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왈의 아트톡] 공공외교와 예술의 힘
지난 6일 저녁 캐나다 밴쿠버의 퀸 엘리자베스 극장에서 인천시립무용단의 <춤, 풍경> 공연을 관람했다. 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3000석의 공연장은 때맞춰 온 관객들로 만원을 이뤘다. 주밴쿠버총영사관이 주최한 공연은 관객 구성이 다양했다. 대부분 초청 교민일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견종호 총영사는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알겠지만, 밴쿠버는 다양한 인종들이 어울려 사는 모자이크 도시”라며 “한국의 문화예술을 직접 보고 즐기려 찾아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들 중에는 캐나다 정부의 주요 인사들도 보였다. 밴쿠버시를 품고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의 데이비드 이비 총리를 비롯하여 라즈 초우한 BC 의회 의장, 앤 캉 BC 정부 장관, 보니타 자릴로 하원의원 등이 참석했다. 단체 관람하는 밴쿠버 경찰들도 있었다.
견 총영사는 인사말에서 “2만6000명이 넘는 캐나다 군인들이 한국전쟁에서 우리를 위해 싸웠다”며 “한국에 자유를 선물한 캐나다에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이비 총리는 “한국의 문화와 예술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한국과 캐나다의 굳건한 유대를 축하하는 좋은 기회”라며, 마침 캐나다 곳곳에 확산 중인 산불 진화작업을 위해 소방대원을 파견한 한국 정부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이날 공연은 한국과 캐나다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행사였다. 그 의의와 분위기에 걸맞게, 인천시립무용단(예술감독 윤성주)이 펼친 공연은 훌륭했다. 총 여덟 개의 레퍼토리로 이루어진 공연은 산만하지 않게 짜임새가 있었고, 레퍼토리별 강약을 조절한 유기적인 전개로 지루하지 않았다. 국내 공연을 하듯이 자연스러워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을 만했다.
강선영류 무형문화재 ‘태평무’를 시작으로 목판 여섯 조각의 박(拍)을 활용한 ‘결’, 한국무용의 고전 레퍼토리로 이름난 ‘부채춤’, 전통 검무를 재현한 ‘격’, 현란한 장구 기술을 보여주는 ‘풍류가인’, 불교 춤 범패(梵唄)의 역동성을 보여준 ‘사다라니’ 등이 이어지면서 관객을 사로잡았다. 1시간40분 공연은 판소리 ‘수궁가’를 바탕으로 한 창작무 ‘상좌다툼’ 대목으로 마무리됐다. 관객들은 화려한 ‘부채춤’과 에너지 넘치는 검무, 장구춤을 특히 좋아했다.
이런 방식의 수교 기념 공연은 우리 외교부가 펼치는 공공외교 사업 가운데 하나다. 외교부는 매년 민간 예술단체와 지방자치단체 소속 예술단체를 선정, 보조금을 주어 해당 국가에 파견하는 사업을 수년째 하고 있다. 예술단체들의 관심이 날로 높아져 선발 경쟁이 뜨겁다. 해외 공연 기회가 많지 않은 민간 단체 분야는 더욱 치열하다. 경쟁은 자극제가 돼, 파견 국가의 사정에 맞춘 단체들의 공연 수준도 점차 나아지고 있다. 이 사업 효과에 고무된 해외 공관에서는 그 지역 정서에 좀 더 적합한 우수한 예술단체를 보내달라고 본부에 애원하기도 한다.
이처럼 문화예술이 외교의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공공외교가 강조되면서부터 생긴 변화다. 외교부는 2010년을 ‘공공외교의 원년’으로 선포하면서, 정무외교·경제외교와 함께 공공외교를 외교의 3대 축으로 설정했다. 외교부의 설명에 따르면 “공공외교는 문화·예술, 스포츠, 가치관과 같은 무형의 자산이 지닌 매력을 통해 상대국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프트파워를 추구하는 개념”이다.
이렇듯 소프트파워인 문화예술은 공공외교의 요체다. 냉전 이후 전통적인 외교 무대에서 상대방을 압박하는 외교 수단은 주로 하드파워인 군사력과 경제력이었다. 하나 국익을 위해서는 이 힘만으로는 무리가 있으니, 보완하는 차원에서 공공외교가 부각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이 비중을 높이고 있다. 문화예술이 외교 분야에서 힘을 얻게 된 계기다.
글로벌 현상인 한류가 여러 분야에서 파급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한류 동력인 K콘텐츠가 프리미엄 브랜드가 돼가는 마당에, 우리의 공공외교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이번 행사 참관으로 확인했다.
정재왈 예술경영가 서울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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