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넘어 평화체제로…결국 남·북의 문제다[정전 70년]

박광연 기자 2023. 7. 2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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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참전용사들 영접하는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유엔 참전용사를 박수로 맞이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70년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은 가능할까. 북한 핵 문제는 매번 전환 논의의 발목을 잡았고, 평화체제 전환에 대한 국내 여론도 크게 갈린다. 정전협정마저 위반하는 남북의 군사적 갈등과 미국·중국의 패권 경쟁이 격화되며 한반도 평화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한반도 위기 당사자인 남과 북이 주도적으로 평화체제 논의에 나서야 할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1953년 7월27일 시작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은 역사적으로 북한 비핵화 문제와 뗄 수 없다. 1990년대 초 북한 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상하자 남북기본합의서(1991년)에 처음 ‘평화 상태로의 전환’이 명시됐고, 1997~1999년 평화체제 수립을 논의하는 남·북·미·중 회담이 열렸다.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다음해인 2018년 열린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평화체제를 위한 노력이 명시됐다. 하지만 각국의 이견과 불신으로 매번 성과를 못 거두고 북한이 핵 무력을 고도화하자 평화체제 논의는 표류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의 연관성은 핵심 논쟁 지점이다. 북한 비핵화가 먼저라는 주장과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를 병행하자는 주장이 진영에 따라 갈린다. 진보 세력이 주장한 병행론이 거듭 실패하고 북핵 위협이 더욱 커지자 보수 세력은 ‘선 비핵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대표적이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북한 비핵화 없이 달성되기 어렵고, 비핵화가 달성되면 평화체제에 대한 실질적 동력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는 데에 기대가 수렴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평화체제 논의를 비핵화 문제에 가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평화의 본질은 비핵화가 아닌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주장이다.

“남북의 주도적 노력 없으면 미·중 갈등에 휩쓸려 평화 난망”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핵이 없을 때도 남북의 적대성은 강했다. 평화체제는 남북이 적대적에서 우호적으로 관계를 전환하는 문제”라며 “그 과정에서 북한 핵 문제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화체제 전환은 정전체제 준수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모인다. 최근 극도로 고조된 남북 긴장은 정전협정 위반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서보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전협정을 지키는 것이 분단 고착화가 아니라 남북 신뢰 구축의 신호가 될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면서 평화를 위한 대화와 소통은 절실해졌지만 당장 유의미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남북이 우회적으로 소통하는 대안도 거론된다. 서로의 이해관계에 부합할 수 있는 유엔 등 국제기구를 접촉 매개로 삼자는 주장이다. 서 연구위원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가 더 어려워진 북한은 국제기구와 협력을 재개해 식량·보건 지원 등 실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화와 소통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은 평화체제 전환을 위해 필수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한반도 운명을 좌우하는 동북아시아 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격화되는 국제정세의 틀을 바꾸고 있는 미·중 패권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한반도 평화 논의의 전제이던 미·중 협력을 끌어내기 어려워졌고, 한반도는 두 강대국이 서로를 전략적으로 견제하는 최전선이 됐다.

이럴 때일수록 남북이 평화체제 전환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 실장은 “남북의 주도적인 변화 노력이 없으면 미·중 갈등 구조에 휩쓸려 평화와 통일은 더욱 불가능해진다”며 “상호 위협을 줄이려는 남북의 자체적인 노력이 시작되면 주변국들도 한반도 문제를 정치적 수로만 이용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적 차원의 통일 논리보다는 개개인이 한반도에서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권리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평화체제를 논의하기 위한 국내적 동력 확보도 중요하다. 현 정부 들어 종전과 평화체제 논의가 정치적·이념적 공방으로 전락하면서 방향성과 국민적 공감대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종전과 평화체제를 ‘좌파·진보 세력’의 주장으로 바라보는 접근법에서 벗어나 건설적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보수 성향의 노태우 정부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고 명시한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에서 출발하자는 것이다.

서 연구위원은 “정권을 초월해 초당적인 대북정책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여러 가지 이유로 남북 합의 이행이 어렵다고 해도 원칙적으로 이를 존중하고 이행해나간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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