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길 위에서] 조지아 대자연의 깨끗한 기운... 온 몸에 새기다

경기일보 2023. 7. 2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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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용 탑 코쉬키가 솟아있는 메스티아 마을. 김남희 여행작가

 

지난 6월에는 한 달간 조지아에 머물렀다. 벌써 3년째인데 해마다 새롭다. 질리지 않는 조지아의 매력은 무엇일까.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시원해지는 캅카스 산맥의 설산들, 다혈질적인 기질도 있지만 그만큼 소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 나같이 저예산으로 다니는 이에게도 부담이 적은 저렴한 물가, 8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과 음식, 여성 혼자 돌아다녀도 안전한 치안 등. 매력을 말하자면 끝이 없다.

이 나라가 유럽 대륙 가운데에만 있었어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대국이 되지 않았을까. 자연환경을 놓고 보면 누구는 ‘가성비 좋은 스위스’(이런 표현은 스위스에도 조지아에도 실례라고 생각하는 쪽이지만)라 하고, 음식을 얘기하면 누구는 이탈리아에 버금간다고 한다. 고평가된 프랑스 와인보다 이 나라 와인이 더 낫다고 하는 이도 있다. 비록 와인 한 잔이 주량이라 민망하긴 하지만 나 또한 조지아 와인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2015년 고고학자들의 발굴 이후 인류 최초의 와인은 이제 이란이 아니라 조지아라고 공인됐다.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도 많고 많은 나무 중에 포도나무 가지를 꺾어 십자가를 만들어 세웠다. 당연히 포도 문양은 조지아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장식 문양이다. 대문이나 창틀은 물론 벽지나 커튼에도 포도 열매나 줄기가 새겨져 있다. 이 나라에서 와인은 조지아 전통 방식과 유럽식 두 가지로 생산된다. 전통 방식은 ‘크베브리 와인’이라 불린다. 토기 항아리 크베브리에 포도 껍질과 씨까지 함께 넣어 발효시키는 내추럴 와인으로 조지아만의 독특한 저장법이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쉬카라 빙하 아래 우쉬굴리 마을에서 풀을 뜯는 소와 말들. 김남희 여행작가

조지아에서는 괜찮은 식당에서 와인 한 병을 주문해도 2만~3만원 정도다. “내가 쏠게” 소리쳐도 큰 부담이 없다. 올해는 트레킹만이 아니라 와인 기행도 했기 때문에 와인으로 유명한 카헤티 지역에 머물며 다양한 와이너리를 방문하기도 했다. 내가 가 본 가장 근사한 와인바는 트빌리시 시내에 있는 ‘8000 빈티지’. 이름처럼 8천병의 와인 리스트를 가진 곳이다. 이곳에선 판매가와 동일한 가격으로 매장에서 간단한 안주와 함께 와인을 마실 수 있다. 마치 도서관처럼 천장까지 짜 넣은 목재 선반에 와인이 가득했다. 소믈리에의 추천을 받아 엠버 와인 한 병과 레드 와인 한 병을 마시고 두 병을 사서 나왔다. 살짝 취한 탓인지 밤거리를 걷다 보면 트빌리시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조지아에서는 미안해도 와인을 선물하고, 고마워도 와인을 건넸다. 간이 상하기 딱 좋은 나라였다. 조지아는 와인만이 아니라 빵도 맛있어서 빵순이인 나는 매일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화덕에서 갓 구운 따끈따끈한 빵 쇼티, 치즈를 듬뿍 넣고 구운 하차푸리, 송아지고기를 다져 넣고 구운 굽다리, 콩과 햄을 넣은 빵 로비아니. 프랑스인들이 종이 봉투에 바게트 담아 가듯이 조지아인들은 신문지에 쇼티를 둘둘 말아 집으로 갔다. 그 모습을 보면 어쩐지 내 마음도 따끈따끈해졌다.

관광객들이 토기 항아리 크베브리에서 숙성 중인 와인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김남희 여행작가

하는 일 없이 와인만 마시고 있으니 제대로 한량이 된 것 같았다.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쳤다. 자동차로 10시간을 달려 조지아 북부의 스바네티로 올라갔다. 이 지역의 가장 큰 마을은 메스티아. 우슈굴리까지 가는 3박4일의 트레킹이 이 마을에서 시작된다. 해발고도 1천500m에서 2천750m까지 산을 넘어 도착한 마을에서 자고, 다음 날 다시 산을 넘어 다른 마을로 향하는 일을 반복한다. 도중에 편의시설이라고는 전혀 없으니 점심도 민박집에 도시락을 싸달라고 해야 한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산길을 호젓하게 누리며 대자연의 깨끗한 기운을 온 몸과 영혼에 새기며 걸을 뿐. 이 정도 풍경을 지닌 곳이 이렇게나 비어 있는 곳이 또 있을까. 하루 종일 걸어도 몇 명을 마주칠 뿐이다.

김남희 여행작가

마지막 마을인 우슈굴리는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조지아는 강대국 사이에 낀 지리적 요충지여서 온갖 침입을 다 받아야 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코슈키라는 탑으로 식량을 싸들고 들어가 사다리를 걷고 버텼다. 7세기부터 지어진 코슈키가 200여채의 오래된 집들과 함께 남아있는 곳이 우슈굴리다. 겨울이 오면 지금도 마을이 눈 속에 파묻혀 길이 끊어지고 고립되는 깊은 산골이다. 우슈굴리 출신 여성이 우슈굴리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데데’를 보고 나면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영화 속 일(집안끼리의 정략결혼, 튼튼한 여성을 향한 보쌈, 명예가 훼손됐을 때 죽음으로 복수하기)들이 일어난 건 불과 30여년 전. 더는 그런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우슈굴리가 세계문화유산이 된 후 마을은 다른 방식의 변화를 겪고 있다. 해마다 차량 렌트비, 승마비, 숙소비 등이 치솟고 있다. 여기저기 새로운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바가 문을 열었거나 공사 중이다. 관광객이 오지 않는다면 우슈굴리는 물론이고 우리가 거쳐온 자베시, 아디시, 이프라리 같은 마을은 곧 페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 마을들은 점점 빈집이 늘어나고 있지만 한 편으로 새로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열기도 한다. 우리는 이 마을을 존속시키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이곳에 부정적인 영향을 몰고 오는 존재이기도 하다. 늘 이런 변화를 목도하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생겨나곤 한다. 이 아름다운 산골마을들이 부디 변화의 몸살을 조금만 앓고 지나가기를 빌 수밖에.

우슈굴리를 떠나기 전날, 혼자 마을을 걸었다.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외진 골목들까지 걸어다녔다. 사람이 떠나 쇠락하는 빈집들 사이로 여전히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털모자를 쓴 여인이 코슈키 탑 사이를 돌아 급히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나무 울타리 위에 널어 놓은 이불이 말라 가고, 말을 탄 소년들이 좁은 골목을 힘차게 달려나갔다. 언덕 위 천 년도 더 전에 세워진 교회의 마당에는 늙은 개가 오가는 이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창이 깨진 낡은 집, 버려진 페트병이 박힌 화단 구석, 미니카를 들고 혼자 노는 아이. 맥주잔을 앞에 두고 카페에 앉아 있는 청년, 집으로 가는 노인의 구부정한 어깨. 그 모든 풍경 위로 이우는 저녁 햇살이 골고루 내려앉고 있었다. 산허리를 감싸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며 슈카라 빙하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작별 인사라도 건네듯. 어쩐지 애잔한 마음이 밀려와 그 풍경에 마음을 앗긴 채 나는 오래도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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