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가의 재건... 경북고, 이승엽 이후 30년만에 청룡기 품에 안았다
전통의 명문 경북고가 30년 만에 고교야구 최고 권위의 고교야구선수권 우승으로 청룡기를 품에 안았다.
경북고는 27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8회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선수권(조선일보·스포츠조선·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동 주최) 결승에서 양산 물금고를 4대1로 눌렀다. 이승엽 현 두산 베어스 감독이 2학년으로 우수 투수상을 받았던 1993년 48회 대회 이후 30년 만이다. 경북고는 이번대회에서 경기고, 서울고, 강릉고, 장충고 등 서울 강호들을 잇달아 물리치며 올해 통산 8번째 정상에 올랐다.
전미르의 결승타, 이승헌의 역투
경북고는 물금고 선발투수 배강현의 제구 난조가 이어진 경기 초반 쉽게 점수를 뽑아내며 기세를 살렸다. 1회말 연속 볼넷과 보내기번트로 만든 1사 2·3루에서 4번 전미르가 2타점 중전 적시타를 터뜨렸다. 경북고는 2회에도 안정환의 안타와 박건우의 2루타로 만든 1사 2·3루에서 1번 김세훈의 좌익수 희생플라이로 한 점을 더 보탰고, 4회에도 1점을 추가해 4-0리드를 잡았다. 경북고 최대 위기는 7회까지 무실점 역투를 이어가던 3학년 선발 이승헌이 투구수 제한규정(한 경기 104개)에 걸려 강판당했을 때였다. 8회 등판한 두번째 투수 박성훈이 볼넷 2개를 내주고 실책까지 겹쳐 1사 만루 위기를 맞자, 경북고는 좌익수를 보던 2학년 박관우를 마운드에 올리는 승부수를 띄웠다. 박관우는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 밀어내기 점수를 내줬지만, 이후 삼진과 외야 뜬공을 불을 꺼 기대에 부응했다. 박관우는 9회 1사 후 안타를 허용했으나 병살타를 유도하며 경기를 끝냈다.
선발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이승헌은 “오늘 생일인데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오늘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힘보다는 제구에 승부를 건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전미르는 최우수선수와 수훈상, 이승헌은 우수투수상을 받았다.
준결승까지 팀 타율 1위였던 물금고는 매 이닝 주자를 득점권에 내보냈으나 후속타 불발로 아쉬운 준우승에 그쳤다. 잘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향하거나 이승헌이 승부구로 던진 슬라이더를 공략하지 못했다.
전통의 명문 부활 신호탄을 쏘다
경북고는 코치였던 이준호 감독이 2019년 사령탑에 앉으면서 팀 분위기를 확 바꿨다. 이 감독은 “이전까지 감독과 선수 사이에 거리가 있었다. 서로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선수 앞에서 망가지거나 실 없는 소리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선수들도 이 감독에게 다가갔고, 집에서는 못 하는 고민 상담을 하기도 했다. 무거운 분위기 훈련도 없앴다. 4~5시간 씩 하던 단체 훈련을 절반으로 줄이고 개인 맞춤형 훈련의 비중을 높였다. 이 감독은 “긴장할 때와 안해도 될 때를 알려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훈련 때 편하게 해주니, 오히려 실전 경기 때 선수들이 더 진지하게 집중하더라”라고 했다. 이승엽 현 두산감독과 동기인 이준호 감독은 1993년 대회때 2학년으로 우승을 맛봤다. 코치로선 2015년 봉황기때 우승했고, 감독으로서 이번 대회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이 감독은 “이번이 선수 시절 우승보다 두세 배는 더 기쁜 것 같다”며 “적극 지원을 아끼지 않은 학교와 총동창회, 야구 동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경북고는 1920년 야구부를 창단해 역사가 103년째다.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대구고등보통학교 때 처음 탄생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당연히 우승컵도 많이 들어올렸다. 청룡기에서 8회(올해 포함), 대통령배 6회, 황금사자기 4회, 봉황기 4회 정상에 섰다. 하지만 대부분 1980년 이전이었고, 최근 우승은 2015년 봉황기가 마지막이었다.
1981년 36회대회 우승 멤버인 최무영 경구회(경북고 야구선수출신 동문) 회장은 “올해부터 동문회 차원에서 야구 명문으로서의 전통을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청룡기 우승은 야구 명문 부활의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북고는 총 동창회에서 5000만원을 지원해 야구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선수 훈련을 돕는 실내연습장도 곧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조창수(74) 전 삼성 코치, 강문길(73) 경북과학대 야구부 감독 등 1967,1968년 우승 주역들도 이날 목동야구장을 찾아 까마득한 후배들을 격려했다.
한국야구 최고 스타 중 하나인 이승엽 두산 감독은 잠실에서 경북고 우승 소식을 전해듣고 “전통은 어디가지 않는다. 30년 만에 청룡기에서 우승한 후배들이 자랑스럽다”며 “경북고의 힘이 예전에 비해 조금 약해졌는데 이번 우승을 계기로 다시 일어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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