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타고난 전략가이자 성실의 대명사 닉슨, 전쟁을 예감하다
러-우크라 방문, 정세 살피고 분석해
자신의 견문을 후대 비망록으로 남겨
러, 강력한 힘 대중독재자 출현 예견
美국익 위해 對러시아정책 신중 촉구
자기 잘못에 비해 대가를 너무 혹독히 치른 지도자를 꼽는다면 단연 미국 제 37대 대통령 리차드 닉슨(1913~1994)일 것이다. 사소한 거짓말-정확히는 얼버무림-하나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와 군대의 지휘권을 잃었으니 말이다.
닉슨은 압도적 재선 성공에도 불구하고 소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의 위기에 몰렸고 스스로 사임했다. 사건 이후 50년이 지난 현재 워터게이트를 둘러싼 여러 이설(異說)이 나오고 있다. 진실은 여전히 미궁이다. 분명한 것은 닉슨이 일단의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닉슨처럼 리더십, 책임감, 성실성, 비전제시 그리고 부도덕하지 않은 선에서 약간의 전략적 일탈 등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고루 갖춘 지도자도 드물다. 그런 풍모는 그의 부통령 재임 시(아이젠하워 대통령 하 8년)와 대통령 재임 시(1969년~1974년)에도 유감없이 발휘됐지만, 더 광채 나는 시기는 그가 대통령 사임 후 1994년 사망할 때까지 20여 년 간 9권의 책과 수많은 해외 견문을 기록한 비망록에 잘 나타나 있다. 최근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생겨 다시 전략가 닉슨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닉슨은 사망 한 달을 남겨놓은 시점인 1994년 3월 그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둘러보며 받은 인상과 정세에 대해 설명하는 서한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냈다. 그 편지가 최근 비밀 해제돼 공개됐다. 편지 내용은 국제정세를 보는 그의 혜안과 통찰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가능성을 30년 전에 예견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 언론이 보도한 그의 공개된 서간 내용을 소개한다.
◇대통령 사임 후 세계를 주유(周遊)하다
편지는 7쪽 정도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분량이다. 편지는 공개 되기 이전에도 클린턴이 '대러시아 정책과 관련한 현명한 조언'이라고 불렀던 값어치 있는 자료였다.
1994년 3월 21일자 서한에서 닉슨은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을 단도직입적으로 평가했다. 모스크바와 키예프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했다. 당시 81세였던 닉슨은 2주간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였다.
민주당 당사에 도청장치를 설치할 것을 지시하지도 않았고, 올라오는 정보가 도청에 의한 것이라고 인식하지도 않았던 닉슨은 사소한 말실수로 백악관을 떠났지만 냉전시절 소련과의 데탕트를 효과적으로 진행한 노련한 전략가다. 1972년 닉슨은 모스크바를 방문함으로써 러시아를 최초로 방문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곳에서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소련 서기장과 함께 탄도 미사일 요격 조약 및 전략 무기 제한 조약에 서명했다. 그의 유연하고 여유있는 대소련 데탕트 설계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압도하고 마침내 소련공산당의 해체와 동유럽의 해방으로 연결됐다고 볼 수 있다.
닉슨은 대통령에서 사임한 후 죽을 때까지 해외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에 유용한 자산이 될 경험을 쌓았고, 그걸 바탕으로 클린턴 대통령에게 조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닉슨은 러시아에서 정치적 경제적 자유의 가능성에 대해 "미국이 직면하게 될 가장 중요한 외교 정책 과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그는 클린턴에게 그가 러시아에서 본 바에 따라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 치하의 어설픈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닉슨은 편지에서 "이 나라에서 옐친의 첫 번째 지지자이자 과거 그의 리더십에 대해 계속해서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마지못해 그의 상황이 12월 선거 이후 급격히 악화되었고 러시아는 쇠락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썼다. 닉슨은 옐친의 음주벽과 그로 인한 우울증으로 인해 러시아 정치가 미궁 속으로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골치 아픈 것은 그가 점점 더 반미적인 분위기가 고조되는 두마(러시아 의회) 및 주요 권력기관과 힘겨운 싸움을 하면서 서방 지도자들과 한 약속을 이행할 수 없는 점이라고 했다.
