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82) 경주 석빙고
부산·경남 지역 사람들에게 ‘석빙고’라 하면, 팥으로 만든 ‘아이스케키’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 1950년대부터 생산되었다는 이 ‘단짠’의 빙과류 이름은 신라 시대에서 유래했다. 빙고(氷庫)는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란 뜻으로, 석빙고라 하면 돌로 만들어진 빙고를 말한다. 천연 냉장고 빙고는 삼국사기에 신라 지증왕 6년(505년)의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된 건축물이다. 현재 경주, 대구(현풍), 청도, 안동, 창녕 등에 남아 있다. 서울 용산에 동빙고동, 서빙고동이 있는데 과거에 빙고가 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사진 속 석빙고는 보물 제66호로서 경주에 있다. 경주에 있다고 해서 신라 시대 때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조선 영조 14년(1738년)에 만들어진 비교적 최근의 것이다. 석빙고 안을 들어가 보면 높이 5.4m, 너비 6m, 길이 14m의 얼음 보관소가 있는데, 겨울에 꽁꽁 언 강에서 얼음을 캐어 와 여름까지 보관했다고 한다.
냉매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냉장고가 어떻게 얼음을 녹지 않게 보관했을까?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석빙고는 반지하 구조로 되어 있고, 지붕에는 흙을 두껍게 덮고 잔디를 심어 열기를 차단하는 동시에 냉기를 보존하게 했다. 지붕 위쪽에는 환기구가 두 개(실제는 세 개) 보인다. 환기구 위에는 덮개돌을 얹어서 빗물과 직사광선을 방지했다. 그리고 문은 바람이 잘 통하도록 남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바닥은 경사지게 해, 얼음 녹은 물이 자연스럽게 배수되도록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여름에 석빙고 외부 온도는 8.2도의 온도차를 보이지만, 내부 온도 변화는 1.3도에 불과하며 평균 19.8도로 유지되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얼음은 헌법에 해당하는 ‘경국대전’에 얼음 배급에 대한 규정을 둘 정도로 귀중하게 취급되었다. 그에 따르면 얼음은 “왕의 종친, 문무 당상관, 70세 이상의 퇴직 관료”에게 배급되어야 하는 사치품이었다.
석빙고는 옛 사람들이 자연을 거스르거나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조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전환과 발전 및 교통방식의 전환 외에도, 새어 나가는 에너지를 잡고 외부 온도에 영향을 덜 받도록 건물을 짓거나 개조해야 한다. 에너지를 잡아먹는 전면 유리창 구조로 된 고층빌딩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자연과 조화했던 석빙고의 지혜가 떠오른다.
김찬휘 녹색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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