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먹방좌로만 알고 있니? 변검술사처럼 바뀌는 그의 얼굴들[TEN피플]
이하늘 2023. 7. 27. 21:01
'비공식작전' 오는 8월 2일 개봉
장르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하정우
관객들이 원하는 하정우의 얼굴은?
오는 8월 2일 영화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으로 하정우는 낯선 이국땅에서 마주한 임무를 수행하는 민준 역으로 출연한다. 1987년 레바논을 배경으로 실종된 동료를 구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떠난 외교관 ‘민준’(하정우)과 현지 택시기사 ‘판수’(주지훈)의 버디 액션 영화다. 그동안 예기치 못한 재난 상황에서 힘을 발휘했던 하정우. 버디 무비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강점을 마구 뻗어낼 수 있을지 기대가 주목된다.
2003년 영화 ‘마들렌’(감독 박광춘)로 데뷔한 하정우는 벌써 20년 차 연기파 배우다. 그만큼 스크린을 통해 많이 만났다는 방증이며 동시에 익숙해서 변혁을 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신선한 마스크를 지닌 신인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굴레를 마주하기도 한다. 자신이 만든 얼굴을 스스로 찢고 관객들 앞에 서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비공식작전’은 중요한 변곡점일 테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이미 배우 주지훈을 만났던 하정우에 관해 긍정적인 시선과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왔던 상황. ‘비공식작전‘의 김성훈 감독의 말처럼 “같은 재료라도 다른 맛”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정우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 유독 잊고 있던 시대에 응답하거나 재난 상황에서 부서진 희망을 다시 재조립하거나 지난한 현실에 녹아든 평범한 인물로 분하며 감정의 겹을 하나씩 쌓아가기도 한다. 그 때문에 하정우의 영화를 분류하는 하나의 접근법으로 시대극, 재난물, 판타지, 아이콘이라는 별도의 명칭을 사용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이 어떠한 정답은 아니지만, 하정우가 연기한 캐릭터가 지닌 정체성의 교집합을 모으기 위한 방식이라고 인지하면 좋을 듯싶다.
하정우의 시대극은 잊지 말아야 할 바래진 한 페이지를 조명하며 어쩐지 아나키스트적인 면모를 보인다. 권력 또는 정부나 통치의 부재(不在)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an archos'에서 유래한 아나키스트는 쉽게 말하면 무정부주의자를 말한다. 우연하게도 하정우는 아나키스트적인 면모를 보이는 캐릭터를 주로 맡았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를 단순한 개념으로 설명하면 오해하기 쉽다.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유대 관계를 모색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국가의 명령이나 의무보다는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는 선구자적인 인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암살'(2015) 감독 최동훈 / 하와이 피스톨 역
영화 ‘암살’(2015)에서 하와이 피스톨의 모티브는 실존 인물인 김상옥 의사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는 의열단이었던 김상옥이 지녔던 면모를 차용해 하와이 피스톨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외래어 투성이인 미국의 50번째 주 하와이(Hawaii)와 주로 한 손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쏠 수 있는 짧고 작은 총이라는 피스톨(pistol)의 합성어다. 즉, 자유의 나라로 상징되는 미국에 반하는 일제강점기에 판타지와도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욱이 피스톨이라는 총의 특성이 거리를 가까이해야 한다는 것을 꼬집어보면 자국을 집어삼킨 거대한 존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 내내 하정우는 독립운동가들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이방인 같은 모습이지만 종국에는 그들을 위해 일제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래의 맨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아가씨'(2016) 감독 박찬욱 / 백작 역
맨얼굴을 드러낸 하정우는 낯설지 않다. 영화 ‘아가씨’(2016)에서 사기꾼 백작으로 등장하는 하정우는 앞과 뒤가 다른 인물 그 자체다. 아가씨인 히데코(김민희) 앞에서는 사랑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더니, 소매치기 고아이자 함께 일을 꾸민 숙희(김태리) 앞에서는 돈만 되면 뭐든지 다 하는 파렴치한이다. 추태를 부리며 자신의 욕망을 수면 위로 들어 올리기까지 하정우는 만반의 준비를 한다. 앞서, 하정우가 시대에 감응하는 캐릭터를 자주 선보였다고 언급했다. ‘아가씨’에서는 시대의 혼란을 틈타 한 몫을 단단히 챙기고 떠나려는 인물로 변신했다.