닉슨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해체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매우 폭발적'이라고 판단했다. 닉슨은 클린턴에게 키예프의 미국 외교 대표진용을 강화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주 키예프 미국대사관이 인력이 부족하고 부적절하게 지휘된다"고 불평한 미국 사업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라고 권했다.
◇푸틴 특정하지 않았지만 강력한 지도자 등장 예고
닉슨은 또한 클린턴에게 옐친의 잠재적 후계자를 주시할 것을 충고했다. 그의 후계자와 관계를 발전시킬 것을 촉구했다. 술주정뱅이이자 부주의한 옐친을 이을 러시아 지도자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것임을 예감했다. 그러나 그가 블라디미르 푸틴일 것이라곤 특정하진 않았다. 사실 이때 푸틴은 러시아 국가안보위원회의 서기로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닉슨은 "부시(아버지 부시, 클린턴의 전임자)는 고르바초프와 너무 오래 붙어 있는 실수를 저질렀다. 왜냐하면 그의 친밀한 개인적 관계 때문이다. 당신은 옐친과 매우 좋은 개인적 관계에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편지에 썼다.
그러면서 누가 다음에 권력을 잡을지 확신하진 못했다. 그는 "러시아의 잠재적 지도자로서 옐친 급의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는 클린턴에게 러시아의 민족주의와 포퓰리즘 조류를 직시할 것을 조언했다. 푸틴의 러시아 민족주의 정권이 자리 잡기 5년 전의 일이다. 닉슨은 러시아의 독특한 국민적 기질이 권위주의적 대통령 후보감을 배출하는 토양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닉슨은 대다수 미국인들과 다르게 미 워싱턴 조야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루쏘포비아'와 상반된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러시아인들은 진지한 사람들이다. 흐루쇼프가 1964년 실각된 이유 중 하나는 자랑스러운 러시아인들이 유엔과 여러 국제 포럼에서 그의 조잡한 익살을 부끄러워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편지에서 닉슨은 직업 외교관에 대한 반감도 드러냈다. 그는 "1972년 중국을 방문하기로 내린 결정은 외교관들의 승인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고 썼다. 닉슨은 참모들에게 제지당하지 말고 자신의 진로를 정하라고 충고했다. 또 "외교관들은 말썽을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승진하는 데만 혈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며 "그들은 당신의 엉덩이를 보호하는 것보다 자신의 엉덩이를 가리는 데 더 관심이 있다"고 했다.
◇역사적 민족적으로 러-우크라이나는 공영 불가능하다 판단
무엇보다 닉슨의 예지가 빛나는 부분은 강력한 힘의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한 점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공영(共榮)할 수 없는 역사적 민족적 갈등으로 인해 언젠가는 전쟁으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고 한 점이다.
그러나 클린턴과 이후 아들 부시, 오바마, 현 바이든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은 닉슨의 경고를 귀 기울이지 않은 듯하다. 미국은 러시아의 정상적인 민주주의 정착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러시아는 대중 영합적 1인 독재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다만 트럼프만이 늦었지만 대 러시아 관계의 연착륙을 도모했을 뿐이다.
미국에게 러시아는 잡초가 우거진 후원이었다. 방치해놓았다가 모기와 냄새의 공격에 시달리는 집주인의 그것과 같은 신세가 됐다. 미국이 2014년 우크라이나 '마이단혁명'을 자극하는 것과 같은, 단지 '루쏘포비아 현상'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책동'을 벌이지만 않았더라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미국은 러-서방 대리전이라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약 1300억 달러(약 165조원)을 쏟아 붓고도 사실상 패배를 앞두고 있다.
미국의 유일 패권국으로서 지위와 위상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분기점으로 추락하고 있다. 지금의 미국은 70여 년 전 한반도에서 한 번 본적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3만6000여명의 고귀한 생명을 바치며 싸웠던, 그런 숭고한 미국이 아니다. 이는 미국 국민의 이익보다는 소수 엘리트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부패하고 무능하며 무념에 젖은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미국에 큰 빚을 졌고 앞으로도 안보동맹의 파트너로서 남아야 할 우리로서는 참으로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닉슨이라는 타고난 전략가의 부재가 크게 느껴지는 21세기 지정학 상황이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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