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은 콜레라”…이승만 재평가가 제기되는 이유 [미드나잇 이슈]

김건호 2023. 7. 2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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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은 호열자(콜레라)다. 인간은 호열자와 같이 살 수 없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제1·2·3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이 발언은 그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보수 진영에서는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부터 지켜 낸 국부”로 그를 칭송하지만, 진보 진영에서는 “학생들의 항거에 못 이겨 하야한 독재자”라고 평기한다.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또다시 이 전 대통령이 소환됐다.

지난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이 열려 참석자들이 고인의 영정 앞에 고개 숙여 묵념하고 있다. 뉴시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승만 재평가론은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식장에서 현수막 배경에 이 전 대통령 사진이 누락된 것을 보고 “그런 분이 재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언급한 데서 촉발됐다. 당시 기념식장 배경 현수막에 강우규·김구·김규식·민영환·신채호·안중근·안창호·이회영·이봉창·윤봉길·유관순 의사 등 대표적 독립운동가 11명이 내걸렸는데 이 전 대통령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윤 대통령은 “상해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 전 대통령을 어찌 누락할 수 있느냐”며 질책했다고 한다.

특히 최근 국가보훈부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이 전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에서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 바로 세우기’는 어떤 개인에 대한 숭배나 과장을 위함이 아니다”며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역대 대통령의 자제분들과 4·19혁명의 주역들이 힘을 합쳐 ‘이승만 대통령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며 “기념관 건립에 있어 중요한 것은 ‘속도’와 ‘단결’”이라고 덧붙였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추모사를 하고 있다. 보훈부 제공
박 장관 말처럼 이승만기념관 건립에는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원로 영화배우 신영균 한주홀딩스코리아 명예회장은 강동구에 있는 자신의 사유지 가운데 1만3223㎡(약 4000평)를 위원회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국가보훈부 뿐만이 아니다. 국무위원 대부분이 이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논의에 공감했다고 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1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주포럼 정책강연에 참석해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을 한국 발전의 결정적 장면으로 소개했다. 한 장관은 “농지개혁으로 만석꾼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이병철, 최종현 회장 같은 영웅이 혁신을 실현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었다. 농지개혁이 대전환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혹독한 인사청문회를 치루고 있는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자신이 집필한 책 ‘미중 패권전쟁과 위기의 대한민국’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자라나는 세대들은 왜곡된 역사교육을 받아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로 알고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가 아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으로서 일본 제국주의와 타협 없는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 전 대통령을 “한국이 낳은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치켜세웠다.

정부가 올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본격적인 재평가에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23년은 6·25 전쟁 종전 70주년이자 한미상호방위조약(한미동맹)이 체결된 지 70년 되는 해다. 즉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구해 낸 ‘국부’로서의 모습과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동맹을 끌어낸 면모를 부각하기에 최적의 시기다.

또 다가오는 총선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확보해야 하는 국민의힘은 보수층 결집을 위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요긴하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본격적인 재평가 작업이 시작될 경우 건국절 논쟁이 촉발할 수 있고, 이는 곧 진보와 보수 진영 양측으로 표를 집결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7일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시민들이 동상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2000년대 이후 양 진영은 건국일을 두고 공방을 반복해왔는데 진보 진영 측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13일이 건국의 뿌리라는 입장이지만, 보수 측은 이승만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보고 있다. 즉 건국일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정통성이 어떤 진영에 있는지가 갈리는 만큼 첨예하게 다툴 수밖에 없는 주제다.

지금까지 보수 정권은 이 전 대통령에 후한 점수를 줬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15년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50주기를 맞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누구에게나 공(功)과 과(過)는 있을 것”이라며 “우리 국민도 이제는 우리 현대사에 대해 적극적·긍정적으로 바라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보 진영에선 전쟁을 막지못했고, 한미동맹으로 군사주권을 잃었고, 독재와 4·19혁명으로 하야했다는 점을 꼬집는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3월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큰 과오는 전작권 없는 나라로 만들어 군사주권에 구멍을 낸 것”이라며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터진 나라에서 싸울 생각은 않고 재빨리 도망가면서 전작권을 전쟁 발발 20일 만에 이양했다”고 비판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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