'1987'(2017) 감독 장준환 / 최검사 역
영화 ‘1987’(2017)에서는 어떤가. 정의감과 직업적인 임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공안부장 최 검사 역할을 맡았다. 당연하게도 공안부장이라면, 국가의 명령과 지시에 의해 따르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하정우는 또다시 갈등한다. 이 문서를 넘겨주면, 진실이 물거품처럼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검사의 임무냐. 자국민으로서의 소명이냐. ‘1987’에서 하정우는 다시금 두 개의 얼굴 사이에서 고민한다.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은 진실 앞에서 맨얼굴을 드러낸 하정우의 모습이다. 그것에 응답하듯, 하정우는 고이고이 감춰뒀던 거칠고 투박한 얼굴을 꺼내 보인다.
'군도: 민란의 시대'(2014) 감독 윤종빈 / 도치 역
‘군도: 민란의 시대’(2014)는 날 것 그 자체다. 양반과 탐관오리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철종 13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은 영화 속에서 하정우는 백성이 주인인 새 세상을 염원하는 도치를 연기했다. 영화의 제목인 군도는 한 무리를 이루는 여러 섬을 말한다. 육지와 가깝지만, 육지는 아닌 군도는 나라의 국민이지만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백성들만의 고립된 섬을 대변하기도 한다. 맨머리를 드러내고 얼굴 곳곳에 깊게 팬 상처들이 가득한 어쩌면 포악해 보이기도 한 모습으로 등장한 하정우의 성난 얼굴은 완전히 드러난 맨얼굴이다. 어쩌면 하정우의 시대극은 빛과 어둠으로 뒤덮여 어디로 갈지 모르는 과거의 조상이자 현재의 우리들의 얼굴이 아닐까.
'더 테러 라이브'(2013) 감독 / 윤영화 역
무수한 재난 앞에서 하정우는 의연하고 침착하다. 비록 처음에는 비관적인 태도로 절망적인상황에서 손을 놓을 것도 같지만 이내 상황에 동화된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2013)는 한강 다리를 폭파하겠다는 테러범의 협박에 생방송으로 상황을 대처하는 국민 앵커 윤영화를 맡았다. 신원 미상자의 협박에 장난 전화라고 여기며 무시하려는 것도 잠시 재빠르게 상황을 인지하고 몰입한다. 뉴스데스크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테러범의 농간에 침착하게 대응하는 목소리와 달리 떨리는 눈빛은 예상 불가능한 상황을 대처하는 하정우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설득뿐이다. 모습을 바꿔가며 테러범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 대응하는 하정우의 모습은 마치 리허설 없는 생방송을 하는 앵커의 순발력과도 맞닿는다.
'터널'(2016) 감독 김성훈 / 정수 역
이번에 개봉하는 ‘비공식작전‘ 이전에 함께 호흡을 맞췄던 김성훈 감독의 ‘터널’(2016)에서 하정우는 완전히 고립된 인물이 된다.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들 틈에서 하정우는 그야말로 웃픈 연기를 보여준다. 상황은 재난에 가까운데, 하정우가 살아남으려는 방식은 일종의 코미디가 얹어져 있기 때문이다. 남은 식량을 두고 강아지와 눈치 싸움을 하거나 소변을 해결하는 방식은 기존의 재난 영화가 고통만을 추구하던 것과는 달리 양면성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흩날리는 먼지를 뒤집어쓴 하정우의 얼굴의 틈에서 희망을 보는 이유는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황해'(2010) 감독 나홍진 / 김구남 역
‘먹방좌’라는 상징적인 별명이 탄생한 것은 바로 ‘황해’(2010)의 김 먹방에서 비롯됐다. 분명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데 어딘가 군침이 돌게 만드는 이 장면. 하정우의 먹방좌는 여기서 시작됐다. 영화 ‘황해’는 나홍진 감독의 작품으로 살인 청부를 받은 구남(하정우)가 삶을 살아내는 과정을 그린다. 투박한 연변어를 사용하면서 목적을 위해 대한민국 서울로 내려와 먹이를 호시탐탐 노리는 하정우의 눈빛은 그렇기에 살기가 가득하다. 쫓기느냐. 쫓느냐의 기로에서 하정우가 맡은 캐릭터 구남은 그리 만만치 않다. 경찰과 황해에서 자신을 쫓는 무리를 피해 살아남으려는 독기는 ‘황해’의 인장과도 같은 장면을 만들어냈다.
