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선 개인전 ‘내 이름은 빨강’ ‘사람·도시·역사’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한국사회의 근대화와 관련된 탐구 시도 ‘물질·환경·신화’로 연결된 50년 회화 여정 전시회 제목으로 내건 ‘내 이름은 빨강’ 튀르키예 소설가 파묵의 작품서 가져와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서 10월 22일까지
일군의 정치인들이 무기력하게 서 있다. 작가는 정치가 야기하는 폭력과 그 폭력이 또다시 야기하는 집단적 광기를 비판한다.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지나온 그에게 정치인은 결코 긍정적 대상일 수 없다.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한 사회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문제적 대상일 뿐이다.
작품 ‘정치인’(1984)은 1980년대 특정 사건을 언급하진 않지만, 당시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폭력의 어떤 징후를 드러낸다. 1980년대 신군부 아래,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새로운 직업인들의 모습을 절묘하게 담아내고 있다.
21세기 새로운 정치 바람을 타고 학자, 방송인, 사회활동가 등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도 그의 이러한 작업은 의미심장하다.
이후로도 작가는 ‘뉴스와 사건’(1997) 등의 그림을 통해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국제 관계 변화에 대해 회화적 반응을 유지하며, 주요 정치인의 얼굴을 다양하게 그려오고 있다.
작품 ‘밥먹기’(2003)는 누군가가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작가는 미국 뉴욕 체류 기간 작업과 일상을 스스로 진행하면서 매일 ‘밥 먹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인식했다고 털어놓는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 의해 제작된 이 그림은 단순히 밥 먹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하나로써 먹기의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작가 서용선은 단순히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 그리는 대상이 사람일 경우 외관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심리적 긴장감이나 마음속에서 동요하는 것들, 대상의 분위기와 주변의 느낌까지 포착해 담아낸다. 마치 아무렇게나 그린 것처럼 거칠게 보이는 그림인데도 흡인력이 강력한 이유다. 관람객들은 그가 그려놓은 그 시절 그 공간 속으로 쉽사리 빨려들고 만다. 그때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기 때문이다.
서용선에 대한 연구조사전시회가 ‘서용선: 내 이름은 빨강’이란 제목을 내걸고 10월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서용선은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사람-도시-역사’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한국 근대화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며, 이를 ‘물질-환경(자연)-신화’로 연결한다. 작가는 표현주의와 신구상회화의 계보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모색해 왔다. 50여년이 넘는 그의 회화 여정은 ‘회화라는 매체에 대한 본질적 탐구’, ‘우리를 구성하는 역사에 대한 동시대적 인식’, ‘공존의 시간과 장소로서 세계의 근원에 대한 성찰’ 등으로 요약된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골드’에서는 서용선 회화의 중요 공간인 도시를 다루고, 2부 ‘블랙’에선 사람, 정치, 역사, 생명의 의미를 탐구한다. 그리고 3부 ‘나-비’는 보편적 세계를 향한 작가의 의지, 예술과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단, 3부 전시는 9월15일부터 시작한다.
전시 제목으로 사용된 ‘내 이름은 빨강’은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동명소설에서 따왔다. 1591년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전통과 서구의 갈등이 회화와 화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설이다.
서용선의 도시 경험은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시작한다. 어린 시절 그는 무너져내린 도시가 다시 만들어지고, 그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가 작심하고 도시를 그리기 시작한 시기는 새로운 서울, 강남이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시작한 1980년대와 1990년대다.
1980년대 서울은 경제개발의 성과가 가시화되어 성장과 확장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이러한 도시의 변화, 이동하는 사람들과 교통수단을 통해서 보이는 도시 경관 등에 주목했다. 도시 자체를 묘사하기보다, 과거와 현재가 응축된 장소로서 서울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서울이라는 공간은 그에게 현재를 탐구하는 출발점이자 토대가 된다. 작가의 이러한 도시와 도시인에 관한 연구는 뉴욕, 독일 베를린, 중국 베이징, 호주 멜버른 등으로 확장된다.
그의 도시 관찰은 자신의 동선을 타고 이뤄졌다. 작가로서의 삶과 대학 강사, 교수로서의 생활을 병행하면서 집, 작업실, 대학 사이에서 보았던 광경을 그려왔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연결되는 도시를 자신이 이용하는 버스와 지하철을 통해 지켜보았다. 창밖 풍경과 거리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1990년대 서울의 확장과 더불어 도시인의 삶을 다시금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시각적 증언인 셈이다. 작품 ‘숙대 입구’(1991)는 ‘청계천에서’(1989), ‘낙성대 입구, 좌회전’(1992), ‘총신대 입구’(1997) 등과 함께 1990년대 서울의 모습과 사람들을 표상하는 중요한 증거물이다.
특히 작가가 도시에서 주목한 것은 광고판이었다. 상업적인 광고판에서부터 뉴스 전광판에 이르기까지, 도시 광고판은 도시의 욕망과 갈등을 그대로 표출한다. 그는 이러한 도시의 경관을 하나의 허상으로 생각하고 ‘도시-차 안에서’(1989), ‘버스 속 사람들’(1992), ‘갈등’(1992) 등의 작품으로 그것을 돌파하고자 한다.
서용선은 지속적으로 자화상을 그렸다. 서울대 미대에 합격하고 처음 그린 그림도 자화상이다. 자화상을 통해 자신을 해체하고 결합하며 새롭게 탄생시킨다. ‘빨간 눈의 자화상’(2009)은 언뜻 붉은 눈 때문에 괴물화되는 인간의 모습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붉은색은 작가에게 한없이 투명한 색이다.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눈이다.
수양대군(세조)은 단종을 지지했던 금성대군을 순흥으로 유배 보냈으나 다시 단종 복위를 모의하자 사약을 내리고 순흥 사람들을 학살한 뒤 역모의 고을로 낙인찍어 폐쇄했다. 당시 유교의 중심지였던 소수서원 옆 죽계천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피가 10리 떨어진 마을까지 이르러 ‘피끝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정축지변’이다. ‘경’자 바위는 정축지변 때 죽어간 원혼들이 밤마다 울어 당시 풍기군수 주세붕이 ‘경’자를 새기고, 제사를 지냈다는 바위다. 서용선은 붉은 글자, ‘경’을 다시 그린다. 작품 ‘‘경’자 바위’(2014)는 치유와 화해 그리고 공존을 위한 자각이자 실천을 의미한다.
탄광촌을 다룬 작품들은 한국 산업화의 표상으로써 도시 및 도시인에 대한 대비로, 근대화가 불러온 삶의 조건과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석탄은 1960∼70년대 일상생활에서 주요 산업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에너지 역할을 담당했다. 작가에게 탄광촌 경관은 자연과 근대화가 충돌하는 현장이자 한국식 산업혁명이 화석화된 장소다. 작가는 당시 저녁 뉴스에 방송되던 광산 매몰 사고와 구출된 광부들의 모습에서 한국의 정치 경제 현실을 목격한다. 민주화에 대한 갈등과 욕망을 광산과 광부들을 통해 돌아본다. 극한의 노동과 생존이 펼쳐지는 탄광촌은 폭압적 군사정부와 공동체 민주화 열망 사이에서 진동한다. 작가는 그 장소를 다시 방문하고, 사람들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