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의회 ‘민주시민교육 조례’ 폐지 강행
국민의힘 발의·가결…교육감 “중립 조사 후 결정” 제안 묵살
40곳 시민단체 “의견수렴도 없었다” 반발…현장 혼란 불가피
대전·울산 등 지자체들이 학교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조례를 폐지하면서 학생 대상 통일·인권 등 민주시민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정식 교육(교과)과정 이외에 민주시민교육을 주제로 여는 각종 토론·강좌·축제·연수·체험 활동을 위한 교육청의 사업비 지원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27일 울산시교육청과 울산시의회 등에 따르면 울산시의회는 지난 20일 ‘학교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조례 폐지안’을 제240회 임시회 본회의에 상정해 가결했다. 이 조례는 2020년 말 제정됐다. 조례 폐지안 공포는 다음달 10일로 예정돼 있다. 이에 따라 조례에 대한 효력은 사실상 올해까지만 유지된다
시의회는 조례 폐지 사유로 학교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조례가 교육 중립성을 침해할 수 있고, 이미 교육과정으로 시행되고 있어 조례에 따로 규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울산시의회는 전체 의석 22석 중 국민의힘 소속이 21석이고, 나머지 1석이 민주당 소속이다. 조례 폐지안은 국민의힘 소속의원들이 발의했고 수적 우세를 앞세워 가결했다.
천창수 울산시교육감은 조례 폐지안이 시의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되기 전인 지난 17일 “중립적인 방식으로 숙의형 공론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조례 폐지 여부를 결정하자”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의회 상임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조례 폐지안이 통과될 때까지 진보·보수 성향별 시민단체들의 갈등도 심했다.
울산지역 4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민주시민교육지키기 울산연대회의’는 “학생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없애는 것은 물론 조례 폐지과정에서 교육 주체인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의견수렴 과정조차 없었다”고 반발했다. 반면 울산교총과 민주시민학부모연합 등 보수 성향의 단체는 “교육은 학교에서 교사에 의해 이뤄져야 하며, 교사민주시민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이 편향적이며 중립성에 위반하는 교육을 받았다”고 맞섰다.
학교민주시민교육 활성화(진흥) 조례는 현재 전국 17개 시·도 중 서울·부산·광주·경북·경남 등 14곳에서 2016~2021년 순차적으로 제정해 운영 중이다. 대구교육청은 관련 조례를 제정하지 않은 대신 75억여원을 들여 ‘민주시민교육센터’를 설립, 교육과정과 연계한 체험 중심의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조례 제정 후 이를 폐지한 곳은 대전과 울산이다. 대전은 2021년 말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이후 대전시의회는 올해 2월 야당 의원들의 투표 불참 속에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조례 폐지안을 가결했다. 교육현장에서는 폐지 후 혼선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천창수 교육감은 “교육과정에 포함된 민주시민교육은 그대로 진행되겠지만 학생 토론축제와 의사소통 역량강화 같은 기존 정책 추진과 학교 교육활동 지원 등이 위축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울산시교육청은 조례에 근거해 통일교육 연수, 통일교육 선도학교 운영, 통일교육 현장체험, 교실 속 평화축제, 미래유권자 교육 등 5개 사업을 시행 중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올해 당초예산 편성에서 이미 10여개의 학교민주시민교육 관련 예산이 삭감됐고 나머지 사업도 일부 축소 운영되고 있다”면서 “학교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조례 폐지로 내년부터는 이마저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백승목 기자 smbae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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