'추격자'(2008) 감독 나홍진 / 연쇄살인범 지영민 역
“야. 4885”라고 부르는 김윤석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어두운 골목길을 앞도 안 보고 뛰는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 ‘추격자’(2008) 역시 이 장면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연쇄살인범 지영민 역을 맡은 하정우는 여자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유아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추격자’의 명장면은 앞서 설명한 “4885”다. 당시 비가 와서 미끄러워진 골목 탓에 촬영 도중 하정우는 넘어졌고 스태프들도 당황했지만, 다시 일어나 달렸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따라서 그 신은 중간에 포커스가 살짝 나가 있는데 오히려 생동감이 든다. 마치 직접 쫓는 것 같은 상황들과 죽기 살기로 뛰는 하정우의 뒷모습은 연쇄살인범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자신이 해한 인물들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을 다른 잣대로 판단하는 지영민의 소름 돋는 연기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아는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이 외에도 하정우의 얼굴들은 수없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과 장르에 따라 구분지은 하정우의 연기 필모그래피에서 그가 보여주고자 한 여러 모습의 얼굴을 포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공식작전’은 어떨까. 매번 가면을 쓰듯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던 하정우가 이번에도 자신만의 인장을 남길 수 있을까. 가면 뒤에 숨겨진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영화가 개봉해야 알 수 있다. 다만, 관객들이 하정우의 얼굴에 열광했던 그 이유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볼 필요는 있는 듯하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장르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하정우
관객들이 원하는 하정우의 얼굴은?
[텐아시아=이하늘 기자]하정우라는 고유명사를 모르는 한국 관객들 극히 드물 것이다. 모른다고 하더라도, ‘시골쥐’나 ‘먹방좌’라는 수식어는 한 번쯤 들어봤을 테다.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압도적인 연기와 어디선가 마주칠 법한 모습으로 장르에 맞춰 자신의 얼굴을 바꾸기도 한다. 마치 변검술사와 같은 귀재와도 같다. 작품마다 상징하는 얼굴이 달라지는 하정우가 돌아왔다.
오는 8월 2일 영화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으로 하정우는 낯선 이국땅에서 마주한 임무를 수행하는 민준 역으로 출연한다. 1987년 레바논을 배경으로 실종된 동료를 구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떠난 외교관 ‘민준’(하정우)과 현지 택시기사 ‘판수’(주지훈)의 버디 액션 영화다. 그동안 예기치 못한 재난 상황에서 힘을 발휘했던 하정우. 버디 무비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강점을 마구 뻗어낼 수 있을지 기대가 주목된다.
2003년 영화 ‘마들렌’(감독 박광춘)로 데뷔한 하정우는 벌써 20년 차 연기파 배우다. 그만큼 스크린을 통해 많이 만났다는 방증이며 동시에 익숙해서 변혁을 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신선한 마스크를 지닌 신인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굴레를 마주하기도 한다. 자신이 만든 얼굴을 스스로 찢고 관객들 앞에 서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비공식작전’은 중요한 변곡점일 테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이미 배우 주지훈을 만났던 하정우에 관해 긍정적인 시선과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왔던 상황. ‘비공식작전‘의 김성훈 감독의 말처럼 “같은 재료라도 다른 맛”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정우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 유독 잊고 있던 시대에 응답하거나 재난 상황에서 부서진 희망을 다시 재조립하거나 지난한 현실에 녹아든 평범한 인물로 분하며 감정의 겹을 하나씩 쌓아가기도 한다. 그 때문에 하정우의 영화를 분류하는 하나의 접근법으로 시대극, 재난물, 판타지, 아이콘이라는 별도의 명칭을 사용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이 어떠한 정답은 아니지만, 하정우가 연기한 캐릭터가 지닌 정체성의 교집합을 모으기 위한 방식이라고 인지하면 좋을 듯싶다.
