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덩치 커. 걱정마” 안심시키던 아들이 죽었다 [그해 오늘]
백광석 ·김시남, “네가 죽였잖아” 법정서 ‘네 탓 공방’
백 씨, 동거녀와 사실혼 관계 틀어지자 동거녀 아들 살해
평소 “네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겠다”며 협박
[이데일리 이로원 기자] “살해범이 내 아들을 먼저 죽이고 나를 죽이겠다고 지속적으로 협박했다. 아들이 걱정돼 늘 조심하라고 말했지만, 그때마다 아들은 자기가 제압할 수 있다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가정폭력을 당할 때마다 아들은 날 안심시키기 바빴다”
앞서 제주지방법원 형사2부는 백 씨와 김 씨에게 각각 징역 30년과 27년 형을 선고하고,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을 명령한 바 있다. 이날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이들에게 내려진 형이 확정됐다.
백 씨와 김 씨는 2021년 7월 18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주택에 침입해 백 씨의 옛 동거녀 아들인 김모 군(사망 당시 15세)을 끈 종류로 결박한 뒤 목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그 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제주 중학생 살해 사건’이다.
이들은 범행 전 함께 철물점에서 청테이프 등을 구매하고 김 군이 살던 주택 인근을 찾는 등 범행을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백 씨는 김 군 어머니와의 사실혼 관계가 틀어지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평소 김 군 어머니에게 “네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중학생인 김 군은 죽음이 다가온 순간에도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그는 위급한 순간에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엄마, 내가 키도 크고 덩치도 좋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백 씨가) 공격하면 제압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어머니는 “가정폭력을 당할 때마다 아들이 나를 안심시키기 바빴다”며 “피해자 진술을 하러 경찰서에 갈 때도 아들과 함께 갔다”고 말하며 흐느꼈다.
지난 5월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도 김 군은 부서진 TV와 컴퓨터 등을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부서진 유리 조각까지 비닐봉지에 담아 모았다. 나중에 수사기록용으로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체격이 큰 김 군을 혼자 감당할 수 없었던 백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김 씨를 범행에 끌어들였다. 사건 발생 사흘 전부터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이들은 살해 직후 김 군의 휴대전화를 파손하고 집에 불을 지르려 한 혐의도 받는다.
살해 이후 백 씨는 도주 중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현금만 사용하면서 추적을 피했다. 그는 범행 이전까지는 김 씨의 차를 타고 이동했지만 사건 이후엔 홀로 도망쳤다.
백 씨는 “자신 때문에 피해자가 죽었다”며 잘못을 시인했다. 하지만 정작 범행 주도 여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김 씨는 동 주거 침입 혐의는 인정하되, 살인 혐의는 부인하며 반론을 폈다.
이와 관련 백 씨 측 변호인은 “피해자의 허리띠를 이용해 피해자의 목을 처음 조른 것도, 이어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목을 조른 것도 김 씨가 했다. 이는 사전에 백 씨와 의된 행동이 아니다. 현장에 있던 김 씨가 제적·주도적·능동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김 씨가 살인에 착수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씨 측 변호인은 “백 씨의 뒤를 쫓아 집 안으로 침입했을 때, 피해자가 백 씨를 향해 욕을 하고 있어서 피해자를 말리면서 붙잡았다”며 “이 틈에 백 씨는 아래층에서 흉기를 가지고 와서 옆에 뒀고, 다락방 안에 있던 아령으로 피해자를 내려쳤다. 당시 테이프를 가져와 함께 피해자를 결박했지만, 살인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둘 모두의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지난해 12월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사전에 범행을 모의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범행 결과는 참담하고 피해자가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도 진지한 반성은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해 5월 항소심에서도 광주고법 제주제1형사부는 “피고인들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며, 피해자의 고통이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원심 형량이 무겁다고 보기 어렵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이로원 (bliss24@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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