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페미 사냥’…또 한명이 실직했다
유저들 ‘여성 캐릭터 노출 적다’며 일러스트 작가 신상 털기
낙태죄 폐지 등 SNS 글 근거로 별점 테러·게임사 항의 방문
사측, 다음날 사직 처리…반페미 정서·쉬운 해고 현실 반복
한 게임회사가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페미니즘 관련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와 계약을 해지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게임업계의 ‘사상 검증’이 또다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이번 논란은 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 유저들이 여성 캐릭터 복장을 문제 삼으면서 불거졌다. 지난 21일 게임사 프로젝트 문은 자사 SNS에 해녀복을 입은 여성 캐릭터 일러스트 영상을 게시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노출이 적다. 회사에 페미가 있다’며 소속 일러스트 작가들의 ‘신상털기’에 나섰다.
이후 게임 캐릭터 제작에 참여한 한 일러스트 작가가 과거 SNS에 낙태죄 폐지 옹호, 불법촬영 반대 집회 등과 관련된 글을 올린 사실이 알려졌고, 남성 유저를 중심으로 게임 평점란에 ‘1점’을 주는 별점 테러가 이어졌다. 일부 유저는 회사로 찾아가 ‘남캐(남자 캐릭터)는 노출이 많고 여캐는 적은 것은 특정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게임 이용자 10여명이 회사를 직접 항의 방문한 지 하루 만인 지난 26일 김지훈 프로젝트 문 디렉터는 공지를 통해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와의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알렸다.
게임업계의 ‘페미니즘 사상 검증’이 논란이 된 건 처음이 아니다. 2016년에는 넥슨 게임 ‘클로저스’ 성우가 트위터에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인증사진을 올렸다가 남성 유저들의 항의를 받고 교체됐다. 2018년에는 게임 유저들이 산업 종사자들에게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밝히라’고 요구하는 일도 벌어졌다.
게임산업 종사자들은 ‘페미니스트 검열’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는 업계 전반에 만연한 반페미니즘 정서와 ‘쉬운 해고’가 가능한 고용환경이 얽혀 있다고 지적한다. 개발자 A씨는 27일 통화에서 “남성 유저들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된 데 더해 ‘메갈 찾기’가 일종의 놀이처럼 굳어졌다”며 “회사도 자사 노동자를 보호하기보다 유저들이 떼를 쓰면 들어주는 식의 대응을 하면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범유경·강은희·이도경 변호사가 지난해 발표한 ‘디지털 플랫폼 콘텐츠 창작 노동자의 노동 조건에 관한 연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심층면접에 참여한 디지털 플랫폼 콘텐츠 창작 노동자 21명 중 15명이 사상 검증을 직접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 중 12명은 반페미니스트들이 검증의 주체였다고 답했다.
범유경 변호사는 “‘게임의 주 이용층인 남성의 입맛에 맞춰 게임을 만들어야 하고, 페미니스트는 게임업계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게임업계에 만연한 인식을 고쳐야 한다”며 “일러스트레이터 등 대부분 프리랜서인 여성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계약 해지를 당했을 때 회사를 상대로 다툴 수 있는 제도적 방안도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세훈·이유진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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