빛과 어둠 사이에서 맨얼굴을 드러낸 하정우의 시대극들
하정우의 시대극은 잊지 말아야 할 바래진 한 페이지를 조명하며 어쩐지 아나키스트적인 면모를 보인다. 권력 또는 정부나 통치의 부재(不在)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an archos'에서 유래한 아나키스트는 쉽게 말하면 무정부주의자를 말한다. 우연하게도 하정우는 아나키스트적인 면모를 보이는 캐릭터를 주로 맡았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를 단순한 개념으로 설명하면 오해하기 쉽다.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유대 관계를 모색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국가의 명령이나 의무보다는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는 선구자적인 인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암살'(2015) 감독 최동훈 / 하와이 피스톨 역
영화 ‘암살’(2015)에서 하와이 피스톨의 모티브는 실존 인물인 김상옥 의사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는 의열단이었던 김상옥이 지녔던 면모를 차용해 하와이 피스톨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외래어 투성이인 미국의 50번째 주 하와이(Hawaii)와 주로 한 손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쏠 수 있는 짧고 작은 총이라는 피스톨(pistol)의 합성어다. 즉, 자유의 나라로 상징되는 미국에 반하는 일제강점기에 판타지와도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욱이 피스톨이라는 총의 특성이 거리를 가까이해야 한다는 것을 꼬집어보면 자국을 집어삼킨 거대한 존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 내내 하정우는 독립운동가들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이방인 같은 모습이지만 종국에는 그들을 위해 일제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래의 맨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아가씨'(2016) 감독 박찬욱 / 백작 역
맨얼굴을 드러낸 하정우는 낯설지 않다. 영화 ‘아가씨’(2016)에서 사기꾼 백작으로 등장하는 하정우는 앞과 뒤가 다른 인물 그 자체다. 아가씨인 히데코(김민희) 앞에서는 사랑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더니, 소매치기 고아이자 함께 일을 꾸민 숙희(김태리) 앞에서는 돈만 되면 뭐든지 다 하는 파렴치한이다. 추태를 부리며 자신의 욕망을 수면 위로 들어 올리기까지 하정우는 만반의 준비를 한다. 앞서, 하정우가 시대에 감응하는 캐릭터를 자주 선보였다고 언급했다. ‘아가씨’에서는 시대의 혼란을 틈타 한 몫을 단단히 챙기고 떠나려는 인물로 변신했다.
'1987'(2017) 감독 장준환 / 최검사 역
영화 ‘1987’(2017)에서는 어떤가. 정의감과 직업적인 임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공안부장 최 검사 역할을 맡았다. 당연하게도 공안부장이라면, 국가의 명령과 지시에 의해 따르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하정우는 또다시 갈등한다. 이 문서를 넘겨주면, 진실이 물거품처럼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검사의 임무냐. 자국민으로서의 소명이냐. ‘1987’에서 하정우는 다시금 두 개의 얼굴 사이에서 고민한다.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은 진실 앞에서 맨얼굴을 드러낸 하정우의 모습이다. 그것에 응답하듯, 하정우는 고이고이 감춰뒀던 거칠고 투박한 얼굴을 꺼내 보인다.
'군도: 민란의 시대'(2014) 감독 윤종빈 / 도치 역
‘군도: 민란의 시대’(2014)는 날 것 그 자체다. 양반과 탐관오리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철종 13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은 영화 속에서 하정우는 백성이 주인인 새 세상을 염원하는 도치를 연기했다. 영화의 제목인 군도는 한 무리를 이루는 여러 섬을 말한다. 육지와 가깝지만, 육지는 아닌 군도는 나라의 국민이지만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백성들만의 고립된 섬을 대변하기도 한다. 맨머리를 드러내고 얼굴 곳곳에 깊게 팬 상처들이 가득한 어쩌면 포악해 보이기도 한 모습으로 등장한 하정우의 성난 얼굴은 완전히 드러난 맨얼굴이다. 어쩌면 하정우의 시대극은 빛과 어둠으로 뒤덮여 어디로 갈지 모르는 과거의 조상이자 현재의 우리들의 얼굴이 아닐까.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의연하고 침착한 하정우의 재난물
'더 테러 라이브'(2013) 감독 / 윤영화 역
무수한 재난 앞에서 하정우는 의연하고 침착하다. 비록 처음에는 비관적인 태도로 절망적인상황에서 손을 놓을 것도 같지만 이내 상황에 동화된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2013)는 한강 다리를 폭파하겠다는 테러범의 협박에 생방송으로 상황을 대처하는 국민 앵커 윤영화를 맡았다. 신원 미상자의 협박에 장난 전화라고 여기며 무시하려는 것도 잠시 재빠르게 상황을 인지하고 몰입한다. 뉴스데스크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테러범의 농간에 침착하게 대응하는 목소리와 달리 떨리는 눈빛은 예상 불가능한 상황을 대처하는 하정우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설득뿐이다. 모습을 바꿔가며 테러범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 대응하는 하정우의 모습은 마치 리허설 없는 생방송을 하는 앵커의 순발력과도 맞닿는다.
