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롯카쇼무라의 ‘꺼진 카메라’
북한 핵 협상이 활발했던 시절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주요 임무는 북한의 핵 동결 약속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사찰단이 영변의 원자로·재처리공장·핵연료봉 생산공장 같은 시설을 확인하고,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사후 감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카메라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뭔가 불길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이란 핵 협상 때도 핵시설의 손상된 IAEA 카메라를 교체하는 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되기도 했다.
IAEA 카메라가 새삼 주목받는 일이 또 일어났다. 북한도, 이란도 아닌 일본에서다.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의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 조명이 꺼지며 2시간 동안 카메라 감시 공백이 발생했다. 지난 1월28일 일어난 이 사건은 2월22일 일반에 알려졌다. 재처리공장 운영사인 일본원자력연료는 ‘점검 중 일어난 착오’라며 당시 이 곳에는 사용후핵연료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일본원연 사장은 지난 6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최종보고서를 들고 일본을 찾은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에게 “철저한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사과했다고 한다.
IAEA가 재처리공장을 감시하는 이유는 핵무기 개발 우려 때문이다. 원전의 전기 생산 후 나오는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플루토늄은 혼합산화물 형태로 만들어 원전 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지만, 핵무기 재료가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일본의 약속이 국제사회 신뢰를 얻고 있지만, 이번 일로 약간의 오점이 생긴 셈이다.
재처리공장은 무기로 전용될 우려만 있는 게 아니다. 사업적 타당성은 낮고 위험성은 크다.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은 당초 1997년 완공 예정이었지만 비용 문제 등으로 인해 계속 연기돼 내년 가동 시작을 목표로 한다. 그사이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재처리공장이 가동되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보다 더 심각한 해양 방사능 오염이 우려된다. 미국 등 대부분 원전 국가에서 더 이상 재처리를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중대 사고가 일반에 알려지는 데 무려 25일이나 걸린 걸 보면, 원전은 무슨 문제든지 ‘안전하다’고만 하는 일본 당국 말을 믿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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