고대 일본 문예 부흥기에 수도 교토에서 국정을 좌우하는 귀족·천황 일가는 어떻게 살았을까. 최상위 귀족 가문이 주도한 섭관정치도 보여준다. 지금 일본 열도를 지배하는 정체(政體)가 여기서 나왔다.
일본 고대 사회를 접하게 되는데 귀족 중심이라 아쉽긴 하다. 그래도 간간이 그 아래 중류와 서민 사회도 녹였다. 일본 문학·교육관·신앙·성(性)관념·미의식 같은 정신세계와 내면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이 작품은 주목받는다. 헤이안시대 문예를 만난다. 글자 뜻대로 ‘편안한 시대’를 유능한 여성 시키부가 품어 ‘겐지 이야기’를 낳았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본명이 아니다. 성은 후지와라(藤原), 원래 이름은 ‘○○코’였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후세 기록이 없다. 헤이안시대 여성은 황족·고관 같은 고귀한 신분이어야 이름이 남았다. 교토 하급 관료 집안에서 자란 저자는 30대 초반 입궁할 때 무라사키 시키부란 이명을 얻었다. 시녀는 아버지나 남자 형제, 남성 친척의 관직명을 딴 이름으로 불렸다. 저자는 남자 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이 시키부성(武部省) 관료였다. ‘무라사키’라는 성은 ‘겐지 이야기’ 속 여주인공인 ‘무라사키 부인’에서 땄다고 후대는 추측한다.
당시 학문·문학·음악·예술에 능한 여성은 운이 따르면 시녀로 발탁돼 궁정에 들어갔다. 천황·황족이 거느리는 후궁과 같이 살며 그들 시중을 들고 교육도 책임졌다. 이들 중 글솜씨가 뛰어났던 이가 셋. 헤이안 시대를 돋보이게 한 ‘왕조 여성 문학’을 일궜다. 저자를 포함해 세이 쇼나곤(淸少納言), 이즈미 시키부(和泉武部)이다.
저자는 20살 안팎일 때 나이가 곱절 많은 신랑을 맞았다. 신혼이 짧았다. 결혼한 지 3년째인 1001년 남편이 한 살 외동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으니까. 시키부는 이즈음부터 ‘겐지 이야기’를 집필해 필력이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실세는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 그는 시키부에게 궁정에 들어가 자기 맏딸이자 이치죠 천황이 총애하는 중궁 쇼시(彰子)를 보필해 달라는 청을 넣었다. 이렇게 해서 저자는 궁정에서 일하게 된다. ‘겐지 이야기’ 집필도 이어졌다. 권력과 야망이 소용돌이치는 구중궁궐에서 쓰게 된 글은 이전과는 차원이 달라진다.
▮글씨체·문체로도 내용과 감정 전달
‘겐지 이야기’는 200자 원고지 4800여 장 분량이다. 짧은 시인 와카 790여 수를 곳곳에 넣어 문학 향기를 물씬 풍긴다. 4명 천황 치하 70여 년간을 시대 배경으로 삼아 인물 400여 명을 등장시켰다. 늙은 시녀가 낭독하기 좋은 운율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 가나로 썼는데 초고를 보면 내용에 따라 글씨체와 문체가 달라진다. 다른 여성을 일생 마음에 품는 남편 겐지를 바라보며 살았던 무라사키 부인이 죽을 때 심경이 그대로 저자에게 이입된 듯하다. 그 대목은, 가나를 못 읽어도 필체가 분위기를 그려낸다. 부인 사랑을 만족 못 하는 겐지와 그를 두고 세상을 떠나는 아내에게서 각각 흘러나와 얽힌 마음. 언어는 모든 걸 표현 못 한다는 걸 시키부는 보여준다. 읽는 글자가 아니라 보는 글자, ‘문자화(文字畵)’다. 회한 슬픔 고통 두려움이 뒤엉켜 흘러내리는 듯한 필적. ‘겐지 이야기’ 원고 두루마리와 화첩 일부는 일본 국보다.
“어느 천황의 시절이었던가. 여어(女御) 또는 갱의(更衣)라 불리는 많은 후궁 가운데, 비록 귀족 신분은 아니지만 천황의 애틋한 총애를 받는 갱의가 있었다.” 이 고전 1편 ‘기리쓰보(桐壺, 후궁 숙경사 별칭)는 첫 문장이 이렇다. 당시 소설은 “옛날에 한 남자가 있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게 관례였다. 시키부는 이를 깨뜨리는 문장으로 소설을 열었다.