'터널'(2016) 감독 김성훈 / 정수 역
이번에 개봉하는 ‘비공식작전‘ 이전에 함께 호흡을 맞췄던 김성훈 감독의 ‘터널’(2016)에서 하정우는 완전히 고립된 인물이 된다.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들 틈에서 하정우는 그야말로 웃픈 연기를 보여준다. 상황은 재난에 가까운데, 하정우가 살아남으려는 방식은 일종의 코미디가 얹어져 있기 때문이다. 남은 식량을 두고 강아지와 눈치 싸움을 하거나 소변을 해결하는 방식은 기존의 재난 영화가 고통만을 추구하던 것과는 달리 양면성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흩날리는 먼지를 뒤집어쓴 하정우의 얼굴의 틈에서 희망을 보는 이유는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인장이자 아이콘이 된 하정우의 현실 연기
'황해'(2010) 감독 나홍진 / 김구남 역
‘먹방좌’라는 상징적인 별명이 탄생한 것은 바로 ‘황해’(2010)의 김 먹방에서 비롯됐다. 분명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데 어딘가 군침이 돌게 만드는 이 장면. 하정우의 먹방좌는 여기서 시작됐다. 영화 ‘황해’는 나홍진 감독의 작품으로 살인 청부를 받은 구남(하정우)가 삶을 살아내는 과정을 그린다. 투박한 연변어를 사용하면서 목적을 위해 대한민국 서울로 내려와 먹이를 호시탐탐 노리는 하정우의 눈빛은 그렇기에 살기가 가득하다. 쫓기느냐. 쫓느냐의 기로에서 하정우가 맡은 캐릭터 구남은 그리 만만치 않다. 경찰과 황해에서 자신을 쫓는 무리를 피해 살아남으려는 독기는 ‘황해’의 인장과도 같은 장면을 만들어냈다.
'추격자'(2008) 감독 나홍진 / 연쇄살인범 지영민 역
“야. 4885”라고 부르는 김윤석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어두운 골목길을 앞도 안 보고 뛰는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 ‘추격자’(2008) 역시 이 장면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연쇄살인범 지영민 역을 맡은 하정우는 여자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유아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추격자’의 명장면은 앞서 설명한 “4885”다. 당시 비가 와서 미끄러워진 골목 탓에 촬영 도중 하정우는 넘어졌고 스태프들도 당황했지만, 다시 일어나 달렸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따라서 그 신은 중간에 포커스가 살짝 나가 있는데 오히려 생동감이 든다. 마치 직접 쫓는 것 같은 상황들과 죽기 살기로 뛰는 하정우의 뒷모습은 연쇄살인범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자신이 해한 인물들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을 다른 잣대로 판단하는 지영민의 소름 돋는 연기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아는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이 외에도 하정우의 얼굴들은 수없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과 장르에 따라 구분지은 하정우의 연기 필모그래피에서 그가 보여주고자 한 여러 모습의 얼굴을 포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공식작전’은 어떨까. 매번 가면을 쓰듯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던 하정우가 이번에도 자신만의 인장을 남길 수 있을까. 가면 뒤에 숨겨진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영화가 개봉해야 알 수 있다. 다만, 관객들이 하정우의 얼굴에 열광했던 그 이유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볼 필요는 있는 듯하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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