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 듣고, 때리면 맞아야…교권붕괴, “동료가, 내가, 다른 교사가 겪을 일” [긴급점검-교사들의 호소④]

김희원 2023. 7. 2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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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년차 초등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전국 교사들의 애도와 분노가 들불처럼 일고 있다.

"오늘도 제가 겪고, 어제도 옆반 선생님이 겪고, 내일도 우리 학교의 누군가는 겪을 너무도 흔한 일입니다. 아이가 선생님에게 욕을 해도 우리는 그저 듣고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선생님을 때려도 우리는 그저 맞고 있어야 합니다. 학부모의 수 없는 민원 전화에 이렇다 할 대꾸도 못합니다. 저는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저 퇴근하고 돌아와 정신 놓고 멍하니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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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위해 神이 되어야하는 교사…어긋나면 ‘민원’
“자랑스런 내 직업, 지키고 싶습니다”
‘아동학대’ 신고 당할까…훈육, 갈등 조정하며 눈치
“사랑하는 아이들 미래 힘 보태도록, 교사 보호해야”

서울 2년차 초등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전국 교사들의 애도와 분노가 들불처럼 일고 있다. 그의 죽음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추정에 교사들은 거리에 나와 “터질 게 터진 것”이라며 “우리 모두의 일이다. 현장에서는 더한 일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말 그렇게까지 많을까?’ 의구심이 들어 초등교사인 지인들에게 물었다. 하나같이 ‘정말 그렇다’고 했다. 그중 한 교사는 “동료들의 의견을 모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보내온 A4용지 20페이지 분량에는 상상 이상으로 암울한 현장이 담겼다. 이 교사들은 “이제는 제발 바꿔달라”며 절절하게 호소했다. 모든 문장에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교육당국과 정치권 등이 부랴부랴 내놓고 있는 개선안, 대책 등이 얼마나 현장과 동떨어진 공염불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통상의 기사나 인터뷰로는 그들의 진정성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생각 끝에 교사 7인이 보내온 답변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하기로 했다. 문답형식으로 각자 답변한 내용만 정리했다.  
지난 26일 대전 서구 둔산동 대전 시청 북문 앞 보라매공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를 기리는 추모제에서 명복을 비는 문구가 적혀있다. 뉴시스
④울산/4년차/남

1.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교권 침해, 각종 과도한 학부모 민원 내용이 실제 일선 학교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인지요?

“오늘도 제가 겪고, 어제도 옆반 선생님이 겪고, 내일도 우리 학교의 누군가는 겪을 너무도 흔한 일입니다. 아이가 선생님에게 욕을 해도 우리는 그저 듣고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선생님을 때려도 우리는 그저 맞고 있어야 합니다. 학부모의 수 없는 민원 전화에 이렇다 할 대꾸도 못합니다. 저는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저 퇴근하고 돌아와 정신 놓고 멍하니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2. 과도한 학부모 민원이 많아진 이유가 뭐라고 보시는지요?

“내 아이가 겪는 조그마한 시련도 지켜볼 수 없는 세태 때문입니다. 아이가 타인과의 사회적 교류를 통해 성장해 가는 과정, 그 과정의 한 티끌도 학부모들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타인과 의견 차이를 겪고, 그것을 배려와 존중, 협의로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할 우리의 본분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아이의 고결한 정서적, 신체적 완성을 위해 교사는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적인 존재로서 행동해야 하고 그 행동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점이 생기면 민원의 대상이 됩니다.

교사는 이 시대에 가장 힘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교사는 지금껏 여타 사람들에게 기득권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욕을 먹어도 괜찮은 사람들, 욕을 먹더라도 타인의 관점에서 보는 직업적 윤리관 속에서 그것을 감내해야 할 사람들이란 의무를 강요받아 왔습니다. 선생님이란 직업이 일부 학부모들에겐 감정의 소비재쯤으로 소모되는 것 같습니다.

내 아이의 고결한 성장에 대한 욕심,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교권과 교사의 인권 등이 지금의 학부모 민원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3. 교사에 대한 민원이 발생했을 때 학교 관리자들은 어떤 도움을 주는지요?

“대부분의 민원 건은 해당 교사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편입니다. 교사가 관리자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민원은 정말 개인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민원입니다. 이러한 경우 관리자들 또한 악성 민원이 문제가 되는 것을 알고, 이해하고 있지만 되도록 상황을 좋게 넘기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4. 학생들 간의 갈등·폭력이 일어났을 때 담임교사나 학폭 담당 교사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요?

“가해 학생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교사는 훈육을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나 하나 들어보고, 서로의 오해를 풀어주고, 마음을 이해해주는 과정을 진행하는 모든 순간 순간마다 ‘혹시나 내가 하는 이 행위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하진 않을까’ 두려워 하며 아이들을 대합니다. 아이들에게 하는 말, 행동 하나 하나를 조심하게 됩니다. 정말 사랑하는 우리 반 아이들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내가 줄 수 있는 가르침과 사랑을 주고 싶은데 그것이 너무 무섭습니다.”

5. 학부모와 교육당국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이러한 모든 상황 속에서도 저는 아이들을 정말 너무 사랑해왔습니다. 아이들을 보면 행복하고, 더 잘해주고 싶고, 이들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수업에서 아이들을 마주 보고 웃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 싫습니다.

나는 내 직업이 자랑스럽고 너무 좋습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마음을 부정하는 듯한 현 상황이 너무 밉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에 힘을 보탤 수 있는 내 직업을 끝까지 지켜가고 싶습니다. 부디 이런 마음을 가진 선생님들을 더 이상은 내치지 말아주세요. 우리도 보호받고 싶습니다.”

정리=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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