이미 승계 1위 황자를 둔 기리쓰보 천황은 후궁에게서 두 번째 황자를 얻는다. 바로 남자 주인공인 히카루 겐지(光原氏)다. 겐지 생모는 궁정 여인들이 쏘아대는 온갖 시기와 원망을 받아내다 병을 얻어 세 살 겐지를 두고 이승을 떠난다. 몇 년 뒤 천황은 후지쓰보 여어를 넷째 황녀로 맞아 또 다른 황자를 낳는다. 이 아이는 천황 아들일까. 아니다. 친부는 계모인 후지쓰보를 짝사랑해온 겐지다. 아버지 천황 몰래 아들은 그녀와 관계를 맺었다. 이 금지된 사랑이 들통날지, 천황과 아들이 맞는 운명은 어떨지 독자는 책 속으로 빠져든다. 시키부는 이 아슬아슬한 국면에 얽힌 남녀가 보이는 심리와 행동, 주변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나간다. 여기서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일본인 마음을 본다. 시키부는 주인공들 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 인생 역시 영원하지도 않다. 남녀사랑처럼 덧없고 허무하다. 아름다움은 어떨까. 그들은 사라지기에 더욱 아름답다고 여긴다. 시키부 사랑학은 고대 일본인 정서와 닮았다. 이 고전 결말은 비극이 아니다. 씁쓰레한 인생이니 용서·관용·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며 여운을 남겼다.
▮민속신앙·유교가치관 등 독특한 시대상
‘겐지 이야기’는 내용상 3부로 나눈다. 1부는 분위기가 밝다. 천황은 적통 후계자가 아닌 겐지를 보호하려고 일부러 황족에서 귀족으로 신분을 강등하고 성씨를 내린다. 겐지는 황족 관료로 주변 여성들을 탐닉하며 방종하게 지낸다. 2부에서 나이가 든 겐지는 배신·이별·좌절을 경험하면서 원숙해진다. 전체 분위기는 허무 고독 슬픔 같은 어두움이 짙다. 3부에서 그는 승려가 된다. 그는 앞서 아들 가오루를 얻지만, 친자가 아니다. 부인 온나산노미야가 불륜으로 낳은 자식. 겐지는 그런 출생 비밀을 알지만, 인과응보로 받아들이며 끝까지 덮는다. 아들 가오루 역시 여인을 온당하게 사랑하지 못한다.
시키부는 불교 종말론을 이 소설에 펼쳤다. 실제로 어머니·언니·남편을 일찍이 떠나보내며 허망한 인생을 뼈저리게 느꼈던 그녀다. 아울러 독특한 헤이안 시대 사회상을 올려놓았다. 생령(生靈)이 등장하는 민속 신앙, 음양도에 따르는 생활, 중국에서 가져온 유교 가치관과 인간 본성이 섞인 결과. 주인공들은 박꽃 잇꽃 비쭈기나무 나팔꽃 패랭이 방울벌레 저녁안개 풋고사리 겨우살이 같은 꽃과 자연과 교감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시키부는 현실을 꿰뚫어 보았다. 인간 심리를 잘 파악해 궁정 내 대인 관계가 모 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을 숨겨 질시와 견제를 막았다. 궁정에서 만난 여러 남녀를 머릿속에서 재조합해 다양한 인물유형을 만들어냈다. 이 소설을 영국인 아서 데이비드 웨일리가 1922년부터 11년간에 걸쳐 영어로 옮겨 첫 번역본이 세상에 나왔다.
‘겐지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고대 헤이안시대 일본(인)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진다. 중세 근대를 거쳐 현대로 오는 동안 사라졌는가. ‘기리쓰보’ 편에서 겐지는 자기 관상을 봐준 고려 사신과 한시를 주고받으며 이별을 슬퍼한다. 고대 일본은 그때만 하더라도 주변 국가와 우호 선린을 도모하는 쪽이었나. 그 후 일본은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한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를 짓밟았다. 여전히 그들은 과거사를 참회하지 않고 발뺌한다. 시키부가 그려 보인 헤이안시대 모습은 정말로 사라져 버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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